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_리더의 능력_사피엔스_류재언변호사_
10년전, 나는 주식에 빠져 큰 돈을 잃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주식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아니 주식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 뿐만 아니고, 추상적인 그 어떤 것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증권계좌에 쌓여 있던 그 숫자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내가 직접 경험한 것, 내가 만나본 사람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IT산업, 금융산업 보다는 제조업이 훨씬 끌린다. 모두가 떠들어대는 '4차산업혁명'과 같이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도 믿지 않는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화폐도 내겐 남의 일일 뿐이다.
차라리 나같은 인간에겐 손에 잡히는 금괴를 사는 것이 1000배 더 마음이 편하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한계인지 모른다.
'사피엔스'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한 집단이 서로 친밀하게 지내며 강한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규모의 크기는 150명(마리) 정도에 한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호모사피엔스는 이 임계치를 넘어 수십만명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수만명이 하나의 기업에 속해 일하기도 한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다른 종류와는 달리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능력으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 즉 공통의 신화를 만들어 사람을 결집시키고 대규모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인사이트 있는 주장이다.
예컨대 작년 연말 촛불집회를 떠올려보자.
매 주말마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이라는 한 장소에 모여 촛불을 들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평화시위를 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실체가 없는 공통의 신화를 모두가 다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들 이외의 그 어떤 동물도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인간 이외에 가장 지능이 높다는 침팬치가 이런 추상적 가치를 위해 수만 마리가 한 곳에 모여 집단행동을 하겠는가?
관점을 조금 바꾸어 비즈니스 영역에 적용을 해보아도 재미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지구상의 가작 섹시한 지도자들은,
허구를 창조하고 이를 허구가 아닌 것처럼 믿게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조직의 구성원들과 대중들은 리더이 제시한 그러한 허구에 매료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투자자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보자. 그는 믿기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데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최근 열린 소프트뱅크 2017 연례 주주총회에서 손회장은 “소프트뱅크는 정보 혁명 회사”라고 정의하며, "앞으로 30년 동안 5000개 회사와 제휴를 맺고, AI, 로봇을 중심으로 소프트뱅크의 가치를 약 2000조원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의 스피치에서 뽑아낼 수 있는 키워드들,
정보혁명, 30년, 5000개회사, AI, 로봇, 가치, 2000조,
그는 이 키워드들로 전세계 소프트뱅크의 주주들과 직원들을 매료시킨다.
현재로서 저 수치는 명백한 허구이다.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어보이는 수치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면 결코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손정의 회장이 리더로서 가진 탁월함이자,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페이스북의 마크주커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를 연결시키겠다.'고 이야기 한다. 2017년 6월에 새롭게 정의한 페이스북의 Mission Statement는
"Bring The World Closer Together"이다.
놀라운 것은 주커버그가 이미 2003년 하버드 기숙사방에서 페이스북을 만들던 날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Kirkland House에 있는 작은 기숙사 방에서 Facebook을 처음 시작했던 날 밤이 기억나는군요. 제 친구 KX와 함께 Noch’s 피자집에 갔죠. 전 그에게 하버드 커뮤니티를 전부 연결하게 되어 너무 신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전세계를 연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http://www.itnews.or.kr/?p=21998)
그후 15년간 페이스북의 직원들, 투자자, 주주들은 주커버그가 만들어낸 이 허구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 집중하며 페이스북을 미친듯이 성장케하였다.
*** 어쩌면 지금은 페이스북의 이러한 미션이 더 이상 섹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페이스북에게 있어 이 미션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스북이 새롭게 변경한 미션스테이트먼트는 조금 더 섹시한 문구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허구를 허구아닌 것처럼 믿게 만드는 사람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가 한 명이 떠오른다.
테슬라, 스페이스 X 등을 설립한 엘론머스크.
이 친구는 아예 인류와 우주를 논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인류의 습성들을 통째로 뒤흔들려 한다.
인류의 이동수단: 테슬라
인류의 삶의 터전: 스페이스 X
인류가 사용하는 연료: 솔라시티
“인류는 지구뿐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사는 다행성 거주종(multiplanetary species)이 될 것입니다.”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세계적 민간 우주회사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사진)가 장차 100만명을 화성에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6092830711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이 허구의 결정체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손익분기점을 바라보기는 커녕 수조원의 적자가 나도, 그가 만든 신화에 주주와 투자자들은 재무제표를 따지지 않고 테슬라에, 스페이스 X에 기꺼이 투자한다. 이것이 엘론 머스크가 가진 탁월함이자, 리더가 만들어낸 신화가 통할 때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이다.
소규모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과 달리,
150명의 조직이라는 임계치를 뛰어넘는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탁월함이 요구된다.
수백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하게 만들 수 있는 힘.
잠재적 주주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꺼이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
리더가 제시하는 기업의 미션과 비젼이 바로 그것이며,
우리 기업만이 가진 스토리,
우리 기업의 신화,
우리 기업의 정체성.
을 고민하고 이를 조직에 내재화시키고,
외부적으로 알리는 과정이
총체적으로 이와 직결되는 작업일 것이다.
브랜딩과도 직결되는 이 과정이 없다면,
기업이 아니라,
아직도 장사 수준의 거래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삼성의 1등주의 신화도,
배달의 민족의 배민다움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면,
신화를 만들어 공유하고,
여기에 스토리를 입히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임계치를 넘는 거대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고,
수많은 주주들과 소비자들을 그 스토리에 매료되게 만드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 다를 수 있는 점.
장사 차원이 아닌 비즈니스를 하려는 리더에게 필요한 탁월함.
조직 전체가 한가지 목표에 매진하게 할 수 있는 '공통의 신화'를 만들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이를 유지해나가고 조직 내부에 내재화 시킬 수 있는 끈기와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