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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Mar 23. 2016

봄을 사랑하듯, 운명을 사랑하라.

자연과 인생에 대한 짧은 에세이

드디어 봄이다.


봄을 주제로 한 글을 써야 하는데 좀처럼 자판에 손이 가지 않은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차에, 이유란 아주 간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추웠다. 난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가을이 조금만 쌀쌀해져도 목도리를 챙겨 들곤 하는데, 올해는 그 회색 목도리를 3월 중순이 넘도록 하고 다녔다. 이젠 정말 봄이라고 할 때가 아닌가 싶어 두고 나온 날에는 생소하고 차가운 바람이 목 주위를 쓸고 지나다니는 황량한 느낌 탓에 내내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도리 안 쪽으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느낌이 올라오고 왠지 모를 답답함과 거북함에 몇 달을 함께 해온 그 친구를 매몰차게 벗어던지는 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몸은 솔직하고 솔직한 몸만큼이나 몸이 빚어내는 감정도 속일 수 없이 솔직하게 인간을 내몬다. 변화는 그렇게 떠밀리듯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떠밀려 오는 변화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좋다. 게다가 달겨드는 변화란 놈이 봄이란 데서야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따뜻하고 눈부신 햇볕, 생기 넘치는 사람들의 몸짓과 웃음,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꽃망울들. 그 꽃망울들 중에 가장 먼저 만개의 환희를 보여준 꽃은 매화다. 오랜 인내의 시절을 추억으로 성급히 돌려버린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기에는 적격일 만큼 화려하고 풍성하다. 조금 더 있으면,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려는 듯 목련이 고귀한 자태로 우아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서서히 알려내겠지.



자연의 변화란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받아들이는 빛 에너지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주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우리는 그 순환의 일부를 매일매일 경험할 뿐이다. '나'라는 동물 또한 그 순환의 조각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렇게 보면 매일매일 겪는 내 삶의 변화무쌍한 경험들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그저 매년 이맘때쯤 있을 법한 일을 작년과 비슷하게, 또 내년에도 해야 할 일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서글프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고 그 조각으로서 내가 처한 운명이라면 묵묵히 받아들이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아니 그저 걸어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걸어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죽음, 그러니까 '나'의 완전한 소멸이다.



Amor Fati (아모르 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


철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전혀 다른 본질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니체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모두가 존재와 진리에 목을 매달 때 그는 신(神), 그러니까 존재와 진리에 죽음을 선포하고 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외친다. 일면 비겁하고 허무한 듯 하지만, 종교와 이성이 기싸움을 하던 그 시절에 이런 명제를 들고 나타났다는 건 대단한 통찰이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너희들이 그렇게 머리를 싸매가며 몰두한 문제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은, 인간은 그저 의미 없이 살다가 먼지로 돌아갈 뿐이라는 건조한 발견은, 너무나도 허무하기에 그 허망함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만이 오히려 허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역설을 말해준다. 그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의 정신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 Nietzsche 1844~1900)


코엔 형제의 영화 중에 [A Serious Man]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어떤 줄거리의 영화인가를 설명하기 민망할 정도로 줄거리 따윈 없고, 그저 계속되는 일상으로만 가득 찬 영화다.(그래서 지독하게도 지루한 영화다.) 그 일상 속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지만 그 사건들 간에는 어떤 연속성도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주인공 래리는 '왜 내 인생은 이 따위인가'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모든 사건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골몰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아니 모든 갈등은 해결되지만 그것은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시간은 흘러갈 뿐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영화 [A Serious Man]의 포스터


허탈한 이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봐야 할지, 부조리한 이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코엔 형제는 영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힌트를 준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라.
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어쩌면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겪는 사건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외부의 사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신선놀음 같은, 득도한 스님들이나 할 법한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왠지 그런 것도 같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겪어나가다 보면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성장할 것이다. 


자연의 변화는 단순하다. 자연이 변화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꽃은 피어난다. 우린 그걸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봄이 좋다고 해서 그 걸음을 앞당길 수 없으며 겨울이 싫다 해서 거부할 수도 없다. 조급해하면 불안하고, 거부하면 불행하다.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그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까. 그렇듯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인생의 변화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최대한 즐기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변화에 몸을 던지는 마음가짐.


Amor Fati (아모르 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


니체의 선구자적 통찰력을, 이 봄에 활짝 피어난 매화를 보며 곱씹어 본다.




하나 더, 따뜻한 봄에 어울릴 만한 감미로운 노래 한 곡을 추천해 본다. 감미롭다는 말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음색을 가진 보컬리스트 김이지와 싱어송라이터 거정이 함께한 '꽃잠 프로젝트'라는 밴드다. 그들의 데뷔 앨범 [Look Inside] 중, 'Home'를 추천한다. 이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걸어본다면 봄이 조금 더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꽃잠 프로젝트 1집 [Look Inside] 중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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