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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첫발

by 재비


처음에 면접을 보고 대표님께서 지하에 내려가면 베이커리 생산실이 있다고, 그곳에 가서 시설도 보고 인사도 하면 좋을 거 같다고 하셨다. 베이커리 부서에 있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고, 면적이 아주 넓었다. 인원은 4명남짓 인데 크기는 엄청나게 컸다. 50평 정도? 냉동창고나 냉장창고를 포함하면 그것보다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좁은 곳에서 사람들이랑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일했는데 넓은 생산실을 보니 마음이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대표님께서 소개해주시는 대로 인사를 했는데 직원들의 표정은 진지해 보였지만, 다들 성격이 좋아 보였다. 베이커리실을 보고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처음 보는 큰 장비들과, 넓은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프랜차이즈를 위한 시스템을 밀접하게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이건 나한테 온 너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때 당시 마지막 20대를 불사르고자 내 머리카락 색은 현란했다. 탈색을 하고, 색을 여러 번 바꿨다. 하지만 이제 나름 멀쩡하게(?) 회사생활을 해야 하고, 또 뭔가 입사를 하게 되면 차후에 그 부서의 책임자가 돼야 하는 입장이라서 입사 전에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는 입사날짜에 출근을 했다. 베이커리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소개를 했다. 거기에 대리직급을 단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 부서의 책임자였지만, 실력이나 경력? 그런 부분으로 책임자가 된 건 아닌 것 같았고, 책임자가 필요해서 그나마 경력이 있는 친구를 그 자리에 앉혔던 것 같다. 그 친구도 그 자리를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고, 곧 퇴사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입사를 했던 남자직원이 있었는데, 순간 '어? 이거 경쟁구도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실력에 대한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할 거고 만약에 경쟁구도라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회사에서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는데, 모든 직원들이 아침 출근시간에 다 같이 모여서 체조하고, 구호를 외치고, 간단하게 전달 사항이 있으면 얘기를 해주고 서로 각자 자리로 흩어져서 일을 하는 문화였다. 생소했지만,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다른 부서 사람들 얼굴도 보게 됐고, 그래도 최소한 안면은 틀 수 있었으니까. 입사 첫날 올라가서 국민체조를 시작하고, 마지막에 전달 사항으로 내 소개를 하라고 해서 인사를 했는데, 30명 남짓의 직원들이 다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사람들 표정이며 분위기가 공격적이지도 않았고, 모두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래서 더 편하게 소개를 할 수 있었다. 같은 소규모 프랜차이즈인데도 불구하고, 직전에 해운대 쪽에서 3일 일하고 도망 나왔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였다. 이미 입사한 순간부터 직업, 직장 만족도가 엄청 올라가고 있었다.



베이커리실로 내려와서 그동안 만들었던 제품 레시피를 꺼내고, 오늘 어떤 제품을 만들지 고민했다. 일단은 베이커리실이기 때문에 있을만한 재료는 거의 다 있었지만, 특이한 재료는 없었고, 필요한 재료 리스트를 파악하면서 따로 주문해달라고 전달했고,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5개 골라 만들기로 했다. classic is the best! 기본재료로 만들 수 있는 빵 중에 가장 베이스가 되는 식빵, 식사빵 위주로 구성을 했다. 그냥 일반 식빵도 하고, 탕종을 이용한 식빵도 만들었다. 그리고 커스터드 크림빵 그리고 하얀색빵에 하얀색 우유크림을 넣어 만든 우유 크림빵 등 기존에 쉽게 접할 수 있으나, 디테일을 잘 살린 제품을 만들었다. 일단 미리 생각해 온 레시피도 있었고, 순서도 정해지니 기계 사용만 생산에 지장 가지 않도록 잘 사용한다면 오늘 안에 5가지 생산을 하는 일은 너무너무 쉬운 일이었다. 중간중간에 발효하는 시간이 조금 떠서 일하는 것도 구경하고, 직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다. 직원들은 나를 처음 봤지만,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나보다 다들 나이도 어렸고, 사회초년생이었다.



잠깐 시간이 나면서 같이 입사했던 사람을 살펴봤다. 건포도 종을 이용한 천연 발효종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유리병에 건포도를 씻어서 담아 꿀이랑 물을 넣고 재료 창고 쪽에 넣어두었다. 건포도종은 처음 일했던 제과점에서 꽤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연발효종을 만들 때는 시간, 온도, 환경 등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으면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때 당시에는 할 생각이 없었던 거고. 건포도 발효종은 최소 4일에서 1주일 정도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저거를 만들어서 언제 사용하려고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 작업도 이어갔다. 그러면서 본인이 가지고 온 레시피 종이 한 장을 막 살펴보면서 혼잣말을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살짝? 무서워졌다. 일단은 내가 할 일에 집중하긴 했지만, 어쩔 수없이 생산에 지장 없는 자리를 선택해서 동선이 겹칠 때도 있는데, 뭔가를 자꾸 중얼거려서 한 번씩 자리를 일부러 피하게 됐다.



어느 정도 생산을 준비하고, 시간계산을 하면서 제품을 준비했고, 점심시간이 됐다. 그때 점심은 도시락? 업체에서 원하는 걸 시켜준다고 했었는데, 베이커리실에서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아 부서원들끼리 다 같이 먹는 거였다. 그래서 그 업체는 잘 몰라서 추천해 주는 걸 시키고 밥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랑 같이 입사한 사람이 없는 거였다.



'00 씨는 어디 갔어요? 식사 안 한대요?'

'아까 그냥 못하겠다고 집에 간다고 하고 가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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