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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어떤 한 마디

by 재비


'자 그럼 이제 세일즈는 어디서 배우는 거지?'



세무 부분이나 법인영업을 알려주는 거라서 당연히 세일즈 부분도 단계적인 게 있다고 생각했다. 따로 교본 같은 건 찾을 수 없었고, 그냥 선배 한 명을 나한테 붙여줬는데, 그 선배라는 사람이 지점장이었다. 나이는 내 또래 같아 보였는데 허세가 살짝 있는 능글맞은 스타일. 원래 영업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가져야 잘 되는 걸까? 생각했다. 뭐 그래도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걸 배워야 하니까 최대한 잘 따라다니며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처음에는 같이 다니면서 DB를 받아(아웃바운드 콜센터에서 대표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약속을 잡으면 그에 해당하는 정보는 영업팀에 넘겨준다. 그 넘겨준 자료를 DB라고 한다.) 하루에 1~2군데 정도 같이 돌아다니며 영업을 하게 된다.



DB를 받으면 영업전날에 그 회사에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자체프로그램에서 다시 한번 회사를 검색해 재무제표를 확인하고, 채무관계라던지 주주관계 등 그 법인에 대해 영업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서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출력해서 자료를 챙겨서 대표를 만나야 한다. 그 회사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고 보통 어떤 것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인지도 대충 알아보고 가면 대화가 원활하다. 일단은 내가 가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은 안되니, 선배가 얘기하는 것들을 녹음한다. 그리고 그걸 들으면서 대화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듣고 배운 다음 내가 주도적으로 얘기하는 경험을 쌓는 거다.



일단 재무제표를 본다던지, 회사검색해서 주주관계 파악해서 포인트 잡는 것, DB 보는 것 등등 회사에서 알려주는 교육적인 부분은 참 좋았다. 근데 이게 세일즈 방법 같은 건 없는 건지 단계가 없고 그냥 두루뭉술하게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라고만 알려주는 거라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여러 번 따라다녔고, 영업을 해야 한다면 옷도 그런 스타일이라 구매해야 하고, 기름값이나 주차비 등 지원은 안 돼서 수입은 없는데 엄청난 지출을 하게 됐다. 근데 원래 영업직. 특히 보험은(보험은 원래 수익구조가 다단계다..)는 밑에 직원을 잘 키워주고, 수익이 나게끔 만들어 주는 건데(실적은 배분이 가능한데, 신입들이 정착하기 위해서 선배들은 기여도가 거의 없어도 자기 밑에 직속 신입은 수익배분을 해주기도 한다. 신입이 잘 정착해야 윗라인이 일을 안 해도 수당을 받아 돈을 많이 버는 구조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내 선배는 그런 건 없는 거 같았다. 수익도 배분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같이 다녔던 곳을 혼자의 실적으로 올린 거 보면.



그 이후로 4개월간 선배와 함께 다니기도 했지만, 나중에 3개월 차부터는 직접 영업을 하고 혼자 법인을 방문해서 해보기도 하고, 스스로 회사 분석도 하고, 어떤 말을 해야지 들어줄지 고민을 하게 됐다. 성과는 없어도, 나갈 데가 없어도 그 사무실에서 늘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건 나였다. 생각보다 법인영업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지도 의문이 들 때쯤 어떤 회사를 방문하게 됐는데 거기 대표가 회의한다고 나를 1시간 30분이나 기다리게 했다. 일단 만나기라도 하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대표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기다린 시간에 대해서 사과한마디 하지 않았다. 앉으라고 얘기했고 내가 10분 정도 설명을 이어가자 한마디 던졌다.



'젊은 아가씨가 말이야 땀 흘려 돈 벌생각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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