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도 남지 않은 여름

자작시

by 최은

백 번도 남지 않은,

여름이 왔다.


흙 속의 온기와

꽃내음 사이로

젖은 바람이 느리게 부는 날.


태평히 누운 고양이,

잔뜩 뻗은 초록이

영롱하게 빛나는

그 순간, 여름이 왔다.


물 뿌린 골목 사이로

산들바람이 스쳐가고,

귓가를 맴도는 작은 것들이

투명한 새의 노래가 되어 흩어지는 하루.


햇살 머금은 오후의 끝자락은

서늘하게 익어가는 청포도 같고,


유리창 너머 바스락이는 잎사귀는

말없이 간지러워하는 나무의 표정 같다.


푸르게 타올랐다가

말갛게 번지는 붉은 하늘,

그 안에 하얀 구름의 윤곽을 빌려

얼굴 하나 그려보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잡히지 않는 것들을

조심스레 끌어안아보는,

나의 여름.


풀잎 끝에 맺힌 물방울처럼,

아이스크림 쥔 아이들의 해맑음처럼,

춤추듯 신난 바람의 살랑임처럼,

달밤에 내려앉은 선선한 고요처럼,


느리게 반짝이다

금세 사라지고 마는,


영원할 것만 같은

그러나 백 번도 남지 않은


그런,

여름이었다.


아프도록 뜨겁지만, 그 안에 놓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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