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2020년 1월 오픈과 거의 동시에 전 세계적 팬데믹 코로나19가 국내에 많은 확진자를 내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사스나 메르스 정로도 지나갈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심각해졌다. 마스크 대란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매장운영이나 시설사용은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했고, 해외출입국 제제가 심화되었다. 당연히 해외에서 들어오는 원재료값이 단계별로 상승했으며, 정상적인 매장운영이 힘들게 됐다. 베이커리 쪽은 유럽에서 들어오는 재료가 많기 때문에 가격방어가 힘든 게 사실이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나약한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런 한탄을 할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더 이로울 테니까. 이건 불가항력이고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나아질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좀 당황했지만 매장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오픈 때 마케팅전략 없이 그냥 입소문+배달어플에 등록하는 것만 하고 꾸준히 운영해 보자 라는 생각으로 진행했던 게 시너지가 났다.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퀄리티에 대한 집착은 좋은 결과를 낳았고, 매장에 방문하지 못하는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식사빵을 좋아하는 다양분들이 배달로 매장을 많이 찾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배달로 접했던 다수의 손님들은 매장방문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욕심에 이것저것 메뉴를 늘렸다. 식사빵만 하면 재미없을 거 같아서 쿠키나 보틀케이크 시폰 다쿠아즈 등등 다양한 것들도 했었고 아주 잠시 주문케이크도 진행했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바빠지는 바람에 점점 가짓수를 줄이면서 필요한 제품만 생산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상하게 메인 라인이 아닌 1회성으로 만들었던 곁들임 메뉴(?)를 찾는 손님들도 많으셔서 한 번씩 새로운 거 하면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매출이 조금씩 늘었는데, 혼자서는 운영하기 힘들 거 같아서 직원을 구해봤으나, 너무 외진 곳이라 처참하게 실패했다.
매장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5일만 운영했고, 12시에 문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제품을 풀 세팅하기에는 빠듯했다. 평일에는 배달주문이 많았지만 금, 토는 매장에 오시는 분들과 사전예약이 많았다. 특히나 토요일은 30분~1시간 정도면 제품이 다 팔려버려서 문을 닫고 정리하고 있는데 오픈이 늦는 줄 알고 들어오는 분들도 계셨다. 체력이 모자라면 제품에 대한 열정도 사라질까 봐 최대한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1인기업으로 생산, 응대, 운영 등을 도맡아 하다 보니까 점점 지쳐가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리 장사가 잘 된다고 해도 매일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은 만든 제품의 절반정도가 남은 날도 있었다. 애지중지 만들고 남아있는 제품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았다. 코로나라서 푸드뱅크에 기부하는 것도 한정적이었다. 원재료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서 다시 원가 계산해서 판매가를 재책정하기도 했다. 애초에 마진을 많이 남기지 않고 좋은 재료 써서 사람들에게 판매할 생각이었으나, 재료수급이 안정적이지 않으니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판매가격을 많이 올리게 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내 작은 매장을 찾아주셨다. 그리고 오히려 내 상황을 걱정해 주시거나 오실 때마다 선물을 같이 주시는 분, 비대면 배달로만 봬서 얼굴을 못 뵈었지만 늘 코멘트를 남겨주는 다정한 손님들도 많았다. 그 흔한 리뷰이벤트는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문할 때마다 손편지와 함께 랜덤으로 서비스 제품을 함께 드렸다. 지금이야 배달이 시작되거나, 배달하는 분들이 도착했다 문자를 남겨주고 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내가 배달을 많이 이용해 보고, 또 사람들의 불만 사항을 보니, 배달이 늦게 출발하거나 늦게 도착하는 거에 대해서 클레임이 많은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늘 배달이 시작했으면 개인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주문하신 제품 배달 출발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쪽으로 연락부탁드립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그런 간단한 문자였다. 하지만 거기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고마운 분들도 많았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듬어가면서 매장운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제품을 만드는 일은 좋았다. 운영자는 매일 같은 풍경,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것도 도전해야 해야 했다. 그렇게 쏟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 바닥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갈되어 있었다. 그렇게 바닥이 보였다면 뭔가로 채워 넣어야 하는데, 뭘로 채워야 하는지? 원래 차 있었던 에너지, 열정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아서 만든 내 매장을 운영했는데, 내 궁극적인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감정이 드는 것에 대해서 용납할 수 없었다. 허탈했다.
또한 생산만을 하는 이 매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나는 성장하기를 원하고, 돈을 더 많이 벌기를 원한다. 그리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매장을 운영하는 게 성장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고, 시간은 낼 수 있었지만 집중력이나 체력은 더 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처음 이 일을 배웠던 제과점처럼 한동네에 기둥이 되는 매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수많은 카페들이 오픈을 하고 사라지며, 그 커다란 카페들은 필수적으로 디저트나 빵을 판매한다. 내 제품들이 아무리 나에게 특별하고 맛있어도, 재방문 주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동적으로 손님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어느 순간 이 매장이 감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더 깊이깊이 내면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