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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드라마를 연주하는 피아노

쇼팽의 발라드

by 빨간우산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엔, 통통 튀는 재즈가 어울린다. 끈적한 블루스도, 담백한 포크도, 소나기 같은 로큰롤도 어울린다. 사실, 비오는 날엔 어떤 음악이든 음악이라면 다 어울리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비 또한 음악 중 하나여서 그렇지 않을까. 아무런 음악도, 음성도 없이 빗소리만 듣고 있으면 그 자체로 음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름 멜로디도 리듬도 있는.


그런 빗소리에 음악이 흐르면 음악은 빗소리를, 빗소리는 음악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비오는 날 음악을 들으면, 특히 감상에 젖게 된다. 우울한 건 더 우울하게, 기쁜 건 더 기쁘게, 평화로운 건 더 평화롭게. 서로의 감성 부스터가 되어준다. 비와 음악은.


태풍이 또 온다고 한다. 강풍과 함께 오는 비는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쓸쓸하거나 우울하거나, 혹은 아프고 무서운 느낌을 자극한다. 지금 창 밖의 날씨가 그러한데, 구름이 햇빛을 가려 어둑어둑한 풍경이라 더더욱 그렇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날엔 왠지 쇼팽 생각이 난다. 특히 그의 발라드 넘버들. 클래식 음악은 기승전결과 같은 드라마가 있다.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면, 누구의 곡이든 그런 드라마를 품고 있다. 화려한 날 뒤에 오는 쓸쓸함, 고난을 넘는숭고함 또는 굴복하고 쓰러지는 패배감도 있다. 화려한 상승이 있는가 하면 고요한 머무름도 있고, 곤두박질치는 하강도 있다. 삶은 흔히 희노애락의 연속이라고들 하는데, 클래식 음악은 그런 삶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건 작곡자의, 또는 연주자의 희노애락에 같이 빠져들고, 그의 삶의 드라마에 동승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의 드라마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수다를 떠는 건, 역시 쇼팽을 말하기 위함이다. 누구의 어떤 음악이든 그런 드라마가 있지만, 쇼팽의 피아노는 그런 삶의 드라마틱한 변화와 오르내림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나에겐 그렇게 다가온다. 들릴 듯 말듯한 고요한 선율과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난타가 공존한다. 환희의 장조와 고통의 단조가 끊임없이 전조하며 삶이라는 롤러코스터를 연주한다.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 특히 발라드 넘버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의 변화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 자체를 토해낸 듯한 음악.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며 거칠게 스케치한 듯한 그림.


그런데 신기한 일은, 쇼팽의 그런 굽이치는 발라드를 듣고 있으면, 정작 듣는 이의 마음은 가만히 가라앉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슬픈 비극을 보고 나면 감정의 정화가 찾아오듯이, 우울할 땐 우울한 노래가, 오히려 우울의 치료제가 되어 듣는 이를 위로하듯이, 쇼팽의 드라마틱한 피아노도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드라마를 가만히 관조하게 하고 지켜보게 함으로써 감정의 동요로부터 구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창 밖에 태풍이 불어 나무가 흔들거리고 전신주가 쓰려저도 창 안에 있는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평화를 자각할 수 있는 것처럼.


쇼팽의 발라드를 듣는 중에 가장 좋을 때는, 그런 화려한 감정의 변주가 몰아치다가 크라이막스에 이르러 벅차오르는 환희의 순간으로 수렴될 때다.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는,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듣는 사람도 그러한데, 직접 연주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너무도 궁금하지만 경험해 볼 길이 없으니, 그저 부러워할 밖에. 예전에 어느 신문기사에서 쇼팽의 발라드 3번을 완주하기 위해 몇달간 연습을 하는 회사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쇼팽이라면 피아노 연주곡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곡인데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가, 음악인도 아닌 회사원이 왜 굳이 그런 수고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쇼팽의 발라드를 반복해서 듣고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런 곡을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완전하게 연주해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그 인생의 높이는 어떤 시야가 될까. 그 연주의 순간에 그가 맞닦드리는 환희의 경험은 또 얼마나 굉장할까.


하지만 우리는 굳이 그런 수고와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서라도, 간접적으로 예술의 환희를 경험할 수 있다. 바로, 쇼팽의 이런 역작을 비오는 날 듣고 있자면 그런 순간순간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순간을 말이다.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쇼팽 발라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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