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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과도기

by 재비


'젊은 아가씨가 말이야 땀 흘려 돈 벌생각을 해야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한마디에 나는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땀 흘려 돈을 번다? 누구보다 땀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나다. 어쩌면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법인대표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느끼는 직업의 결이라는 게 있다. 지금까지 본인이 갑이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무례하게 얘기하는 사람에게 까지 내 할 말 못 하고 있고 싶지 않았다. '대표님 제가 쉽게 돈 버는 거 같으세요?' 이렇게 되받아 쳤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옷 쫙 빼입고 구두 신고 돈 버는 게 쉽게 돈 버는 게 아니면 뭐야?' 이런 1차원적이고 유아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이 이 정도 규모의 법인 사업체 대표라고?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 직원도, 거래처 직원도 아닌 그냥 영업하러 온 직원이기 때문에 반대로 내 마음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올 권리도 있다. '뭐 설명 많이 들으셨다고 했으니 제가 드릴 말씀은 없는 거 같네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 일어서는데 그 대표는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나도 더 이상의 감정소모는 하기 싫어서 그대로 돌아 나왔다.



그리고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사실 일이라고 해도 보수는 전혀 없이 4개월간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공부하고 교육을 들으며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일이 재미있을까? 전혀 아니다. 사실 뭘 해도 깊이 파고 그것을 기반으로 얘기하고 설득하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내가 세무사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영업자체도 보험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무이슈를 해결해 주고 보수를 받는데 그 수단이 현금이 아니라 보험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역시 보험은 보험일 뿐이었다. 대표가 돈을 주기적으로 내지 않거나 하면 수당으로 받은 돈을 게워내야 하는 프로세스, 그리고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여러 가지 다이내믹을 파악할 수 있는데 날고기고했던 기존 영업하는 사람들도, 사실 많이 어려워한다는 것.



더 하지 않을 거라면 그냥 그만두는 게 나았다. 월급 한 푼 나오지 않았던 회사였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세무 신생아였는데 그래도 법인 구조나 세무 부분, 용어 등은 말하면 알아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자 이것으로 대박은 못 쳤으니 중박이다. 이런 모든 자료들, 교육을 다 받고 나올 수 있었으니 경험했고 배웠다 생각하면 되는 거다. 여기는 인수인계라는 게 없다. 그게 좋았다. 그냥 그만두겠다고 얘기하면 그렇게 다음날부터 나가지 않아도 될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백수가 됐다.



또다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봤다. 4개월간 수입이 없다 보니 당장 돈이 부족해서 뭐라도 일은 해야 하는데, 시간은 많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가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자금 없이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전에 봤던 강의 중에 해외구매대행이라는 부업이 생각났다. 0원으로 몇천만 원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솔깃했던 적이 있었지만, 영업일 배운다고 바로 실행을 못했고 그냥 강의만 수강했었는데, 시간이 생겼으니 '한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일은 인터넷으로 마켓을 만들어서 중국에 있는 제품을 선택해서 내 마켓에 올리고, 고객이 주문을 하면 '대신'주문을 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으로 매장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파급력이 생기는 건지 오프라인 매장을 해보고 실감했던 나였다. 이것도 잘되면 대박 안 돼도 중박이다. 내가 해본 적 없는 일이고, 앞으로 나에게 필요한 일이며, 배울 점 또한 있을 거니까.



한번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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