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8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어떤 내가 되어가고 있는가?
삶에서 질문이란 중요하다. 어쩌면 답보다 중요한 것이 질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질문은 보다 근본적일수록, 보다 어려울수록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다. 답을 얻지 못한다 해도 질문만으로도 의미 있는 그런 질문들. 사실 그 모든 학문들의 출발점은 그런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부담스럽고도 어려운 이 질문은 뜬금없고 모호해서 철학자나 예술가가 할 법하지만 사실 이 질문은 삶을 의미 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장 필요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삶이란 그런 어렵지만 해야 하는 질문에 대답해 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이 결여될 때 삶은 그 중심과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참을 표류하다가는 어느 순간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결국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미리 질문하고 고민하고 대답해 보려는 노력이 삶에는 꼭 필요하다.
자, 질문의 중요성이야 충분히 알았다. 하기야 요즘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강조하는 콘텐츠와 짤을 어디서도 많이 볼 수 있으니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질문을 자문해 보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해보아도 역시나 답은 즉각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런 질문들의 함정이다. 게다가 답은 어디에도 없다고 하니,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하니, 더더욱 답답하고 무력한 기분이 든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놓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자세라고도 하지만 도대체 답이 없고 막막한 그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는 일은 역시나 막연하고도 답답하다. 때론 질문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마음속으로 숨어보기도 하지만 역시 그건 아니다. 어쨌든 질문이 던져졌으니 답은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없고 찾아야 한다는 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의외로 답을 찾는 방법의 답은 간단하다. 그저 해보는 것. 더 중요한 건, 반복해서 해보는 것이다. 사실 해 보는 것까지도 쉽지는 않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선뜻 나서서 해본다는 건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손에도 익지 않고 마음에도 낯선 그 일들을 반복해서 한다는 건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인내하라'라는 훈계조의 말만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행여 그것을 계속해본다 한 들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차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그럴 때마다 어떤 대답을 스스로에게 내놓아야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겠는 것이다. 그리고는 회의가 든다. 언제까지 계속 이 걸 하고 있어야 하나.
여기서 세상이 흔히 하는 조언들이 있다.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렇다. 그런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피아노 치는 일이 재미있나요?' 세계적인 축구 선수에게도 질문해 보자. '축구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요?' 철학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철학이 즐거운가요?' 아마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딱히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피아노(축구, 철학) 연습이 혹은 공부가 하고 싶고 재미있고 즐거운가요?' 아마 대부분, 특히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가라면 반드시 '결코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간단하지만 복잡한 이 진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진실은 본래 복잡하고 오묘한 것이다. 단순한 것은 완전한 진실일 수 없다) 그러니까 피아노와 축구와 철학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반복적인 그 일, 그러니까 연습과 공부는 그들에게도 지긋지긋한 것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아직은 내가 그런 사람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다면 그 과정이란 아직 내게 익숙지 않은 영역을 개척하는 일일테고 그럼 당연히 그 익숙지 않음을 익숙하게 단련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그리고 그 수준과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축구 선수, 철학자의 연습과 공부는 어찌 보면 초보자나 아마추어에 비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냥 어려운 수준이 아닌 세계적인 수준의 어려움, 누구도 개척하지 못했던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숙련되게 만드는 그 일, 그 지겹고도 반복적이고 고된 그 일을 우리는 '연습' 또는 '공부'('공부(工扶)의 의미가 원래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연마하다는 뜻을 가진다)라고 부르며, 그런 연습과 공부의 본질은 '습관'을 익히는 일에 다름 아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어떤 습관을 나에게 익숙하게 하는 일.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보면 단순한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내가 되어가는 일은 그저 습관을 만드는 일임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내게 습득되게 하는 것임을.
바로 여기에, 무엇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그래서 언제까지 그 지겨운 연습과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그것을 붙들고 있는가 아닌가를 관찰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그것을 좋아한다면 그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붙들고 있게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계속 붙들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번뜩이며 '재미'와 '즐거움'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단지 재미와 즐거움이 아닌 어느 '순간'에 있다. 그런 재미와 즐거움은 어느 순간 번개처럼 찾아와 나를 휘감다가 이내 사라지지 계속 유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 찾아오는 재미와 즐거움은 단지 그런 단어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고차원적인 체험이다. 나는 그런 순간을 주로 '희열' 또는 '도취'라는 단어로 설명하고는 한다. 어떤가, 그런 순간을 맞아본 적이 누구나 있지 않은가. 그때 그 순간의 체험을 재미와 즐거움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재미나 즐거움, 좋음이나 행복과 같은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은 대개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축구 선수, 철학자에게 피아노와 축구와 철학은 '평균적으로'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 즐거운 상황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한가,라고 본다면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들에겐 수많은 시간의 고통과 좌절을 동반한 연습과 공부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계속해 왔던 습관의 힘으로 버텨왔을 것이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아마도 요즘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말, "노력이 곧 재능"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일컬어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도록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하고 싶음'에서 비롯되는 '포기하지 않는 힘'일 것이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도록 그 사람을 지탱시키는 힘,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반복하고 인내하며 그것을 하게 하는 힘, 간절하게 원하는 그 힘. 그 간절함의 힘을 그(녀)는 재능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우리가 어떤 무언가를 습득하고자 연습과 공부라는 습관을 반복할 때, 그것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 단지 '연습' 또는 '공부'이기 때문인지 혹은 '그것'이 나를 더 이상 끌어당기지 않아서 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둘은 겉으로는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결정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단순한 '게으름'이지만 후자야말로 '적성과 재능'의 문제일 수 있다. 연습과 공부란 것은 그 대상과 영역, 방법과 도구에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지겹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지겨움과 힘겨움을 이겨내고 계속해보았을 때 어느 순간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 길인지, 아닌지. 그러니 역시 결론은 세상 모두가 하는 바로 그 단순한 말이다.
그저 해보고 반복하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아주 어렵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것을 찾아나가는 방법은 이렇게도 단순하다. 삶의 진실이란 이렇게 복잡하고도 단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