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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e Oct 13. 2024

떡의 맵시

Galuppi Sonata No.5  mov.1

멀리 여행을 가면 짧은 일정이라도 그 동네 사람들처럼 살아보려 한다. 

골목골목 걸어 다니며 사람, 상점, 가정집, 발코니에 놓인 화분이나 널어 둔 빨래를 관찰한다. 그러고 나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그들이 먹는 것을 따라서 먹어보는 것이다. 배가 작아 많이 먹지 못하기에 메뉴 선정에 최선을 다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실례지만 오늘 무엇을 먹었냐고 물어 따라서 먹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기도 하고 근처에서 가장 자주 가는 식당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찾아가 보기도 한다.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식사만큼 중요한 것이 지역의 대표 간식거리다. 정작 현지인들은 별로 즐기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사랑스러운 파리의 마카롱, 뮌헨의 묵직한 슈톨렌, 쾌활한 정감이 느껴지는 리스본의 에그타르트, 자유분방한 방콕 밤거리의 로띠 같은 것에는 저마다의 지역 색이 묻어나 있다. 

단맛을 기본으로 모양, 색깔, 향, 식감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낯섦이 여행을 떠나 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지금 나를 둘러싼 생소한 공기에 한껏 동화하게 해 준다. 이 달콤한 다양성이 참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그렇게 온 감각으로 여행을 즐기고 돌아오면 서울은 반가운 단정함으로 맞아준다. 

단 며칠 만의 귀향에도 익숙했던 것들이 달리 보인다. 쪽빛 하늘과 한강, 우뚝 우뚝 솟아 있는 산의 조화로운 맵시가 도시 곳곳에 스며 있었다는 걸 발견한다. 

오랜만에 쐬는 우리나라의 바람은 꼭 나무 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주는 느낌이다. 마치 풀려 있던 눈을 반짝이고 구부정한 허리를 곧게 펴야 할 것만 같이 여행하던 잠깐 동안에 바뀌어 있던 행동거지를 다정하게 바로 해준다.


외국의 디저트에 나라마다의 매력이 풍기는 것처럼 우리나라 전통 과자들도 그렇다.

곱게 빚어 쪄서 참기름을 발라낸 알록달록한 송편, 콩가루에 꿀을 섞어 개어 전통문양을 찍어 낸 다식, 여럿이 모래 찜질하는 것 같은 두텁떡, 김이 모락모락 각 잡혀 쌓인 시루떡까지. 

따뜻하고 포근하면서도 고운 자태로 단정한 맵시를 보이면서 그 이면에 아낌없이 넣은 부재료들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식감으로 반전 매력까지 뽐낸다.


갈루피의 다섯 번째 소나타 1악장을 들으면 꼭 이제 막 해가 들기 시작한 깊은 산사의 아침 풀잎들 사이로 이슬이 똑똑 떨어지는, 우리나라 단정함의 결정체와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전생에 한국의 스님이었을까 싶은 이탈리아 음악가의 유산을 틀고 넓은 도자기 접시에 쑥으로 초록색을 낸 송편을 나란히 올리고 옆에는 향이 좋은 차를 우려 두고 허리를 곧게 펴고 앉으면 여기가 바로 달콤한 한국.



Galuppi Sonata No.5 mo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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