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올해로 IT 영업직에 종사한지 23년.
대리 나부랭이 시절, 2002년 회사 직원들과 호프집에서 족발 뜯으며 월드컵 4강 성공 신화를 목놓아 응원하던 때로부터 어언 23년이 지났다.
시대의 아이코닉이었던 붉은 악마의 연대감이 충만했던 그해는 사실 만족스럽지 못한 직장생활,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내게는 행복하지만은 않은 시기였다.
두산타워를 기점으로 뱅뱅사거리를 관통하는 강남의 거리에 위치한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신입사원으로 시작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쯤의 나는, 무엇이든지 배워야 하는 입장임에도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이 사는 어리바리 영업사원이었다. 2:8 비율로 공부와 놀기 비중을 뒀던 대학 시절을 ‘한여름 밤의 꿈’ 정도로 살아온 형편없는 취준생이 감히 “IT 직종”을 선택한 이유는? 제 버릇 남 주지 못하고 학력고사 시절, 필수 소양이었던 ‘눈치작전’ 습관이 몸에 밴 결과였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도 그 이유는 씁쓸하다.
그렇다.
의욕이 없었다.
제2의 IMF를 지나, 불황을 겪고 있었던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직종의 사회초년생이 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청년 실업의 초조함과 아버지의 말 없는 한숨을 피해, 등 떠밀려 선택하게 된 '영업'이란 직종은 회사의 꽃이라고는 들어 본 것 같지만, 설마 내가 하리라고는 감히 상상해 해본 적도 없는 ‘관심 없음’ 직종이었다.
그때의 내 시각으로 본 ‘영업사원’을 간단하게(?) 서술하자면 이렇다.
항상 돈이 고픈 사람이며, 고고하게 고(高)자세를 고수하는 고객의 고귀한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회사의 넉넉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비위를 맞추고 자신이 비루해지고, 방법이 비정상적이더라도 반드시 제품을 팔아 이득을 남겨야 하는 비즈니스의 중심에 선 비극적 운명에 맞선 사람으로, 항시 판매 실적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회사원.
그렇게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세일즈 상식도, 매너도 있을 리 만무했고, 오직 아는 전략이라고는 대학 내내 배웠던 마케팅 믹스, ‘4P’ 정도?
무엇보다도 문제는 내가 그런 직종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긍지도, 감흥도, 흥미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한 최종 면접 때는 제법 청산유수였다.
“대기업을 갈 수 있는 인재(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으레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인 것 같은데 왜 이 중소기업에 들어오려고 하나?”
역시 대빵이다. 유난히 머리가 크고 짙은 눈썹에 한 가닥 더듬이가 있던 관록 있어 뵈는 사장님이 담배를 입에 물고는 반말로 질문을 던졌다.
“저는 회사가 빵집이라면 “오븐”이라는 한 가지 역할 보다는 “제빵사”가 되어 전 과정을 다 볼 수 있는 중소기업에 가고 싶었습니다.”
이 기막힌 비유의 대사는 막연하지만 “영업” 이라는 직종을 대하는 내 나름의 타협이자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고, 잠시지만 내가 꿈꿨던 미래에 대한 스토리였다.
“다음 주부터 출근시켜!”
불행히도 난 합격을 하고서도 1년을 넘게 방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가자마자 조그마한 중소기업에는 오리엔테이션은 없었고 빵(?)을 만드는 공정은 아무도 가르쳐주진 않았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 어린 사수 ( 여성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사회 진출이 남자보다는 빨랐기에 나이가 비교적 어린 경우가 많았다. ) 에게 나의 업무처리의 미숙함과 잦은 실수로 악마 같은 갈굼을 당했다. 흡사 '취권'을 배우기 위해서는 물부터 길어야 했던 걸까? 한동안 내 일과의 대부분은 고객에게 제공할 CD* 2,000장을 컴퓨터 CD롬 앞에 앉아 굽는다거나, 법적으로 3년간 보관해야 할 고객 납품 영수증을 그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서류철에 서류를 천공하여 철하는 것은 대체 왜 내가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맨날 술이었다. 술값으로 월급을 다 쓰는 것 같았다. 소중한 신용을 이용해 술을 마셨다. 1차 술안주는 같이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졌지만, 기분에 따라, 나를 괴롭히는 사안에 따라서도 전 세계(?)를 오가며 한식 중식 양식을 섭렵하고 주종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2차는 항상 노가리에 맥주 한잔.
그야말로 노가리*를 까먹으며 노가리*를 깠다.
그렇게 나의 목적 있는 노가리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꿈꾸던 미래에 대한 스토리.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000년대 초반, 돈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라이선스 정책에 의해 종이 쪼가리에 사용 권한을 적어 고객에게 전달하였으나, 무형 자산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은 현물로 "프로그램"을 납품받기를 원했었다. 이에 CD를 구워서 납품하는 경우가 많았다. 2025년 요즈음은 대개 별도 안내받아 웹 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아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노가리 1. :(명태 새끼) little[young] (walleye) pollack
*노가리 2. : 거짓말, 잡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