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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내 인생의 챕터 3

by 재비


'이대로 나 괜찮은가?'

내 삶이 아무 일 없이 평안하다는 것. 성인이 되면서, 아니 아르바이트 등 일을 시작하면서 거의 느껴보지 못한 상태였다. 쉬는 날이야 여기저기 다니면서 놀 때도 있었고 집에서 푹 쉴 때도 있었으나, 몇 달을 계속 심신이 편안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뭔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있으면 되는데, 이상한 불치병에 걸린 내가 나도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나인걸 어떻게 하냐고. 일단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부터 살펴봤다. 부서는 현재 레시피 안정적, 직원도 안정적, 일하는 루틴도 어느 정도 매뉴얼이 잡혀있는 상태. 하지만 신제품을 계속적으로 개발하기에는 인원 충원이 안돼있어서 물량이 많거나, 오픈매장이 많을 때는 다소 무리하게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전에 본사오픈을 할 때처럼 드라마틱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롭게 뭔가 인풋이 없고 기존에 하던 업무를 계속 유지하는 것뿐이라 내가 성장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인풋이 될만한 요소로 원래 하던 업무 말고,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해봤다. 천연비누 만들기, 가죽공예 하기 등등 아예 업무와는 관계없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봤다. 하지만 배울 때만 재밌었고, 나중에는 그냥 좋은 경험을 한 정도의 무언가만 나에게 남았다.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뭘 해야 하지?'

내가 앞으로 이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딱 하나였다. 내 매장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건 최종 목표이자, 아직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직을 준비하던 시절에 내 가게를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부동산에 얘기해서 매물을 보러 다닌 적이 있다. 내가 원하는 곳은 터무니없이 비싼 월세에 비해서 좋지 않은 건물 컨디션, 높은 권리금 등이 현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고, 그 이후로는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시도해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지금이라면?'

그때 당시 나는 기장에 있는 신도시에 살고 있었고, 월세도 그렇고 상가도 부산의 중심가보다 조금 저렴한 편에 속했다. 게다가 상가도 깔끔하고 평수도 큰데 월세가 저렴한 곳도 많았다. 월세가 저렴하다는 건 입지가 좋지 않다는 것. 입지가 좋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창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번뜩 생각난 게 '베이커리 공방'이었다. 쉬는 날이 많으니 일주일에 1~2번 정도 사람을 모아서 수업을 하면 뭔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원래 공방이나 클래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당장 회사를 떠나고 싶지도 않았고, 입지가 좋아서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럼 당장 해야 할 일은 뭘까?'

일단 이러한 부분은 겸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표님께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가능한 근무시간도 조정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같이 말씀드리기로 하고, 퇴근 후 공방으로 사용할 매물을 찾아서 보러 다녀야 했다. 매물을 직접 찾아다니기보다는 여러 부동산을 끼고 최대한 많은 매물을 보는 게 중요하다. 각 부동산마다 겹치기도 하지만 보통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매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괜찮은 매물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부동산 10군데 정도에 전부 연락을 돌렸고, 퇴근하고 나서 보러 다녔다. 퇴근 후 시간이 늦었지만 처음으로 내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도파민이 나왔기 때문에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다. 매물을 보러 다니면서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했고,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다행스럽게도 승낙해 주셨다. 게다가 응원까지 해주셨고, 근무조건은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다. 일단은 몰래 하는 일이 아니고 공식적으로 승인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퇴근 후 집중 할 수 있었다.



'필요한 자금은 얼마일까?'

매물을 보러 다니면서 대충자금을 생각해 봤다. 신도시고, 공실도 많아서 보통은 보증금은 있으나, 권리금이 없는 매물이 많았고, 보증금도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았다. 편수가 20평 정도인데, 보증금 1~2천만 원 수준이었다. 그리고 공방에 들어갈 기계장비를 알아봤다. 되도록이면 신품을 넣고 싶었으나, 오븐은 중 0 나라에 좋을게 나와있어서 이동만 되면 가지고 와서 쓰고 싶었다. 난방식 오븐은 무겁고 설치가 힘들어서 보통은 중고로 판매하기도 힘들어서 업자에게 넘기는데, 그마저도 업자에게 넘기면 정말 헐값에 넘겨지기 때문에 작은 가능성이라도 잡고 싶어서 중0나라에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이것저것 체크해 보니 기계장비는 3천만 원 정도면 가능 할거 같았다. 그다음 제일 중요한 인테리어. 인테리어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일단 현재 나는 자금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목작업, 전기작업 말고는 혼자 할 수 있으면 혼자 해야 했다. 일단 2천만 원으로 책정했다. 총 6천만 원은 있어야지 공방을 오픈할 수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자금을 만들지?'

내 나이 31살에 가진 돈은 300만 원이 전부였다.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일은 했지만, 유복하게는 자라지 못한 터라 먹는 거, 하고 싶은 거에는 돈 아끼지 말자며 좋은 거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으면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모든 행위에 아끼지 않고 돈을 지불했다. 대학 학자금 대출도 갚고, 일본도 다녀오고, 차도 사고, 이런저런 큰 목돈을 나눠서 갚기도 했지. 이것저것 경험치도 쌓였고, 소위말하는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을 칭하는 축약어)'이 됐지만, 남은 건 내 통장의 300만 원뿐이었다. 답은 하나다. 대출. 지금 재직 중이고, 근속연수가 3년이 다돼가니까 연봉정도는 땡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봉으로만 해도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다른 곳에 대출을 알아봤다. 2 금융권으로 가기 전에 햇0론 같이 1 금융권에서 약간의 금리는 높여서 대출해 주는 것도 있어서 그 상품도 알아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기카드 대출까지. 그야말로 공방을 차리기 위해서 '영끌'을 해서 자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용기. 아니 패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금을 만들(쥐어짜..)면서 생각했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대출받아서 공방을 차리고, 그게 쫄딱 망해서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신용불량자밖에 더 될까? 나는 아직 젊고,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더 할 수 있지? 채무금은 일하면서 파산신청을 하고 개인회생신청해서 다달이 갚으면 되지. 하지만 내가 그걸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 경험치는 정말 정말 많을 거 같았다.



그때 어느 부동산에서 보여준 매물 중에 마지막으로 본 곳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중개인들은 처음에 별로인 매물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가장 좋은 매물을 준다고 한다. 그게 한방이라 계약을 하게 하는 상술(?)이라나.. 조용한 곳에, 20평대 후반의 넓은 평수, 합리적인 월세. 내가 좋아하는 깔끔하고 고즈넉한 느낌의 매물을 보게 됐다. 신축건물이었고, 2~4층에는 주거공간, 1층에는 상가인 상가주택이었다. 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월세 5만 원만 깎아주시면 바로 계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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