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레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그 물은 말로만 듣던 누수였다.
자세히 보니 천장스티로폼이 젖어있었고, 거기서 간헐적으로 물은 떨어지고 있었다. 일단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물어보니 집주인에게 전달을 하겠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 그 밑에 통을 받쳐놓고, 누수로 인해 계속 떨어지는 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에 엄청나게 많은 비가 왔다. 다음날 가보니 내가 밑에 받쳐놓은 통에 절반정도 차 있었다. 그것도 부동산에 전달했고, 집주인은 원래 부산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건물이 있는 곳으로 오기로 했다. 누수로 인해서 기계들의 입고는 전부 미뤄뒀고, 집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속한 날이 돼서 집주인이 공방을 방문하게 됐는데 부동산 소장님도 같이 참석을 했다. 위층에서 에어컨을 새로 달면서 생겼거나, 욕실에서 새는 것 같다고 2층에 같이 올라가 보기로 했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게 꺼림칙 하긴 했지만, 욕실이나 다른 부분을 보면서 얘기를 하다가 방 쪽에 에어컨을 새로 설치했는데, 마감이 잘 돼있지 않은 부분, 그리고 욕실에 타일 사이에 마감이 안된 부분을 보고 문제라고 판단해서 집주인이 업자를 부르겠다고 했고, 그로부터 5일이 지났다.
부동산 소장님께 물어보니 업자를 아직 컨텍 안 했다고 답변을 받았다. 나는 지금 기계업체랑 에어컨 업체가 계속 시공 언제 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난리인데, 차일피일 미루는 걸 보니 화가 나서 집주인에게 직접 연락해서 따져 물었다. '언제 업자 불러서 확인하고, 누수 잡아주실 건가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받지는 않고, 문자가 하나 왔다.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금 월세 안 받고 있잖아요.' 너무 뻔뻔한 답변에 황당했다. 월세 안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당연히 누수 때문에 진퇴양난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 월세를 받으면 그거는 범죄지. 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빠른 처리를 하지 않는 것도 화가 났지만 본인이 월세를 받지 않고 있으니 무작정 기다리라고 얘기하는 상식을 벗어난 뻔뻔함에 기가 찼다.
집주인에게 연락이 안 닿으니 부동산에 자꾸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소장님은 최대한 중재자 역할을 해주려고 노력해 주셨지만, 해결이 안 되니 계속 연락을 하게 됐다. 어느 날 업자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하려고 공방으로 갔다. 업자는 2층 집에 욕실, 에어컨 설치한 곳도 확인은 하고 건물 외벽도 확인하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일단 확인해 보니 욕실에서는 누수될만한 게 없고요. 에어컨 설치한 것도 지금 실외기 쪽 뚫는 방식은 잘못됐지만 외부는 마감이 잘 돼있는데, 내부 벽 마감이 안된 거라 이것 때문에 누수가 생긴 것도 아닌 것 같고, 드라이비트(건물 외부 건축 마감재) 연결하는 실리콘 사이에 비가 들이치면서 안으로 들어가서 생긴 누수 같은데, 이거 정확한 거 알려면 외벽 전부 훑어보고 1층 천장 전부 뜯어봐야 해요. ' 그 말은 나는 녹음을 했다. 생각해 봤다. 이 누수를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전까지는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는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 누수가 있는 곳에서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 건물에서는 더 이상 뭔가를 하기 힘들다. 결론은 누수를 잡는데 기약 없는 시간이 필요하고, 나는 계약을 파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의사를 부동산 소장님에게 알렸다. 소장님은 조금 더 기다려 주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확고했다.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1주일 정도는 기다리겠다 했다. 하늘이 도운 건지 아니면 나를 나락으로 떠미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1주일 사이에 태풍이 한 번 더 왔고, 어김없이 누수는 발생했다. 그리고 집주인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계약파기 조건을 걸었다. 지금까지 시행했던 모든 인테리어 금액 그대로 반환,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 (조명, 테이블 등)은 청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사를 하기 위해 내가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은 더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을 통해 돌아오는 싸늘한 답변 '집주인이 50만 원만 깎아달라고 하는데요?' 안된다고 했고, 요구한 만큼 안 주면 바로 소송준비 할 거라고 으름장도 놓고, 그 으름장이 실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내용증명을 보내려고 준비했다. 그리고 1주일 뒤 돈을 입금받았고, 부동산을 통해 더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에 사인도 하고, 영수증도 받았다.
그렇게 마음고생, 몸고생, 돈낭비, 시간낭비 해가면서 결국에 첫 상가계약은 파국을 맞았다. 멘탈도 나가고, 기계, 에어컨 사장님들이 자꾸 연락이 와서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하는데, 저렇게 괜찮은 컨디션은 구하기 힘들 것 같기도 했고, 다시 부동산을 돌면서 매물을 볼 생각을 하니까 벌써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어쩌겠나 해야지. 부동산 여러 군데 알아보고 또 연락을 했다. 괜찮은 곳은 월세가 비쌌고, 월세가 맞으면 입지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매일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을 검색하기도 했고, 원래 컨택했던 부동산 소장님들한테 연락을 돌리다가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최근에 월세가 많이 비쌌는데, 내려서 다시 공고하는 괜찮은 자리의 매물이 있다고. 나는 옷을 대충 입고 집을 나섰다.
앞에 2~3군데를 먼저 보여줬지만, 평수도 좁고 입지가 안 좋았다. 건물이 노후된 곳도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 마지막에 부동산 실장님이 보여준 매물은 내가 그전에 계약했던 매물 바로 위쪽라인이었다. '여기는 어떠세요? 원래 월세 100만 원이었는데, 최근에 80만 원까지 내렸어요.' 메인자리는 아니었지만 코너자리, 앞이 틔여있어서 좋았다. 외벽도 흰색으로 깔끔했고 분위기 좋았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한 번도 임차인이 들어온 적 없는 공실이었다. 한번 누수로 고생한 터라 이것저것 천장을 보고, 내부를 둘러봤다. 중간에 기둥이 2개 있어서 개방감은 없었지만, 나는 어차피 실을 나눠서 사용할 거라서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수도, 배수 자리를 확인했고 저번 매물보다는 컨디션은 안 좋았지만 입지나 평수가 더 넓어서 좋았다. 근데 월세를 조금 더 깎았으면 했다. 공실이고, 안 나가서 가격을 내렸고, 주변에 비슷한 컨디션의 공실도 많으니까 10만 원 정도는 조정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실장님에게 얘기했다.
'월세 10만 원 깎아주시면 계약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