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체크포인트
칼 한 자루, 나무 한 조각으로 시작한 카빙이지만, 이런저런 욕심이 더해지면서, 살림살이는 자꾸만 늘어났다.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집에 들어가면 잠잘 때까지 나무만 깎는데, 깎다가 12시를 훌쩍 넘기는 일이 빈번해졌다.
집을 치워야지 생각해도, 운동을 해야지 생각해도, 책을 좀 봐야지 생각해도, 들어가서 무심코 나무를 잡으면 잘 때까지 나무만 깎는 일이 왕왕했다. 깎기 시작하면 톱밥이 날리고, 날리는 톱밥을 쓸어내고, 다시 톱밥을 만들어내는 일상. 공간 분리에 대한 생각이 절실해지던 찰나, '작업실을 빌리지 그래'라는 친구의 한마디가 머릿속에 콕 박혔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했던 작업실에 대한 공상은, 공구를 마음껏 어지르고, 톱밥을 아무렇게나 날려도 좋고, 기계도 맘대로 쓸 수 있으며, 지인들과 함께 카빙하고 수다를 떠는 등, 마음껏 부풀었다. 지금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머릿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그러다가 네이버에서 동네 인근의 임대 상가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또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보이는 게 있어 무심코 전화를 하고 부동산을 찾아갔다. 구상에서부터 부동산까지 3~4개월이 걸렸다. 과연 그런 지출이 감당될지, 이 걸 통해 뭔가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몇 주 동안을 고민하면서, 4군데 정도의 부동산을 보고, 약간은 충동적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길 빌라 1층 상가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 개인적인 작업실의 조건 (무엇을 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 집 10분 거리 이내 & 안전한 위치
* 이왕이면 1층.
* 1층인데 소음에 덜 민감한 곳
* 깔끔해서 인테리어 비용이 덜 들 곳
* 감당 가능한 월세
상가 임대차는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리 크지 않고, 번잡한 상권도 아니고, 빌라 1채를 주인 부부가 소유한 건물이어서 크게 문제 생길 일은 없다고 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 일반적으로 체크해야 할 것들,
* 보증금/ 권리금/ 월세 (부가세?/간이과세?)
* 관리비/ 주차비 (별도 여부)
* 위치/ 평수
* 화장실.. (화장실이 너무나 암담하여 포기한 곳도 있다..)
* 주변 소음/ 냄새/ 교통편
* 상하수도/ 전기/ 정화조
* 인테리어 상태 : 도배/ 장판/ 문/ 창문 위치 등등
* 등기부등본 (근저당 체크 등)
나름 인터넷을 참조하고 많은 고민을 거쳐서 부동산 체크리스트를 만들었고, 또 나름 리스트대로 따지고 골라서 선택한 작업실이지만, 이 리스트가 실상 얼마나 하나마나한 것이었는가를 확인하는 데는 입주한 지 단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리스트 자체도 실무보다는 이론스러웠지만, 리스트에 있는 것조차도 제대로 체크할 줄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