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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Mar 22. 2019

대패치기

호모 파베르 - 인간은 도구를 쓰는 동물. 못쓰면 뷁.

최근에 카빙 심화반 두 번째 과제로, 미니 테이블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다. 


하다 보니 처음에 구상했던 것보다 점점 더 크기가 커지고, 테이블 다리가 길어졌는데, 카빙 칼로 긴 테이블 다리를 깎다 보니 점점 더 의기소침해진다. 아무리 예쁘게 깎으려고 해도, 45cm에 육박하는 긴 다리는 예쁘게 깎이지 않는다. 


1차 시도 - 드로우 나이프/ 

길게는 깎이는데 엇결을 만날 때마다 칼날이 나무를 파고들고, 뜯겨나간다. 한 10cm~20cm 정도 잘 깎인다 싶다가도 어김없이 엇결, 그리고 뜯김. 반대편에서 다시 드로우 나이프로 깎으면 또 새로운 엇결을 만난다. 깎아내는 양은 많으나 뜯기는 나뭇결이 감당이 안된다.


2차 시도 - 모라 나이프/

엇결을 만날 때마다 방향을 바꿔가면서 매끄럽게 깎을 수는 있으나, 깎이는 량이 적으니 너무 손이 많이 가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리가 매끈해지지 않다는 것. 칼로 깎을 수 있는 길이가 드로우 나이프보다 훨씬 짧다 보니, 테이블 다리가 점점 더 울퉁불퉁해진다. 


근 3주 동안, 드로우 나이프와 모라 나이프를 섞어가며 테이블 다리에 오-오-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테이블 다리가 3개인 게 다행이랄까. 작업을 할 때마다 나무가 뜯기고 수습하고를 반복하면서 점차 지쳐갔다. 몇 시간을 공들여 깎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연 이 테이블 다리 3개를 완성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던 차에 이 고충을 목공을 배우는 다른 친구에게 털어놨다. 그녀로부터 대패를 치라는 심플한 조언을 들었다. 본인도 목공 수업에서 테이블 만들 때 다리는 대패로 다듬었다고. 


3차 시도 - 대패/ 

사실 나의 주 작업이 카빙이다 보니 주로 나이프를 쓰는 작업에 치중해 있었다. 대패라면, 슬금슬금 이런저런 목공 도구들을 중고로 사모을 때 꿍쳐놓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날로 퇴근 후 작업실에서 대패를 꺼내 들었다. 처음 치는 대패라 뜯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첫 시도 치고는 상당히 양호했다. 대패의 경우 어미 날과 새끼 날이 있어서 새끼 날이 어미 날이 엇결에서 나무를 파고드는 걸 막아주는 스토퍼 기능을 한단다. 대패를 잘 치면 뜯김도 없이 매끄럽게 깎인다는데, 처음 해보는 것이라 뜯김이 좀 있었다. 그러나 파고들지 않으니 뜯긴 부분은 카빙 나이프로 다듬어 주면 되었다. 2시간 동안 대패를 열심히 친 결과, 3주 만에 처음으로 만족스러울 만큼 테이플 다리의 매끈한 형태가 나왔다. 


대패를 활용하면서, 도구를 제대로 쓸 줄 몰라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물이 시원찮아 울적하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호모 파베르. 도구를 쓰는 인간. 아무리 많은 도구를 사모아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몸만 고생인 법이다. 해야 할 작업에 적합한 도구를 골라내고,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능력. 이에 따라 작업시간과 효율은 아주 큰 차이가 난다. 어쨌거나 하나 하나의 도구를 배우고, 익숙해질 때마다 꽤나 큰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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