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새로운 보금자리

by 재비


사실 제과제빵이라는 업종 자체가 취업하기에 힘든 업종은 아니다. 아무 데나 가서 일하려면 그냥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장도 많고, 매장이 많으니 사람도 많이 구하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취업은 늘 그렇듯 아무 데나 가서 돈만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곳에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직업을 선택했을 때 돈이 전부라면 내가 이 업계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것이다. 일을 하고 여러 군데를 다녀본 결과 아무 데나 가서 일했다가는 그냥 빵 만드는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책임자급이나 중간관리자 급으로 면접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제과점에서의 관리자는 관리보다는 생산에 주력한다. 직원을 관리하고, 시스템을 관리한다기보다 그냥 다른 직원들보다 더 오래, 많이 만들어내는 생산자. 경력자들도 마찬가지다. 전천후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여기저기 대타도 갈 수 있는 그런 인재를 좋아한다. 하지만 책임자급은 급여를 많이 줘야 하기 때문에 보통 제과점에서는 경력 1~3년 이내 직원을 구하는 걸 선호한다. 어느 정도 실무경험도 있으니 인계를 빨리 받을 수 있고, 경력이 얼마 없으니 돈을 많이 안 줘도 되고.



하지만 내 경력은 이미 7년 차를 넘겨 8년 차를 바라보고 있으니 중간관리자나 책임자급을 맡아야 하는 경력이었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괜찮은 매장, 괜찮은 시스템, 괜찮은 사장님, 괜찮은 급여가 있는 곳을 찾으며 여러 번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카페형 베이커리를 주로 검색해서 보았지만, 그 실체를 알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시 제과점 위주로 많이 찾아보았고, 찾아보면서 애ㅇ리 알바는 계속 이어갔다. 그러던 와중에 해운대에 있는 제과점에 면접을 보게 됐다. 그곳은 그때 당시 개인제과점으로 시작해서 부산, 울산, 경남권 정도로 프랜차이즈를 넓혀가고 있는 추세였고, 장산 쪽에 사옥이 있었으며, 그 사옥의 지하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급여나 이런 조건은 낮았지만, 사옥이라 깔끔했고, 또한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10명 남짓에, 프랜차이즈를 하고 있는 곳은 배울게 많을 거 같아서 입사를 결정했던 거였다. 내 포지션은 관리자도 아닌 그냥 일반 경력자로 급여가 책정이 됐으나,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출근 날짜를 잡았다.



출근을 하고 처음에 살짝 당황했다. 거기에도 공장장급의 부장님이 있었다. 부장님은 체구가 작고, 친절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극히 관심도 없고 그냥 일만 할 뿐이었다. 물론 나도 일하러 온건 맞는데 분위기라는 게 너무 차가웠다. 은연중에 부장님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기에는 남자직원들이 몇 있었는데 2~3명이 같이 일하면서 나름의 실세?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처음 들어갔을 때 제일 말단의 직원을 나에게 붙여주었다. 야채를 썰고, 빵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만들고, 크림을 충전하는 가장 기초적인 일을 했고, 생산이 바쁠 때는 성형도 했고, 만주 같은 것도 만들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발렌타인 시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부장님이 초콜릿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부장님을 놔두고 그냥 퇴근 준비를 했었다. 뭐 이례적인 상황은 아니다. 책임자는 항상 다른 직원들보다 많은 일을 하고, 또 오래 일을 하니까.



나는 빵을 만들기보다는 막내랑 같이 야채를 썰고 내용물을 만드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근데 그 막내도 나한테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까칠하게 대했고, 냉장고가 여러 개 있었는데 자리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냉장고에 넣으라는 말을 반복하며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마칠 때쯤에는 부장님이 제빵파트에서 일이 끝났으니 케이크파트를 도와주라고 보내서 케이크파트에 있는 대리직급을 단 친구에게 '부장님이 도와드리라고 했는데 뭘 하면 될까요?' 했더니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하고 손가락으로 쌓인 설거지를 가리켰다. 그래서 말없이 설거지를 했고, 나머지 정리를 도왔다. 그렇게 3일을 일하니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이런 곳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3일째 되던 날 부장님께 마치고 전화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부장님은 아쉬워하며 며칠 더 생각해 보라고 했으나, 그 3일도 많이 참은 거라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3일 치의 급여는 안 받겠다고 했다. 뭐 지금 생각으로는 받아도 됐었는데, 회사입장에서 나를 채용하고, 나를 가르치면서 쏟은 시간을 생각하면 뭐 그냥 3일 날렸다 생각하고 안 받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를 입사한다고 에ㅇ리를 퇴사하고 왔는데 이제 다급하게 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정말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어 면접을 봤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커피를 전문적으로 하는 베이커리 카페에 면접을 보고 오늘 길에 그 사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놓치기 아깝다고 출근해 달라고 했으나 면접을 볼 때 뭔가 쎄한 느낌이 들어서 패스했고, 지금은 없어진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레스토랑을 가진 베이커리 카페였다. 거기는 주 5일 근무는 맞지만, 그곳에서는 면접 후 실기시험? 을 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재료들을 챙겨가서 2번이나 제품을 만들었다. 근데 그렇게 까지 했으나 떨어졌다 붙었다 얘기가 없었다. 같이 테스트를 진행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에게도 물어보니 합격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에 테스트하러 가기 전 2번이나 면접을 진행했는데 총 4번을 사람을 왔다 갔다 시키며 결과도 말해주지 않는 그런 이기적인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연락이 왔으나, 입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참을 이곳저곳 헤맸다. 마음은 더 급박해졌다. 어느 날 매실발효종을 사용한 베이커리 카페공고가 올라와서 지원을 했다. 공고에는 주 5일 근무라고 적혀있었는데 막상 가서 면접을 보니, 격주 5일이었고, 급여도 공고보다 더 적게 시작했다. 매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급여를 작게 책정한 거고, 나중에 근무조건이 공고와 같이 변경될 거라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위 공고를 올린 셈이다. 그날 그곳 말고 다음 시간대에 다른 곳에 면접이 잡혀 있었는데, 실수로 처음 매장에 도착해서 두 번째 회사에 연락을 했던 거였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그렇게 실망을 하고 두 번째 면접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은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는데, 따로 브랜드 설명도 없었고,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몰랐다. 대충 인터넷에서 찾아봤고 그냥 작은 프랜차이즈 신생회사인데, 부산에는 매장이 없는 듯했다. 근무조건은 주 5일 근무 등으로 좋았으나, 그전에 허위공고를 봤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 없이 일단 면접장소로 찾아갔다.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큰 사옥 건물이어서 놀랐다. 1층카페가 엄청 층고도 높고 분위기도 밝았다. 지금까지 면접 봤던 베이커리 카페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정말 회사 느낌이 났달까? 위치도 예전에 프랜차이즈 제빵기사로 일할 때 매장이랑 가까워서 신기했다. 15분 정도 기다리니 그 회사의 대표님이 직접 면접을 보러 오셨다. 그렇게 4층의 교육장 같은 곳에서 면접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젊은 대표님이셨고, 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지금 까지 살아온 이런저런 개인적인 부분들도 물어보셨는데 나는 그게 전혀 싫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대표님도 나름대로 담담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나를 채용함으로써 어떤 방향성을 가길 원하시는지, 또 앞으로의 장황한 계획보다 지금 현재 이 회사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어떤 것들은 나에게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렇게 약 1시간 30분간의 긴 면접이 끝났다. 나는 이 회사가 좋았고, 대표님도 좋았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이 나를 좋게 봐주셨고, 대표님도 '내가 면접보고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사람이 급한 건 아니라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하셔서 바로 입사날짜를 잡았다. 다만, 급여 부분은 내가 부서의 책임자가 될 거지만, 내가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니, 50만 원 정도 적게 책정이 됐으나, 내가 일 하는 걸 보시고 나중에 올려준다고 말씀하셨다. 내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가능한 수치였다. 근무일수나, 시간, 환경 등을 따졌을 때 손해는 아니었다. 나도 이해하는 부분이라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입사날짜를 잡았다.



마지막에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입사하면, 나도 실력을 좀 보면 좋으니까 기존 거 인계를 받지 말고, 그동안 했던 제품들 한번 쭉 여러 개 만들어봐 주세요. 재료걱정은 하지 말고 자유롭게 1,2주 동안 그렇게 그냥 진행하는 걸로 해주세요.'

나는 많이 놀랐다. 이렇게 열린 생각을 가진 대표님이 계시다니. 그리고 그 대표님 밑에서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다니.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해 왔던 제품을 선보일 수 있다니. 두렵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 나는 지금껏 내가 배웠던 제품 전부 완벽히 구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마음고생 하면서 돌고 돌았던 이유가 여기, 이 대표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을 하니 그동안의 힘듦이 전부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입사 전 2주 동안 레시피 정리를 하고, 필요한 재료 목록을 정리하며 입사날을 기다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