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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비디오

소설

by 피터팬신드롬

첫 번째 비디오테이프를 가방에서 빼서 바로 비디오플레이어 입구에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는 공 테이프. 흰 라벨에는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1987~1995, 라이브 공연 모음-1 ’


시중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귀한 영상일 거라고 했다.


‘그럼, 지금 1994년인데? 이상하네. 오타인가?’


이상하지만 일단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출처도 모르는 테이프의 라벨 글자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영상을 볼수 있다니 기대가 앞섰다.


보기 전에 혹시라도 레코드 버튼을 잘못 눌러 다 지워지지나 않을까 비디오테이프에 있는 오소거 방지용 탭을 잊지 않고 떼어냈다.


맥주캔을 따고는 발가락으로 플레이어 버튼을 눌렀다.


‘자, 이제 한번 감상을 해볼까나?’




‘1989 한영대학교 보컬 제왕 김현석 단독 리사이틀’이라는 조악한 그래픽 활자가 오버랩 된다.


노란색 롱핀조명이 어두컴컴한 무대에 황금색 방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둠이 쉬이 걷히지 않고 비장하다.


아마추어가 공연 실황을 녹화한 듯했다. 화면이 흔들리고, 줌이 들어왔다 나갔다, 흐렸다가 또렷해졌다 한다. 잠시 카메라가 자리를 잡지 못해 한동안 장면이 어지러웠다.


흔들리는 화면을 진정시킨 건 신디사이저의 String 음률. 튜닝하느라 조여지는 기타 음, 그리고 경쾌하게 들리는 드럼의 시운전 소리.


이윽고 예리한 핀 조명이 무대를 향한다.


‘김현석!’


그냥 말이 필요 없는 이 시대 최고의 가수 중 하나였다.

영혼을 담아낸 목소리를 가진 사랑의 가객.

백지수가 좋아했던 가수였다.


마치 김현석의 천재적인 음악성도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죽음 앞에서는 무색한 것이었다.


백지수가 기억하기로는 간경화로 세상을 등진 건 90년 11월, 그가 이 공연 후 1년 있다가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 하게 될 줄 팬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그가 점점 밝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가객의 숨소리. 들숨 날 숨 한 세트 한 세트가 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팬들의 마음을 긴장시켰다.


그의 고독감은 숨소리만으로도 온전히 무대공간을 가득 메운다. 이윽고 거친 그의 기침 소리.


잠시 관객석은 잡담마저 물을 끼얹은 듯 이내 고요해졌다.


김현석 공연의 마지막은 항상 하모니카가 장식을 해왔었다. 소문으로만 들었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 며칠동안 술에 절어, 만취 상태로 무대에 선다는 게


‘과연 사실일까?’


하모니카를 집어 들어 조명으로 반짝거리는 자기 입술에 포갠다.


소주에 절어있는 상태에서 하모니카가 제대로 소리를 낼 리는 없었다. 그가 하모니카의 비릿한 쇳물을 맛보다 침을 칵 칵 뱉어내고 가다듬는 사이….


공연이 현재 열리고 있는 한영대학교 대강당은 숙연하게 가객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편의 비극을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불완전하지만 몇 번 하모니카를 불더니 엇나가던 음정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무렵.


그가 발표한 유일한 하모니카 연주곡인 ‘한국 사람’이 쓸쓸하게 연주되기 시작했다.


흡사 힘들어하는 연인이 내 귓가에 자기의 이야기를 토로하듯이…. 관객들의 마음에 각기 다른 고민의 무게만큼 감동의 숨결이 되어 주는 듯했다.


“간경화는 술을 끊고 치료했다면 완치될 수 있는 병인데….”


백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아쉬움의 한숨을 맥주한 모금으로 달래고는 클라이맥스를 감상할 참이었다.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카메라 움직임은 김현석의 초인적인 무대 열정을 담아 놓으려 했는지 이미 부을 대로 부은 얼굴과 복수로 볼록해졌을 복부를 클로즈업했지만 울고 있었을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몸 상태에서 신체의 어떤 에너지가 저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걸까? 그가 손바닥으로 하모니카를 어루만질 때마다 나오는 소리는, 이미 술이라는 연료로 연소하는 마지막 기차의 기적소리 같았다.




치치직…


‘어? 이거 왜 이래?’


TV 화면 속 공연 실황은 일제히 사라지고, 노이즈가 한가득 화면을 하얗게 메우고 있었다.


‘절정이었는데!’


눈물을 훔친 손으로 애꿎은 TV 수상기를 붙잡아 손바닥으로 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스톱버튼과 함께 EJECT 버튼을 눌러 다시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었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TV가 흡사 메롱 거리며 약 올리는 것 같다.


‘아니 이게 갑자기 왜 이러지? ’


삐딱하게 88담배에 불붙여 꼬나물고 계속 TV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순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까만 비닐봉지 안에 또 다른 한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건?’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어보니 지금껏 보고 있던 비디오테이프와는 다른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있었다.


‘MAXELL VHS head Cleaner VP-100’


‘헤드 클리너?’


왠지 기억삭제 기계의 모델명 같은, ‘헤드 클리너’라는 제목의 공상과학 만화 영화 제목 같았다.


내가 나한테 썰렁한 농담을 건네고 있다니. 내가 바보도 아니고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비디오플레이어가 오래되면 '헤드'의 청소가 필요하단 소리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았다.


잘은 몰라도 영상과 사운드가 까만색 셀로판테이프에 수록이 되어있는데, 이걸 재생하는 맷돌같이 생긴 은색 헤드가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여 더러워진다고 말이다.


‘비디오 화면이 나오지 않을 때 쓰는 거였군.’


비디오테이프가 오염되어있을 것을 예상하고 헤드 클리너까지 챙겨준 ‘하제의누리’ 사장의 통찰력에 감탄할 즈음,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헤드 클리너 테이프를 무작정 TV겸용 비디오플레이어 입에 넣었다.


‘클라이맥스는 보게 해달라고! 애물단지 고물 같으니라고!’


불평이 무색하게 곧 화면이 나왔다. 아까 봤던 공연 실황 장면이었다. 다만 4배속? 8배속?


노이즈와 함께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성영화 시대, 찰리 채플린이 흑백영화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그 속도보다도 훨씬 빠르게,


‘헤드가 청소되고 있는 건가?’


목이 타서 마지막 맥주 한 캔을 마저 딴 후 단숨에 마셔버렸다.


화면은 노이즈와 함께 빨리 돌아가고 소리는 앵앵거렸다. 그의 소리가 굉장히 거슬려 강제적으로 기억에 깊이 새겨지는 느낌이었지만 청소가 끝나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맥주를 급하게 마셨는지, 오늘 하루 힘들었는지, 갑자기 말도 못 하게 졸음이 밀려왔다.




‘어? 여기는?’


그 영상 속 공연장이다.

하지만 영상 속에 크게 울리던 음악 소리는 없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러고 보니 관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


음악이 없는 무대는 더 처연했다.


‘김현석?’


내 앞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친 체 서 있었다.

그는 영상 속 그 모습 그대로 지쳐 보였다.

침울했지만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 너는 너대로 살면 돼, 노력하면서. ”

“ 네? ”

“ 너의 노력이 보이는 순간, 너의 세상에서 우린 음악으로 하나다.”

“ 뭐라고요? ”

“ 잊지마, 너는 너대로 노력해야만 한다는 걸.”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왜인지 점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계속 귀에 똑같은 말을 속삭였다.

그 목소리도 가라앉듯 크게 울린다.




희미하게 성당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점점 크게 들린다. 이윽고 어쿠스틱 기타의 커팅 기법이 돋보이는 조지마이콜의 “Faith”의 인트로를 시작으로, 7시 30분임을 알리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똑같은 알람이지만 뭔가 다른 느낌. 일단 머리 모공 사이 사이가 시원한 느낌.


남이 말해주지 않으면 무슨 악기가 반주로 쓰이고 있는지 몰랐는데, 왠지 오늘은 악기 소리가 모조리 구분되어서 들렸다.


‘탬버린과 쌩 스네어에 전자 드럼까지, 이렇게 복잡한 노래였었나?’


그렇게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다가 생각이 났다.


“ 아! 꿈! ”


꿈에서 분명히 김현석과 긴 시간을 대화한 듯했지만, 기억이 나는 장면은 몇 가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분위기, 무대에 마주 보고 서있었던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너의 노력이 보이는 순간, 그리고 뭐라고 했더라…? ”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을 방바닥으로 내리는 순간, 맥주캔이 찌그러진다.


“술을 간밤에 많이 마셨네…. 맞다! 이 고물 TV!”

뒤늦게 비명을 나직이 지르고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물 TV는 헤드 클리너 테이프를 혀처럼 또 내밀고 있었다.




아침 수업을 모두 째고, 오늘도 판자촌처럼 허름하지만, 동방으로 직행했다. “메아리”란 이름이 하드보드지에 아크릴 지로 새겨져 있는 동아리방 문 앞에 섰다.


자물쇠 걸쇠가 달린 조잡한 널빤지 문 너머로 묵직한 일렉기타 소리가 들린다. 풍이가 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독고풍 선배, 일찍 왔네?”

“어…"

“지금 치는 거 ‘ Just the two of us ’ 아니야?”

“어, 제법인데? 이 노래를 알다니. 근데 이젠 아예 반말이냐?”

“..요”


독고풍은 베이시스트여서 그런 건가, 베이스 현으로 메인 리프만 치고 있었다.


“독.고.풍. 선배님, 비디오 플레이어에 대해서 좀 알아요?”

“응? 웬 갑자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실까…?”


‘빠득’


아무리 친구라도 기수가 깡패인 대학교 동아리 안에서는 옛날처럼 톰과 제리처럼 싸울 순 없었다.


어금니를 물고 다시 한번 깍듯이 선배 호칭을 부르며 예를 갖춰 다시 한번 물었다.


“선배님~ 어제 우연찮게 누군가가 녹화한 비디오가 생겨서 봤거든? 근데….”


어제 비디오를 한참 보다가 문제가 생겨 헤드 클리너를 사용하게 된 모든 얘기를 해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독고풍이 한심하다는 듯이 핀잔을 줬다.


“백지수. 얘가 어디서 뻥을 치냐..”


“무슨 뻥? ”


귀신에 홀린 듯 망연자실하게 만든 그의 말은….


“헤드 클리너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는 비디오가 재생될 리가 없지. 청소 중이라는 카운트 다운 숫자만 보일 텐데? ”


“으응?!?!”


오전 내내 유난히 묘하게 기분이 좋았었는데, 순간 기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싶었다.


‘아! 헤드 클리너는 영상 재생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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