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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by 재비


밖에서 잠깐 기다리다 문을 열어주셔서 대표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예비점주들이나 손님들이 미팅할 수 있도록 테이블도 마련돼 있었지만, 나는 항상 대표님 책상 앞에서 미팅을 했었다. 그날은 내게 부탁할 게 있으시다고 얘기하셨는데, 차후에 진주에 큰 로스팅실이 같이 있는 카페를 론칭할 예정이고, 현재 부지는 봐둔 상태라고 하셨다. 이름도 기존에 사용하던 이름이 아니라 공모를 해서 새로운 이름의 매장을 낼 거라고 하셨다. 내가 입사한 회사의 사옥은 부산에 있지만 지사고, 회사의 본사는 경남 진주에 있었다. 대표님의 고향도 진주다. 진주의 한 대학교 앞에서 푸드트럭에 커피를 팔면서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대표님은 배짱도 있으셨고, 실무자인 동시에 사업가셨다. 고향인 진주에 본사 겸 큰 로스팅 전문 매장을 낼 생각을 하시면서 그런 의미 있는 매장에 들어가는 제품을 전반적으로 개발해줬으면 한다고 하셨다. 신제품을 한두 개 낼 수는 있어도 이렇게 큰 판을 짜는 일은 도통 잘 없는 일이긴 하다. 프랜차이즈에 납품하지 않고 일단은 본사에만 제품은 깔아보는 형식이면 좋을 거 같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판을 짰다. 시간이 될 때마다 제품 개발에 전념했다.



그리하여 현재 하고 있는 미니식빵 종류를 다른 버전으로 4개를 만들고 스콘이나 구움 과자 같은 제과라인도 추가했다. 그리고 그 매장에 한방이 될 크로와상도 준비했다. 지금이야 크로와상이 유명하고, 또 인지도가 올라가서 사람들이 쉽게 좋은 크로와상을 접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나름 생소한 제품이었다. 냉동생지 크로와상이나 페이스트리는 있었지만, 크로와상을 직접 수제로 만들고, 버터 100%로 만드는 곳은 잘 없었다. 있다 해도 제품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그 정도 매장이라고 하면 꼭! 특별한 제품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크로와상 라인업을 추가했다. 그리고 크로와상을 안정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실험을 진행하면서 제과, 제빵라인업 약 40여 가지를 리뉴얼과 개발하여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하여 회사자체에서 진행한 전 직원이 참여하는 브랜드 네임 공모전에서 1등을 한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난 브랜드 '로00 웨어'였다. 지금은 다른 곳에 엄청나게 크게 오픈을 했지만 그때 당시 진주 호탄동이라는 동네에 먼저 오픈을 했었다.(현재도 같은 호탄동이나 좀 더 조용한 곳으로 빠졌다.) 새로운 느낌의 매장이었고, 생각보다 장사도 잘됐고, 인지도도 높아졌다. 직접 로스팅을 대용량으로 하다 보니까 주변의 민원 때문에 조금 골치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잘 운영되는 걸 보고 있으니 뿌듯했다. 한 번씩 진주 본사에 제품 교육 겸 간 적이 있었는데, 본사직원들과도 친분을 쌓고 맛있는 현지(?) 음식까지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기억이 남는다.



그 후로 매장안정화, 신제품등 직원들에게 인계해 주고, 새로운 부서직원들 교육도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고, 본사가 새로이 오픈하고 난 다음부터는 프랜차이즈 보다 '컨설팅, 디렉팅' 매장에 좀 더 주력하게 됐다. 물론 프랜차이즈 매장도 오픈하고 관리 하긴 했지만, 디렉팅 매장은 기존 매장처럼 꾸준한 관리보다는 1회성으로 먼저 세팅을 잡아주는 형식의 프로젝트를 많이 맡게 됐다. 새로운 매장을 오픈할 때 필요한 제품 라인업이나, 장비, 도구 같이 초도에 필요한 물건은 나와 그때 당시에 다른 부서 대리가 있었는데(지금은 차장님이 되었다고...)둘이서 정리해 가면서 오픈매장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내가 개발한 제품이니만큼 신경 써서 오픈 때 교육을 나갔고, 교육은 보통 2~3일 진행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요청이 있을 때만 추가로 출장을 갔다. 많은 점주님들을 만났다.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점주님들 교육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일이니까 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프랜차이즈, 디렉팅 매장은 보통 실제 계약하는 점주와 직접 운영하는 점주가 다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나이 드신 노부부가 점주이지만 그 아들이나 자녀들이 실무자인 경우가 많고, 나이가 좀 있으신 분도 계셨고, 젊은 분들도 계셨지만 기본적으로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하는 분들 중에서는 의욕이 막 넘치거나 열심히 하시려고 하는 분들은 없었다. 그냥 큰 노력 없이 내가 기술이 없으니 프랜차이즈 해서 돈 좀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제품이나 퀄리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많이 팔고, 코스트가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제품에는 관심이 없고, 그 결과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무자이고, 이 일을 좋아하고, 제품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으로서 제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교육을 한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항상 교육을 가면 점주들에게 듣는 소리가 있다. '왜 이렇게 일이 많아요?' , '이렇게 신경 쓸 거면 프랜차이즈 말고 개인매장 했지' , '더 간단하게 빨리 할 순 없어요?'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고, 나한테는 소중한 일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을 때? 그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 다르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나만 좋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교육을 해야 한다는 건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액받이 무녀처럼 다 받고 와야 한다는 거다. 교육을 하면 할수록 프라이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그냥 기가 쭉쭉 빠져서 복귀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할 일은 해야 하니까 그 매장에서 열정적으로 교육을 하고 오지만, 교육을 받는 점주, 실무자들의 표정은 그냥 넋이 나가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의 회사생활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대표님도 잘해주셨고, 다른 부서 직원들도, 같은 부서 애들과도 너무너무 친해졌고, 쉬는 날도 많고, 복지도 대표님께서 점점 신경 많이 써주셔서 나아져서 더 좋았다. 급여도 대표님께서 대우를 잘해주셔서 매번 간헐적으로 인상 됐다. 대표님께 내가 뭔가 한다고 말씀드리면 회사차원에서 지원도 많이 해주셨다. 쉬는 날 온전히 쉴 수 있고,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나는 좋은 회사와 좋은 사람들과 잔잔한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한 지 2년 반이 다 되어 갈 때쯤 나는 생각한다.



'이대로 나 괜찮은가?'



그렇다. 또 도진 거다. 나는 편안하고 안락하면 주리가 틀려서 일을 벌이고야 마는 그런 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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