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직장이라는 곳이 내가 원하는 일의 큰 맥락에서만 맞다면 과정이야 어찌 됐든, 어딜 가든 괜찮은 월급에 퇴근시간만 맞춰지면 만족할 줄 알았다. 아무리 엉망이어도 아무리 안 맞아도 배우는 게 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도, 직장에서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1순위로 생각하는 부분이 맞지 않으면 퇴사를 한다는 사실도 그때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그냥 돈이 안 맞아서, 직업을 바꾸거나, 다른 곳에 알바를 하려고 등등 그런 것들이 일을 그만둔 이유인 줄 알았다.
나에게 직장과 직업에 있어서 진짜로 원하고 얻고자 하는 것. 내가 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직장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느끼는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에 대한 '자부심' , 그다음이 환경이나 급여 같은 조건 부분이었다.
디자인을 처음 하겠다고 간판회사를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거였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거는 아무 쓸모도 없네.' , '이걸 출력해 달라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작업물을 만들어야 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 여러 번 의견을 냈지만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일을 빨리 끝내는 방법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디자인 툴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었지만, 내 존재의 이유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회 초년생이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데다가, 사수는 없고 혼자 개척해야 하는 상황.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느끼고 싶은 성취감, 자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에 프랜차이즈를 입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건이 일반 개인 제과점과는 확연하게 다르고, 회사도 크고, 급여도 좀 더 많았다. 그리고 근무시간도 크게 벗어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매일 같은 것을 만들면서 고여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만들었던 제품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 정상적으로 만든 제품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들이 많았고, 매뉴얼대로 만들지 못했던 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점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원래 있던 곳에서 일할 때가 성취감이 컸다. 첨가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제품은 예민해서 잘 만들기 어렵지만, 제품이 예쁘게 잘 나오면 기분이 좋다는 것. 파트가 나눠져 있어서 모든 파트를 다 돌게 되면 나도 빵집을 차릴 수 있겠다는 기대. 제품을 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내가 지켜보고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매장에서 일할 때는 내가 만드는 건 아니지만, 맛있는 제품을 판매한다는 자부심. 또 내가 아는 사실을 손님들에게 얘기해 주고, 자신 있게 추천하면서 내 진심으로 제품을 판매할 때의 뿌듯함. 생산실에서 만들 때는 내가 먹어봐도 맛있는 것을 직접 만들어 낸다는 뿌듯함. 그런 마음들이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프랜차이즈를 퇴사하게 되었고, 나는 2달간 쉬면서 다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튼튼한 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던 빵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공장장님께 연락했다. 이번에야 말로 입사해서 모든 기술을 다 배울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인생 쉬운 일은 없는 법. 내가 먼저 연락을 했으니, 내가 약자였다. 공장장님과 면담을 했는데, 먼저 제안을 하셨다.
'케이크파트에서 2년 잘 채우면 그 뒤로 네가 원하는 오븐이랑 반죽하는 거 파트 돌려줄게'
처음에 입사할 때도 물어봤다. 왜 여자는 파트에 안 넣어주는지. 이유는 일이 너무 고되기 때문에 여자들은 못 버티고 금방 그만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달 하고 그만두는 사람, 2달 하고 그만두는 사람. 그러나 그 비율이 높다나? 그래서 아예 파트에는 넣지 않고, 작업대에서 성형하거나 케이크를 만드는 케이크파트, 샌드위치 만드는 파트에 많이 보낸다고 하셨다. 케이크파트도 제대로 하는 건 처음이라 그러겠다고 제안을 받아들였고, 다시 입사를 하게 되었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했다.
2년간 케이크파트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나보다 먼저 케이크파트에 있었던 선배는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일본의 동경제과학교 출신이었다. 언니는 차분한 성격이었고, 물어보는 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초콜릿 템퍼링 하는 것도 배우고, 다양한 무스케이크 만드는 법, 시트 만드는 법, 크림을 제조하고, 아이싱, 샌드를 완성도 있게 빨리 하는 법, 케이크에 올라가는 장식 품을 만들고 관리하는 법, 조각케이크, 고구마케이크 만드는 법, 쿠키나 구움 과자류도 가끔 만들고, 마카롱도 주로 케이크파트에서 만들었다. 12~3년 전에 마카롱은 정말 특이한 제품이었고, 인지도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작은 게 2,000원이나 한다며 고개를 저으며 구매를 하지 않았다. 그 당시 팥빵이 하나에 9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2,000원짜리 마카롱이 생소하기도 했을 거다. 나도 만들면서 처음 먹어보는 제품이었다. 잘 만들기는 힘든 제품이었지만, 꼬끄가 잘 나오지 않으면, 케이크 장식용으로 빼두거나 식감은 안 좋지만 맛은 있어서 망한 마카롱은 입안으로 넣어 주었다.
사장님은 잘 나가지도 않는 구움 과자나 마카롱, 호밀이 들어가 있는 건강빵 등을 계속 만들라고 했다. 페이스트리 종류를 전문으로 하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 당시 크로와상이나 페이스트리로 빵종류의 절반 가까이를 채울 만큼 다양하게 했었다. 판매도 잘 안되는데 왜 자꾸 종류를 늘리는 건지 그때는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사장님은 사람들의 인식에 이런 제품이 있다는 것을 심어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굉장히 배짱도 있으셨고, 혜안을 가지고 있으셨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사수였던 언니가 퇴사를 한다고 하기에 너무 놀라서 이유를 물어봤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창업하기로 했다는 언니말을 듣고, 금까지 배운 것도 있고, 일한 것도 있는데 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창업하냐 했다. 언니는 원래 베이커리 전공도 아니었는데 일본에서 빵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동경제과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배울 때는 참 재밌었는데 일본에서 취업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 한국으로 와서 일했지만, 생각보다 실무는 너무 힘들고 일해보니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퇴사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듣고 내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아쉬웠지만 걱정도 됐다. 정작 언니가 그만두면 나는 혼자 케이크파트를 책임져야 하는데 사실 업무가 많아서 최소 2명은 있어야 가능했다. 생산실에 사람이 모자란 상태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했다. 공장장님께 물어보니 '일단 혼자 하라'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럼 주말이나 저 쉬는 날에는요?'
'사장님이 오신대'
'네?'
'아니면 내가 가고'
'네?'
졸지에 매장에서 제일 높은 두 분과 불편하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내가 쉬는 날 대타로 들어오신다는 게 더 무서웠다.
왜냐하면 그냥 오전에 케이크만 생산을 하는 게 아니라, 오후에는 무스케이크이나, 다른 조각케이크 종류도 체크해서 준비해야 하고, 장식물도 만들어 둬야 하는데, 솔직히 공장장님과 사장님은 아침에 꼭 해야 하는 생크림 케이크만 생산하고 가실게 뻔했다. 그럼 하루동안 밀린 일을 또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고 새로운 사람은 언제 보내주실지 걱정됐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바쁠 때는 사장님과 같이 일을 했고, 보통은 혼자 작업을 할 때가 많았다. 케이크파트는 실이 분리되어 있어서 다른 직원들과 소통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마칠 때나 돼서야 다른 일이 끝난 직원들이 가끔 내 남은일을 도와주거나, 만약 다른 파트가 바쁜 것 같으면 혼자 우선순위를 분비해서 내가 해야 할 일 스케줄을 짜기도 했다. 한 번씩 작업대에서 일하던 언니나 다른 직원들 한 번씩 보내줄 때도 있었는데, 파트가 고정이 안돼있어서 일을 같이 하려면 인계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되게 키도 작고 왜소한 한 언니가 입사했다. 처음에는 작업대에서 빵을 만드는 일을 시키다가 '공장장님. 저 혼자 하고 있으니까 그냥 하나보다 하고 사람 영원히 안 구해 주실 거예요?' 하면서 맨날 조르니까 새로 입사한 그 언니를 보내주셨다.
그때 사람이 부족할 때라 한 명이라도 소중했지만, 기왕이면 어느 정도 인계가 된 기존에 있던 직원을 내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는데... 마찬가지로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건 없으니까... 라며 단념했다. 오전에 인계를 하게 되면 일이 더 늦어지니까 오후에 인계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오후에 내려달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나이도 어렸고, 또 일에 치여있었고, 연애전선도 엉망이었고, 뭔가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새로 온 언니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아이싱 할 줄 아세요?' (*아이싱-크림을 샌드 한 케이크를 돌림판에 올려서 크림을 얇고 예쁘게 도포하는 일)
'아니...'
아이싱도 못하는 사람을 케이크파트에 던져주고, 나중에는 '사람 구해 줬잖아!' 이러겠지? 하면서 속으로 공장장님 험담을(?) 엄청 했다. 이래나 저래나 아이싱을 가르치는 건 내 몫이 됐으니 내가 오후일을 하면서 언니에게 연습을 시켰다. 나는 훈련원에서 2~3달 아이싱연습을 하고 와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새로 온 언니는 정말 아예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여서 스패츌러(*아이싱 할 때 필요한 도구.) 잡는 법부터 가르쳐 줘야 했다. 나는 내가 성격이 급해서 인내심 있고 친절하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사실 내 기분이 좋든 안 좋든 달라지는 사실은 없는데, 기분 안 좋은 티를 많이 냈었다. 그래도 일은 가르쳐야 하고, 또 해야 하는 거니까. 매일 얼굴 보고 있으니 계속 안 좋게 지낼 수는 없어서 먼저 말을 걸거나 한 마디씩 말을 주고받으며 일했다. 그러다 내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지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언니에게 쌀쌀맞게 군 게 미안해졌다.
그때부터 잘 지내려고 노력했고, 분위기도 편안해지면 언니도 한 번씩 얘기했었는데 '니 성격 솔직히 파탄자인 줄 알았다'라고 했다. 뭐... 변명은 안 하겠다. 그때 내 모습을 생각하면 언니가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까. 케이크파트에 정확히 2년을 버텼다. 그리고 3달 전부터 공장장님을 괴롭혔다. '저 이제 보직 옮겨주세요. 2년 다 돼가요!' 공장장님이 약간 질려(?)하는 거 같았지만, 그래도 약속한 게 있으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2주 후에 내가 대망의 오븐 파트로 갈 거라는 기쁜 소식을 주셨다. 너무 기뻐서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오븐은 말 그대로 뜨거운 오븐 안에 제품을 넣어서 구워내는 일을 하는 파트고, 지금은 6월 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