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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쓸쓸함

by 재비



'다른 기물도 보고 같이 사고 싶은데 혹시 매장에 가봐도 될까요?'



한 번에 기물들을 업자에게 넘기면 정말 헐값에 넘겨야 해서 한가닥 희망을 품고 중고나라에 올렸던 건데 한 사람이 여러 개를 가져가면 나야 좋았다. 많은 사람이랑 컨텍을 안 해도 되고, 빨리 정리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주소를 알려주고 그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뒤 체격이 왜소하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여성분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 '매장이 너무 예뻐요!'라고 시작된 대화에서 그분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게 됐다. 광주에서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족욕카페였으나, 다른 쪽으로 사업을 하고 싶어서 클래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이것저것 장비가 많이 필요한 거 같아서 알림 설정해두었었는데, 그때 내 글이 올라와서 연락을 했고, 여러 가지를 구매하고 싶어서 직접 방문했다고 했다. 샌드위치나, 청, 오란다 같은 답례품이나 케이터링에 필요한 제품은 많이 했는데, 빵 쪽은 아직 지식도 많이 없고, 힘든 것 같아서 조언도 구할 겸 방문했다고 한다.



일단 그분이 얘기하면서 가져가야 한다면 발효실, 큰 데크오븐, 버티컬믹서기, 컨벡션오븐, 작업대로 사용하던 우드슬랩 테이블, 테이블믹서기 2대였다. 거의 모든 제품을 가지고 가신다고 해서 나도 살짝 놀라서 '이걸 다요?' 이렇게 물었다. 어차피 사야 하는데 금액이 절반밖에 안 되고, 물건 상태도 새거나 다름없어서 그냥 한 번에 구매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뭘 드릴건 없고,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던 제품 몇 개를 해동해서 드시라고 했다. 깜파뉴랑 아몬드 크로와상이었는데, 먹어보고 너무 맛있다며, 레시피를 알 수 없냐 했다. 사실 이런 목적 때문에 온 건가? 싶다가도 이렇게 한 번에 물건 다 가져가는 것도 고맙고, 이런 것도 다 타이밍이라 좋게 생각했다. 그리고 뭐 레시피야 크게 상관없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깜파뉴, 아몬드크림 레시피를 알려줬고, 필요하면 발효종도 떼서 준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제품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선입금받고 오는 날 맞춰서 짐을 옮기는걸 봐주기로 했다. 오븐이나 믹서기는 직접 옮기기만 해서는 안되고 설치를 해야 해서 업자를 연결해줘야 하는데, 내가 구매했던 기계업자를 소개해줘서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파이롤러는 부산에 있는 분이 저녁에 오셔서 바로 실어가셨다. 파이롤러는 1년 6개월 밖에 사용 안 했으니 새 제품이나 다름없었다. 아침에 생산할 때 잠깐 사용했고, 색 있는 반죽은 사용하지도 않고 딱 크로와상 반죽으로만 사용했으니 이염도 없고, 사용감도 거의 없었다. 나머지 제빙기와 쇼케이스는 아무래도 안 나가길래, 내가 샀던 사장님에게 다시 되팔았지만 1/5 가격만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많이 쳐주신 거라고... 나머지 진열장은 그때 살고 있는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상판을 떼어내면 밑에 하부장을 따로 옮기고 상판을 옮겨서 다시 조립하면 될 거라고 했다. 그냥 돈을 주고 업자에게 부탁했어야 했다. 그때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같이 옮기다가 크게 싸웠었다.



그렇게 기물들이 다 치워진 매장을 보고 있으니 엄청나게 쓸쓸한 감정이 몰아쳤다. 처음 기물 넣기 전 페인트칠 하고, 바닥시공하고, 조명 달고 했던 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주변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얘기했다. '너무 아깝지 않아?' 글쎄 나는 결정을 빨리하는 편이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고 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 서운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이 인테리어나 내가 만들어놓은 매장을 아까워한다면 새로운 어떤 일을 하거나 휴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 중에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과감히 보내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겨진 것에 대한 미련은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앞으로 더 나아가고 변할 수 있는 방법이다.



1억 원 정도를 대출받아 투자했던 투자금은 장사하면서 꼬박꼬박 갚고, 기물을 정리하고, 매장 보증금을 되돌려 받으면서 약 3000만 원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사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일하든 뭘 하든 회생가능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되네?' 장사를 좀 더 오래 했거나,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을 채용했거나, 다른 곳에서 오픈을 했더라면 충분히 상쇄되고 이익까지 볼 수 있는 금액이었다. 다음에 다시 도전하기에 충분한 데이터였다.



그렇게 2020년이 끝나갔다. 많이 얻고 많이 잃었던 1년. 나는 어떤 기로에 서있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하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궁극적인 부분에 다가가기 위해서 단 하나가 필요했다.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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