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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전쟁의 서막

by 재비



'월세 5만 원만 깎아주시면 바로 계약할게요.'



그렇게 소장님께 던져두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몇 시간 지나 연락이 왔고, 집주인이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렇게 생의 첫 계약을 앞두고 갑자기 초조해졌다. 아직 대출신청을 하기 전이어서 이제 진행할 참이었다. 마음에 드는 매물도 없는데 미리 돈을 대출받기가 조금 부담돼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매물이 나올지 몰랐다. 가계약금을 걸어두고 은행에 필요한 서류를 들고 대출 신청을 했다. 급하게 진행 돼야 하는 거라서 한도가 나오고 승인이 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연봉정도는 대출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1천500만 원 정도가 덜 나오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뭐 그래도 아껴서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고 일단 진행을 했다. 상가 계약은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주일 후 대출실행이 완료 됐고, 계약서를 쓰게 됐다. 집계약서도 아니고, 상가계약서라니. 공방이긴 하지만 내 가게를 계약하다니. 너무 행복했다. 인테리어 기간으로 월세를 안내도 되는 1달을 받았다. 이제 시작이었다. 제일 먼저 인테리어를 시작해야 하는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당연히 인테리어 업체에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럴 돈도 없었고. 필요한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를 내가 다 알아보고 따로따로 모집할 예정이었다. 블로그, 카페, 어플 모든 곳에 괜찮아 보이는 업자들을 다 컨텍해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정보를 좀 찾아봤다. 업자는 내가 구하면 되지만, 공사 순서는 모르기 때문에 순서를 먼저 알고, 그에 맞는 업자를 날짜별로 불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일 처음 진행 돼야 하는 게 전기랑 목작업, 배관작업이라고 해서 일단 평수에 맞게 간단하게 자리 배치를 해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맞게 전기선을 뺄 거고, 조명도 어느 쪽에 좀 더 포인트를 줄 건지 생각해서 견적을 받았다. 목작업이라고 해서 거창한 걸 했다가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아예 가벽만 간단히 세우고 나머지는 확 트인 상태에서 테이블이나 기타 집기를 넣기로 했다.



업자들 미팅을 약 45건~50건 가까이해 본 결과 확실히 이 바닥에는 사기꾼이 많았다. 어디에 전기선을 뺄지도 안 물어보고 평당으로 계산을 하는 이상한 업자들도 있고, 실력도 없으면서 가격 싸게 해 준다는 말로 현혹하고, 한 가지 작업만 맡기려고 했는데 본인이 인테리어를 한다고 해서 여러 작업을 동시에 맡기를 원하면서 구체적인 제안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 나름 처음이지만 그래도 고르고 골라서 업자를 선택해서 진행했다. 수도와 배관을 맡아서 작업하는 사장님이 아버지가 실력 있는 인테리어 업자인데 얼마 전에 은퇴하셨는데 나를 보니까 싸게 잘해줄 곳을 찾아주고 싶었다며 목작업, 타일작업은 사장님의 아버지 소개해준다고 하셨다. 미팅을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나이는 좀 있어 보이셨지만 이것저것 알려주시는 게 많아서 그분과 진행하기로 하고,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업자에게 연락 오면 연락받아서 마치고 또 공방에 가서 공사 상황을 보고 진행을 했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긴 했지만, 그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호르몬이 마구 분비되는 각성상태였기 때문에 뭐든 다 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전기공사, 배관공사는 괜찮았으나, 그다음 작업들이 점점이상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 페인트는 젊은 사람들이 뿜칠(콤프레셔를 이용해 페인트를 분사하여 작업하는 방식)로 진행을 했는데, 색이나 페인트 질이 조금 좋지 않았다. 칠을 하고 얼마 안 있다가 페인트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유는 신축건물이고 내가 첫 입주였는데, 어느 정도 먼지를 제거하고 페인트 칠을 했어야 했는데, 먼지나 불순물이 많아서 얇은 뿜칠을 했을 때 페인트가 먼지와 함께 떨어진 거였다. 그리고 페인트 자체도 물성이 강했다.



목작업은 뭔가 허술해 보였고, 내가 보내준 도면과는 다르게 작업대도 만들어져 있었고, 허술했다. 집성목으로(원목을 일정 크기로 잘라 이어 붙여서 만든 목재) 작업용 테이블과 수납장을 만들었는데... 장마철이라 수분을 머금은 나무는 휘어있었다. 그걸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공 가격이 싼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사용하지 못할 것을 만들어서 폐기물 금액을 더 내게 생긴 거다. 그리고 타일도 마찬가지로 센터가 맞지도 않고 규격이 엉망이었다. 타일사이에 줄눈이 지진 일어난 것처럼 시공한 지 3일 만에 다 갈라져 버렸다. 가벽도 틀은 몰딩(벽과 바닥을 이어주는 모양 있는 마감재)으로 마감을 하고, 다루끼(각목 같은 목작업 틀을 만들 때 쓰는 목재)로 틀 제작하고, 벽면은 석고보드로 했는데, 앞뒤로 석고보드는 1피스로만 마무리를 해서 손으로 툭치면 구멍이 날 것 같았다. 기본 2피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검색하고, 전기사장님한테 물어보고 알았다. 바닥은 데코타일로 진행했다. 헤링본 스타일로 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시공한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계약을 하고 3주가 지났을 무렵 공사가 거의 끝났고, 에어컨과 기계장비만 들어오면 되는 상황이었다. 작업대나 목작업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었고,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어느 날 태풍이 너무 심하게 불어 공방에는 가지 못하고 집에 있다가 다음날에 공방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테이블로 쓸려고 놔둔 우드슬랩 위에 물이 떨어져 있는 거였다. 혹시 내가 흘린 건지? 아니면 업자가 쏟은 건지 몰라서 닦고 갔는데, 다음날 와보니 같은자리에 물이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거였다. 그래서 한참 천장을 쳐다봤다. 내 얼굴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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