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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Jan 09. 2019

나무의 결, 그 어려움에 대하여

하물며 사람의 결은.


나무는 자라는 환경에 따라서 금방 금방 자라기도 하고, 천천히 자라기도 한다.

보통 더운 열대지역에서는 나무가 금방 금방 자라고, 추운 지역에서는 나무가 자라는데 시간이 걸린다. 수종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장 차이는 나무의 나이테로 가늠할 수 있다. 나이테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세포의 성장 속도가 변하면서 생긴다. 성장 속도가 빠른 나무는 나이테의 간격이 크고, 열대지방 같이 계절 변화가 없는 지역은 나이테가 없는 나무도 있다. 더디 자란 나무는 나이테의 간격이 좁다. 깎을 때 농도가 있는 것은 더디자란 나무이다. 나이테가 촘촘한 만큼 깎았을 때의 무늬도 예쁘고 시간이 걸린 만큼 단단하고 묵직하다.

나이테가 비단 나무의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나무가 겪은 온갖 풍파도 담겨있다. 가뭄, 폭풍, 외부에서 받는 온갖 영향들이 그해 그해의 나이테에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종종 어찌할 수 없는 옹이를 만나기도 한다. 옹이는 아마 나무가 겪는 가장 어려운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아 나이테의 영향을 받아 순결과 엇결이 생긴다.
순결은 나무를 깎았을 때 매끄럽게 깎이는 결이고,
엇결은 나무를 깎았을 때 거스러미가 생기거나 두둑 걸려서 잘 깎이지 않는 결이다.


나무로 작업을 하는 이들은 나무의 결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특히나, 카빙 작업은 손으로 나무를 다듬는 작업인 만큼 더더욱 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결을 잘 잡으면 도자기처럼 매끈하게 깎이지만, 결을 잘못 잡으면 깎인 면이 지저분하다. 결에 걸려서 안 깎이거나 뜯기기도 한다.


또한 순결이라고 해서 그 부분이 전부 순결인 것도 아니다. 깎다 보면 같은 라인인데 엇결로 바뀌기도 한다. 결이 갑자기 휘어질 때도 있고, 옹이가 나오면 비켜가야 하기도 한다. 2년 가까이 나무를 잡았지만, 여전히 나뭇결을 읽는 것이 어렵다. 깎아보기 전까지는 순결인지 엇결인지 잘 모르겠고, 어떤 때는 어느 방향으로 깎아봐도 전부 엇결인 것 같을 때가 있다. 그저 나무 한 토막일 뿐인데 이토록 손이 간다. 자라면서 받았던 온갖 풍파, 시간들이 축적된 나무의 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말, 유달리 결 찾기가 힘들어 나무와 씨름을 하다 문득 몇 년을 살아온 나무의 결도 이렇게 어려운데, 사람은 결은 얼마나 더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나무 한 토막도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기 위해 들여다보고, 하염없이 만져 보며 많은 시간 공을 들인다. 나무의 결을 찾듯이 사람 또한 그렇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 친구, 연인 어느 것 하나 쉬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이 다름을, 경험해온 인생이 다름을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 얼마나 복잡다단한 결이 생겨났을까. 이제는 사람을 볼 때도 나뭇결을 찾듯이 그렇게 찬찬히 들여다보고 관계를 다듬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쥐고 있는 것은 나무지만, 때로는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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