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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몬트리올은 그런 곳이다.

류재언과 서한이 in Montreal since 2003

2003년 처음 몬트리올에 왔다. 
그녀와 연인이 된지 2개월 뒤 캐나다로 떠난 그녀를 보기위해서.


그리로부터 6년간, 
그녀가 몬트리올에서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매해 몬트리올에 갔다.  


내가 한학기동안 과외를 해서 모은 돈은 150만원에 달하는 항공료를 지불하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나머지 한달간 몬트리올에 같이 있으면서 함께 쓸 용돈은 그녀가 캐나다에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해서 모은 돈으로 충당을 했다.


한국에서의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미생물학/면역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을 택했던 그녀는 유독 공부량이 많았던 탓에 사실상 알바를 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 바쁜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알바를 했으니, 한학기 동안 알바를 했어도 모인 돈이 많을리 없었다.


가난한 대학생들이었다. 

팀홀튼의 치킨수프와 베이글, 서브웨이의 샌드위치, 집 앞 Indian이 운영하는 1.99달러 피자가 주식이었다.

너무 가고싶어 수없이 기웃거리며 지나다녔던 올드포트의 근사한 레스토랑들은 한달내내 아끼고 아껴서 마련한 돈으로 이별하기 직전에 마지막 저녁을 함께했던 곳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올드포트 주위의 레스토랑들은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슬픈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오죽했으면 동대문에서 3000원짜리 T 셔츠를 도매로 100장 정도 사와서 몬트리올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잘팔릴 때는 하루에 5~10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기도 했었다. T셔츠를 팔면서 사람구경도하고 그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도하고 또 기타도 치고 그러면서 우린 우리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몬트리올은 우리에게 그런곳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그녀가 머물렀던 곳.
그녀를 만나기위해 반드시 와야만 했던 곳.
그리고 그녀의 손을 꼭잡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거닐었던 곳.


한국과 캐나다,
12시간의 시차,
낮과 밤을 달리하며,
세상 정반대에 있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6년을 버텼던 곳.


6개월 만에 만나 미친듯이 끌어안고
매번 공항에서 눈시울이 시뻘게져 펑펑 울며 헤어졌던 곳,
기쁨과 원망이 함께 서려있는 곳,
우리에게 몬트리올은 그런 곳이다.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추억의 몬트리올을 거닐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녀의 손 뿐만아니라 그녀와 나의 딸 선율이의 작은 손도 함께 였다.

몬트리올에 있는 내내 복잡한 감정들이 날 따라다녔다. 
매해 너무 힘들었고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긴 터널을 지나,
우리 둘의 딸과 함께 이 곳을 거닐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13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던 몬트리올처럼,
그녀도 내게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일벌리기 좋아하는 남자 곁에서,
그 일이 실제로 가능하게 조용히 도와주는 사람.


사람만나기 좋아하는 남자 곁에서,
인간관계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이야기해주는 사람.


군대에서,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며, 사회생활을하며
내가 조급하고 불안감을 느낄때마다,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차분하게 하는 힘이 있는 사람.


한결같은 그녀와 함께 또 다시,
우리의 한결같은 몬트리올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간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눈물흘리지 않고 이별했지만,
우리들의 몬트리올이 심하게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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