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그날의 동호, 오늘의 너

by 최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라는 공간을 지나온 이들에게 끝없이 되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자는 호소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윤리적 호출이며, 공동체적 성찰을 요구하는 간절한 외침이다.


이 소설은 독자를 과거의 방관자가 아니라, 현재의 증언자로 세운다. 2인칭 ‘너’는 거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너는 이미 그 광주에 발을 디뎠고, 숨결을 들이마셨으며, 비명을 들었다. 피 냄새가 맴도는 거리, 태극기로 감싼 주검들. 익숙한 상징들이 낯설고 잔혹한 의미로 변한 공간. 한강은 이 모든 장면을 무심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으로 밀어 넣는다. 독자는 이 불편한 감각 속에서 자연스레 질문하게 된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자는 누구였는가. 오늘,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소년이 온다』는 광주를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광주를 살아있게 한다. 그것은 단순한 서사적 회상이 아니다. 동호의 짧은 생, 정대의 고통, 은숙의 부서진 삶, 선주의 조용한 저항은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이들은 단일한 서사로 환원되지 않고, 각자의 파편화된 목소리로 교차하며 집단적 외상의 다면성을 드러낸다. 그 외상은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균열과 공백, 말할 수 없음의 형태로 존재한다. 끝내 말해지지 못한 것, 견뎌지지 않은 것, 지워지지 않은 것이 문장 사이로 새어 나온다.


한강은 폭력의 순간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침묵과 흔들림, 사회적 망각 속에서 덧나는 고통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심한 언어들,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과 혐오. 살아남은 자들은 그렇게 또다시 죽어간다. 『소년이 온다』는 이 잔인한 연쇄를 독자에게 감각시킨다. 그들의 삶은 단순한 생존의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증언의 의무이자, 기억의 책임을 짊어진 존재다. 이 소설은 생존자들이 침묵 속에서 들려주는 무언의 이야기, 말해지지 않기에 더 절실한 외침을 귀 기울이게 만든다.


이 책을 다 읽기 전, 광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를 만났다. 내가 아직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말하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는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순간, 당황스러움보다 더 큰 침묵이 찾아왔다. 오래 알고 지낸 나에게조차, 그런 질문을 해야 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광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5·18을 왜곡하거나 지워버리려는 시선 속에서, 아무리 가까운 이에게도 끝내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 이 사람도…’라는 물음은 단지 의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몸에 밴 자기 검열의 감각이었다.


5·18을 말하려면, 그 말이 무사히 닿을 수 있는 세계, 말이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들리는 세계가 먼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자리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친구도 완전히 믿기 어려운 이 사회의 조건이, 광주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의 결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소년이 온다』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폭력은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생존자의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파문을 일으킨다. 생존자들은 폭력의 기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기억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며, 결코 온전히 전달될 수 없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전달 불가능성’과 끝까지 싸운다. 말해지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의 언어를 끝내 찾아내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갖는 문학적, 윤리적 깊이이다.


문학은 이 불가능한 기억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 중 하나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질문한다. 고통을 타인의 일로 남겨두는 사회는 어디로 향하는가. 망각 위에 세워진 공동체는 어떤 윤리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광주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외상과 이어진다. 전쟁, 학살, 붕괴, 침몰, 참사. 우리는 수없이 비극을 목격했고, 수없이 쉽게 잊었다. 아픔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분노했지만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윤리는 점점 얇아지고, 연대는 표피적인 감정에 그치기 일쑤였다.


『소년이 온다』는 이 반복에 맞서, 기억을 윤리의 문제로 호출한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곁에 선다는 것이며, 다시는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증언해야 하고, 듣는 자들은 상상해야 한다. 망각이 죽음을 반복시키지 않도록.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듣기 위해,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따라가기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억은 단지 지식으로서의 기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감각으로 수용하는 행위여야 한다.


이 소설은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우리 앞에 한 소년을 눕혀 놓는다.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문장의 울림 속에서 우리는 멈춰 선다. 그리고 그 멈춤에서, 비로소 연대가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방식이자,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방식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단순한 개인의 영예를 넘어선다. 그녀가 세계문학의 언어로 증언한 것은 광주의 고통이며, 그것을 들은 세계가 증인으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고통은 국경을 넘어 울림을 갖는다. 문학은 잊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침묵 속에서도 무언가를 듣는 법을, 파괴 속에서도 무엇을 지키는 법을. 『소년이 온다』는 그 가르침을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소년이 온다』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너는 이 기억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조용하지만 깊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다. 우리는 더 이상 ‘너’를 타자에 머물게 둘 수 없다. ‘너’는 곧 ‘나’이고, ‘우리’다. 기억하고, 고통을 껴안는 것만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호명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너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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