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의 결과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제 급여 오픈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니 하도 물어보길래 얘기해 줬어요. 뭐 비밀이랄 것도 없고...'
'네.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시면 얘기해 주시고, 일단 사람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얼버무리는 사장님과는 더 이상 다른 대화는 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마무리를 짓고 사람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바닥은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애초에 완전 신입은 뭔가를 잘할 수도 없는 구조 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해서 하나하나 다 인계를 해줘야 한다. 게다가 다른 대기업이나, 카페도 아니고 개인제과점은 더욱 심각한 인력난에 허덕이는 게 다반사였다.
그렇게 오픈 멤버인 S는 퇴사를 했고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다른 오픈멤버인 C와 그의 여자친구인 A였다. 그 둘과 한동안은 괜찮게 일을 했다. 둘 다 일을 빨리하고, 알아서 찾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 나름대로 고군분투했었으나, 어느 순간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A와 C는 사장님이 없을 때 사장님이랑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나에게 심하게 하소연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 당시 나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동조를 했고, 직원들은 너무 힘든 나머지 나보고 쉬지 말고 계속 나와주면 안 되냐는 요청을 한 번씩 했었다. 원래도 잘 쉬지 못하고 일했으나, 계속 그런 말들이 들리니 걱정도 됐고, 사장님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 가게일을 이렇게도 나 몰라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면서 내 감정도 많이 동요 됐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나보고 얘기 좀 하자고 불러서 얘기를 하게 됐는데, 직원들에게 자기 욕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직원들 불만에 동조했었다.라고 말했고, 사장님은 그 직원들이 사장님과 있을 때는 내 욕을 엄청 많이 했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사장님과 직원들 둘 다 내 욕을 한 사람들이라 별로 분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일도 힘든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서 서로 이간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장님은 A와 C가 매장에 있는 계란과 우유를 훔쳐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둘이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둘 다 부산에 살던 친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료들이 없어진다는 건 딱히 인지를 못했던 부분인데, 사장님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 이후로 사장님은 그 직원들이 재료를 가져간다느니 내 욕을 많이 한다느니 그 친구들의 나쁜 부분을 많이 언급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제가 필요하신 거면 그 둘을 자르고 저랑 다시 열심히 해봐요. 사람 구하고 안정될 때까지 저도 휴무 반납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저는 그 둘이랑은 계속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그 친구들이 소중하다고 하면 제가 퇴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한 명이랑 두 명은 다르니까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그 친구들을 내보낸다고 했고, 일 마치고 저녁에 모여서 얘기를 하기로 했다. 그러다 훔쳐간 물품 때문에 뭔가 언쟁으로 번졌고, 결국에는 다음날부터 사장님과 나 둘이 일을 하게 됐다.
그렇게 둘이서 엄청나게 고군분투하며 일을 했다. 애초에 열정적이지 않은 사장님이 힘들어서 그런지, 휴무를 못하는 것보다 열심히 해주는 모습이 고마워서 나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장님은 힘들었는지 사람이 안 구해진다며 본인의 친구를 잠시 채용한다고 말하며 나에게 소개해줬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나이가 어떻든 간에 내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매일 술을 먹고 출근하고, 지각하고, 한번 가르쳐 준 건 메모할 생각도 안 하고 늘 잊어버렸다. 자기가 사장친구지 사장이라고 착각한 거 같았다. 그래서 늘 언성을 높이고 얘기를 했다. 어느 날은 만취해서 출근하고, 화장실에서 잠드는 바람에 하루종일 찾으러 다닌 적도 있었다. 내가 악인을 자처하니까 사장님은 나보고 좀 부드럽게 대해주라고 했다. 이해가 안 갔다. 부드럽게? 일하러 왔는데, 일을 못하는데 부드럽게? 그래서 결심했다. 잘못한 거는 감정 빼고 얘기하되, 버려지고 실패하고 폐기한 재료들에 관해서는 즉각 사장님에게 보고를 했다. 그렇게 하니 오히려 사장님이 더욱 분노했고, 결국 그 친구는 해고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장님과 나는 다시 둘이 되었다. 그래도 할만했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하나 둘 채워지고, 그 친구들을 가르치고, 그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직원들을 교육하고, 감정을 너무 내비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직원들에게는 사장님의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고, 불만사항은 그냥 들어주고 대변해 주는 정도로만 했다. 다시 직원들이 많아지니 사장님은 또 그런 면모가 나왔다. 하지만 사장님은 사장님일 뿐 이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사장님이 고용한 사람이고, 이제는 더 이상 파트너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파트너로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에는 나는 그냥 그 사람 밑에 그 사람 일을 대신해 주는 직원일 뿐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인지 2년 가까이 너무 고군분투를 해서 그런지 직원들이 구해지고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갔다.
어느 날 기분이 이상해서 화장실에 갔더니 엄청나게 놀랐다. 속옷이 전부 피였다. 하혈을 한 것이다. 부랴부랴 사장님에게 얘기하고 조퇴를 하게 됐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었다. 무서웠고,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이렇게 까지 일을 해서 얻는 게 뭘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고, 바로 병원을 예약해서 검사를 받게 됐다. 자궁에 작은 혹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보통은 호르몬 영향이고, 자궁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생리주기에 따라 호르몬이 변하니까 조금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만두고 싶다. 아니, 그만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