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19년 사이 여느 날의 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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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짜리가 회사에 다니며 고3 행세를 하니 당연히 힘들지
다 내가 선택한 것이었지만 그래서 더 외롭기도 했다.
꿈도 믿음도 삶의 목적도 고통에 가려 흐려지는 날이 있었다.
다 이해해 줄 누군가에게 기대어 끝없이 징징대고 싶었다.
하지만 다 홀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답은 그저 한 날 한 날을 넘기고 넘기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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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음악은 나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다.
연주할 때나 들을 때나 자유롭다.
주연과 조연, 멜로디와 반주라는 구분보다 여러 주인공의 돌림노래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음악,
이렇게 민주적인 음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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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각자 시간차를 두고 피고 지고 하는 것이 꼭 푸가 같다.
목련과 벚꽃이 피고 차례로 지고
조팝나무가 피고 매화가 피고 기다리고 있던 철쭉이 피고
봄, 대자연의 대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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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혼자 나와있을 때가 많았다.
어느 아침 날아든 파리가 높은 라에 앉았다.
진동이 울리면 날아가겠거니 하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한동안 그 자리에서 가만히 들어주었다.
외로운 마음은 정에 쉽게 물든다.
파리는 다시 날아갔고 비어있는 건반에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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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잘 차려입고 다니는 게 낙이었던 인간이
셔츠에 구멍 난 줄도 모르고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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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꼭 향수 같다. 공기 중에서도 시간 속에서도 손에서도 금방 휘발되어 버린다. 여러 옷을 입고 여러 번 뿌리기를 여러 날 거쳐야 내 향이 되듯이 내 여러 자아로 소리를 만나고 여러 번 흡수하는 걸 여러 날 반복해야만 내 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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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듣기
노래하고 있지 않은 침묵 속에도 표정은 호흡은 마음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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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속도로 12분에 다 치는 곡을 느리게 연습할 때는 한 시간 걸려서 쳤다.
이렇게 연습하고 나면 꼭 연습실 바깥세상과 시간이 다르게 흘러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바깥세상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다.
피아노가 날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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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음악을, 라두 루푸의 연주를 들을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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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 라흐마니노프 곡을 좋아할 때는 특히 손이 큰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손이 크거나 손가락이 긴 사람을 보면 피아노 치기 좋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내 손을 본다.
어른 손이 나보다 작은 건 아직 못 봤다.
작은 손바닥에서 이어진 작은 손가락 끝마다 연약한 손톱이 붙어있다. 새끼손가락은 꼭 새우깡 마냥 톡 부러지게 생겼다. 원망 어린 눈을 하다가도 발이 페달에도 닿지 않았던 거장들의 어린 시절 연주들을 떠올린다. 그 작은 손들은 나를 바다로도 하늘로도 이끈다.
아기 거장들의 손에 비하면 커다란 내 손. 이 손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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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동생이 밤에 누나 내일 뭐 해? 해서 뭐 안 해. 대답했는데
아침에 연습실에 가려고 챙겨서 나오니까 동생이 후다닥 와서 어디 안 간다며? 묻는다
연습은 디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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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가장 빨리 지나간다. 연습실 안과 밖은 시간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피아노를 치면 1초에도 몇 개의 음을 칠 일이 생기기도 하고
느린 속도로 연습할 때에도 예민한 눈과 귀로 움직임을 살피고 소리를 듣는다.
일상보다 깨어 있는 상태로 시간을 더 촘촘히 쪼개서 받아들이게 된다.
맥박이 더 빨리 뛰는 동물이 다른 동물들보다 빠른 시간 속에서 살듯이
시간 예술을 하는 이들은 같은 시간도 더 밀도 있게 살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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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다간 수명이 줄겠다 생각하면서도
손가락을 많이 쓰니까 치매는 안 오겠다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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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
토카타 악보 낱장마다 써 놓았다.
전에는 그냥 교훈적인 말이라 여겼는데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우연히 다시 본 날 열댓 번이나 반복해서 적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일단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말,
꼭 내 피아노에 대한 마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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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 앞에서 가장 진실되다.
피아노 앞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이 된다.
피아노를 칠 때 나는 가장 존재한다.
피아노를 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잔머리 굴리는 걸 좋아하는데, 피아노한테는 꾀가 통하지 않는다.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나에게 실망할 일이 없다.
잔인하도록 내가 한 만큼만 답해주는 공정함
삶의 기준. 내가 가장 정직할 수 있는 곳,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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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고 나머지 손가락은 들어주는 식으로
메트로놈의 가장 느린 속도에 맞춘 손가락 연습을 1년 가까이 하고 있다.
느린 속도로 여러 건반을 지나 멜로디를 만들어가다 보면 손이 꼭 옛날 타자기 같다.
타자기가 종이에 바른 글자를 새기듯이 내 손가락의 누르고 드는 움직임이 공기에 바른 소리로 그려졌으면.
그래서 매일같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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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네 마디씩, 곡 전체를 네 달 동안 읽고
연주 한 번에 한 시간이 걸리는 느린 연습을 오늘로 50번 하고 다음 속도로 넘어간다.
좋은 소리의 탑을 쌓아갈 거다. 나만 들을 수 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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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심의 순간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 공기 중에 바르게 음악을 그려나갈 때만큼은 누구도 진심이 아닐 수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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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손수건으로 건반을 먼저 닦고
건반을 닦은 부분으로 자기 얼굴의 땀도 닦는다.
이미 피아노가 아닌 피아노와 한 몸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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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레가토 연습 네 시간 끝에 제 속도로 마지막 연습을 했는데
소리가 좋아서 울 뻔했다.
흐물거리며 연습실을 나서니 하늘엔 선물 같은 구름이 떠 있었다.
Couldn’t be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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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와 시험에는 등수가 있고
연주회의 관객 중에도 누가 더 잘하나 보는 사람이 있고
나는 경쟁심이 강하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선 그런 게 중요해지지 않는다.
‘네가 제일 잘했어’라는 말이 흥미롭게 들리지 않던 날 알았다.
듣기가 좋네.
CD 틀어놓은 것 같았어.
피아니스트 같았어.
이런 보석이 어디 숨어 있었어.
지연 씨 연습하는 거 듣고 선생님인 줄 알았대요.
나를 기쁘게 했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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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도록 회사에 가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연습하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가까운 내 음악이지만 내가 손을 놓는 순간부터 멀어지겠지.
나만 놓으면 멀어질 사이
짝사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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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려다가도 틀린 데 한 번만 더 하자. 여기 소리가 좋으니까 한 번만 더 하자. 여기 칠 때 손가락이 아프니까 한 번만 더 하자. 더 하려는 핑계를 댔다. 내가 살면서 이래 본 적이 있던가.
해도 해도 아쉽고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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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회사에서 팀원들과 쉬다가 꽃다발 얘기가 나왔다.
돌이켜 보면 나는 엄마에게서 꽃다발을 가장 많이 받았다.
부족한 형편에도 특별한 날이면 꽃다발을 해오셨고 규모는 크지 않아도 언제나 주변의 꽃다발 중에 내 것이 가장 예뻤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새 감기로 고생인 엄마에게 꽃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퇴근 후 동네 꽃집이 문을 닫기 전에 서둘러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프리지아 꽃다발을 사서 연습실에 왔다.
보면대 옆에 올려 두니 연습을 쉴 때마다 프리지아 향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꽃 선물은 주인을 찾아가기 전까지는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선물인 것 같다.
이 기쁨을 얼른 전해주고 싶어 마음이 달뜬다.
오늘은 얼른 집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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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중에는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드물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면 그게 가능하다.
특히 수많은 연습 끝에 만든 소리를 주의 깊게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나와 음악만이 존재한다.
그 행복감은 눈물 나게 아름답다.
삶에서 기적을 경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의지를 갖고 노력해도 안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고
조금 더 가까운 방법은 고된 연습으로 만들어 낸 소리였다.
피아노는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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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가까이하는 것은
나만 볼 수 있지만 좋은 양말을 사 신고 자기 전 좋은 향수를 침구에 뿌리는 것처럼
누가 알든 모르든 좋은 가치로 나를 감싸는 즐거운 행위
천재들에 의해 극도로 아름답게 정제된 것과 나 사이의 공감대를 찾는 설렘
돈 없이도, 내 것이라는 증명 없이도 내 것일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내 안에 쌓아가는 기쁨
지고한 아름다움과 나를 동일시하며 고결해져가는 경험
내밀한 즐거움을 쌓는 아름다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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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타를 보낼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손을 놓는 순간부터 멀어질 걸 알기에 이미 슬프다.
애증의 시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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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임박했을 땐 휴일 내내 연습실에서 지내며 10시간 이상 연습했다.
결국 탈이 났고 병원에서는 하루 연습 최대 2시간을 넘기지 말라고 했다.
두렵고 속상했지만 감정에 빠져 있을 새가 없어
건반을 누르지 않고 공기 중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연습했다.
내가 피아노에 바치는 모든 것을 평생에 걸쳐 예술로 가는 과정이라 담담히 되뇌면서도
어느 날은 날아갈 듯 기쁘고 어느 날은 땅으로 꺼진 듯했다.
연애 초마냥 일희일비하던 시기를 지나자
연습이 잘 되는 날에는 어제 열심히 해 준 나에게 고맙고
안 되는 날에는 오늘 이렇게 했으니 내일은 잘 되겠지 여기게 됐다.
피아노가 나를 키웠다.
두고두고 큰 의미로 남을 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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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5일
토카타는 이제 더 나아지기 위해 들을 연주가 없다. 나는 나만의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투렉보다 톰시크보다 굴드보다 내 연주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