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우산 Sep 04. 2015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최근 강신주에 푹 빠져있다. 서양철학과 불교, 노자를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력에 감탄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는, 뒤통수가  뻐근해지는 한 마다 한 마디에 또 감탄한다. 특히, 이 책은 제목부터가 그렇다.


뭔가 무시무시하면서도 왠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 말을 처음에는 단지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도의 교훈적인  말로 이해했었다. 정말로 나는 그 정도로 용기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또 이런 게 용기 일까도 싶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면 죽기 밖에 더 하겠는가? 죽으려고 용기를 내는 게 필요한 일인가? 싶은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해 봤다.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더욱 소중해지고 산다는 자체가 의미 있어진다는 그런 생각? 딱히 자식을 낳아 키울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 죽는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그렇다.(그런 의미에서 자식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 또는 흔적이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든 나는 죽는다. 그건 사실이다. 다만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그 시기 또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고. 그래서 난 평소에도 가끔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떠올리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기도 하고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너무 아깝기도 하고, 뭔가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걸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에너지가 솟곤 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책 제목은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던진 옛 고승들의 48가지 질문 - 화두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는 "서쪽에서 온 달마는 무슨 이유로 수염이 없는가?"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질문도 있고, "어느 것이 부처입니까? 마른 똥 막대기" 같은 더  어처구니없는 질문과 대답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질문이 초등학교 애들 농담 수준만도 못하다.


서쪽에서 온 달마는 무슨 이유로 수염이 없는가?
어느 것이 부처입니까?


강신주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 왜 한 사람의 인생을 깨우침으로 이끄는 화두가 되는지를 아주 친절히,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풀어준다. 정말로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쓸 수 없는 글이며, 모든 말이 자신의 언어로 씌여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아주 쉽다.


다시 책 제목의 화두로 돌아와 보자.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된 원문은 이렇다.


계단이나 사다리를 밟지 않아야 하고, 매달려 있는 절벽에서 손을  떼야한다.


뭔 말인가. 더 어렵다. 강신주의 친절한 설명으로 한올 한올 그 의미를 풀어보자.


계단이나 사다리에 의존해 절벽에 매달려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설 수가 없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단이나 사다리가 우리의 당당한 삶을 막고 있었던 셈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그것에 좌지우지된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도움이 되어도 그것이 외적인 것이라면, 어느 순간 반드시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 p.382


결국, 이 화두 또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스스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질문인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나의 목숨을 지탱해주고 있는 절벽의 풀 한 포기라 할 지라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는 호통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 인생에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나 자신 이외의 외적인 무엇에 대한 의존 때문이고, 나를 지탱해 주는 의존이기 때문에 의존의 강도 또한 집요하고 깊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그런 의존을 '집착'이라 부른다. 결국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이란 나 이외의 무엇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기 위해 떠나는 머나먼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 집착은 때론 돈이고, 때론 명예고, 때론 사랑이고, 때론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나인채로 사는 것과 나에게 집착하는 삶이란 비슷한 말 같지만 하늘과 땅 차이의 다른 인생이다. 모든 집착은 나를 나 답게 만드는 걸 방해한다. 심지어 스스로 어떻게 되고 싶다는 집착마저도.


책을 몰입해서 읽고 났더니 나 또한 무슨 도인이라도 된 냥 떠들어대는 우쭐한 꼴이 우습다.  카프카가 그랬던가.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그런 도끼 같은 책이 있다면 아마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아주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도끼.


우리는 언제까지 방황해야 할까


누구든 인생에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인생은 항상 방황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것을 쫓아, 또는 저것을 쫓아 가봐도 결국 방황하고 떠돌게 되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독해 보길 강력히 권해본다. 강신주가 옛날 옛 어마어마한 내공의 고승들을 한꺼번에 소환해 당신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쳐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드려 맞다 보면 멍하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뭔가 인생의 속내 같은 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 이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는 연습을 해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신화를 벗은 음악의 맨 얼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