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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9 사라진 식민지, 그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노스캐롤라이나 로아노크 식민지

by Jaeho Lee

노스캐롤라이나주 동쪽 해안에 있는 로아노크섬(Roanoke Island)으로 향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영국 최초의 식민지가 건설되었던 곳으로, 이 섬에는 Manteo와 Wanchese라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Manteo 시내로 들어서니 거리 이름들이 독특하다. Sir Walter Raleigh Street, Queen Elizabeth Avenue, Virginia Dare Avenue, Ananias Dare Street, Wingina Street 등 사람 이름들이 많은데, 로아노크의 사라진 식민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먼저 Roanoke Island Festival Park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곳은 로아노크 식민지를 재현한 민속촌 같은 곳이었다. 직원에게 원래 식민지가 있던 장소를 물으니 북쪽으로 4마일 정도 더 가면 있단다. Manteo 시내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북쪽으로 향했다.


초기 정착민들의 유물과 요새터가 발굴된 이곳은, Fort Raleigh 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되어 국립공원서비스(NPS)에서 관리를 맡고 있었다. Visitor Center에는 이곳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물과 영화 상영이 있다. 그럼 이제 로아노크섬의 사라진 식민지(lost colony)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다.

스페인과 프랑스보다 신대륙 진출에서 뒤쳐져 있던 영국에서도 신대륙 식민지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승인으로 Walter Raleigh 경에 의해 실행에 옮겨진다. 그리고 이곳 로아노크섬으로 3차례의 항해가 이루어진다.

-1차 항해
1584년 신대륙 탐사대가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에 도착하고 원주민들의 성대한 환영을 받는다. 원주민들은 그곳을 로아노크라고 불렀다. 이 탐사대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해당 지역이 식민지 건설에 적합한 곳이라고 보고한다. Raleigh경은 처녀의 몸으로 여왕직을 수행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려 그 지역을 버지니아(Virginia – 처녀의 땅)라고 명명한다. 탐사대는 영국으로 돌아올 때 원주민 청년 2명을 함께 데리고 왔는데, 그들의 이름이 바로 Manteo와 Wanchese이다.

-2차 항해
적합한 식민지 입지를 확인한 Raleigh경은 1585년에 식민지 건설 원정대를 파견한다. 이들의 원정목적은 식민지 건설을 통해 해당 지역에서 확보 가능한 자원(예를 들면, 금)을 확인하고, 스페인 함선을 공격(노략)할 배후기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108명의 군인과 기술자들이 로아노크섬에 도착해 식민지 건설에 들어간다. 하지만, 앞서 캐롤린 요새의 프랑스인들과 마찬가지로(day 18 참조), 이들 역시 자급자족할 역량이 확보되어 있지 않았기에 곧 보급품이 바닥나고 만다. 결국 인근 원주민들과 갈등을 빚게 되고, 공격받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원주민들을 선제 공격하여 추장인 Wingina를 살해한다.

원주민들과의 관계 악화로 식량사정이 더 궁핍해진 이들은 마침 이곳을 방문한 드레이크 해적선 선장의 배를 얻어 타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참고로, 드레이크 선장은 영국여왕의 승인과 지원 하에 서인도제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스페인 화물선들을 노략질하던 인물이다. 뒤이어 영국에서 식민지 지원을 위한 선단이 도착했는데, 식민지가 버려진 것을 확인한 뒤, 15명을 남겨두고 다시 영국으로 떠난다.

-3차 항해
1차 식민지 건설 실패 이후, Raleigh경은 식민지가 지속 가능하려면 정착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주정착민을 모집한다. 신대륙에 가면 무상으로 토지를 지급해 주겠다는 약속을 통해 17명의 여자와 9명의 아이를 포함한 117명의 식민지 정착대가 꾸려졌고, 리더로는 2차 항해에 참가하여 해당 지역에 익숙한 존 화이트(John White)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1차 식민지가 건설되었던 로아노크섬 지역은 수심이 낮고 위험한 것으로 판명되어, 새로운 식민지는 이보다 80마일 북쪽의 체스피안 부족 주거지 인근의 만으로 결정되었다(지금의 체사피크 베이(Chesapeake Bay)로 후에 제임스타운 식민지가 이 곳에 건설됨).

식민지 건설단을 태운 배는 해적선 함대의 일부였는데, 이들은 주 사업인 해적질을 할 시간을 벌기 위해 원래 약속했던 체사피크 베이까지 가지 않고 이전의 식민지가 있던 로아노크 섬에 이주민들을 내려줘 버린다. 이주민들은 2년전에 남겨져 있던 15명의 행방을 찾았으나 유골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버려져 있던 기존 건물들을 수리하고 신축하여 주거지를 건설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리더인 존 화이트의 딸(존 화이트의 부하와 결혼함)이 아이를 낳게 되는데, 미대륙에서 최초로 유럽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된다. 이 여자아이는 버지니아에서 태어났기에 버지니아 데어(Virginia Dare)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정착한지 얼마 후, 이주민 중 한 명이 홀로 낚시를 나갔다가 무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데, 2년전 추장이 살해 당했던 것에 대한 원주민들의 보복으로 여겨지고, 이에 이주민들은 인근 원주민들을 공격하고 마을을 불태운다. 긴장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보급품이 떨어져가자 존 화이트는 추가 지원을 받아오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임박한 스페인 함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선박을 군용으로 징집하였기에 존 화이트는 식민지로 돌아올 수단을 구할 수 없었고, 2년이 지난 후에야 또 다른 해적선박을 얻어 타고 로아노크로 오게 된다.

그가 돌아왔을 때, 마을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집들은 관리가 되지 않은 채로 허물어져 있었다. 울타리 말뚝과 나무 기둥에는 ‘‘CRO’, ‘CROATOAN’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크로아토안(croatoan)은 로아노크섬 동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영국을 다녀온 적이 있는 원주민 Manteo의 부족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존 화이트는 크로아토안 섬으로 가서 이들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기상 여건이 여의치 않자 해적선장은 배를 영국으로 돌려버린다. 그 이후, 사라진 이들의 행방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1127232009_0_crop.jpeg 로아노크섬 인근 지도

이상이 로아노크 식민지에 대한 간략한 역사이다. 감쪽같이 사라진 100여명의 식민지 정착민들이라는 주제는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에 관한 많은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이 만들어졌다. 이곳 바닷가 야외극장에서는 사라진 식민지인들에 대한 주제로 ‘The Lost Colony’라는 연극을 여름시즌에 올리고 있다. 1930년대부터 시작하였기에, 미국에서 가장 장기간 공연 중인 연극이라고 한다. 저녁에 공연이 있다는데, 낮에 객석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무대가 충분히 멋지다.

Visitor Center의 전시물도 그 마지막 섹션은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 대한 것이다. 만약 공격을 받아 살해되었거나 끌려갔다면, 그 공격자는 스페인인가? 원주민인가? 만약에 이들이 스스로 다른 곳을 찾아갔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아니면 허리케인이나 질병 혹은 굶주림으로 죽게 된 것일까? 이 모든 가설은 나름의 근거도 있지만,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비지터센터에 소개된 사라진 식민지에 대한 가설들

Lost Colony를 주제로 공원 가이드(park ranger)와 대화시간이 있는데, 여기서도 핵심은 이 주제이다. 스페인인들이 공격했다면, 이런 내용이 스페인측의 기록에 나와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 원주민이 공격했다면, 주거지가 파괴되고 시체가 버려져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없다.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연재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발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했다는 가설이 유력해지는데......


여기서 가이드는 세가지 가설을 제기한다. 1. 북쪽으로 이동. 원래 이들은 로아노크섬이 아니라 80마일 북쪽의 체사피크 베이에 식민지를 건설하려 했으니 그리로 이동했을 것이다. 2. 서쪽으로 이동. 존 화이트가 영국으로 지원을 받으러 떠나기 전에 이들은 정착지를 서쪽 내륙으로 50마일 정도 이동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 3. 남쪽으로 이동. 이곳은 정착민에게 우호적이었던 Manteo의 부족민이 살고 있던 크로아토안 섬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남쪽에서 올 영국함대를 목격하기에도 가장 좋은 위치이며 버려진 마을 울타리에도 CROATOAN이라고 적혀 있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1127232449_1_crop.jpeg 화가이기도 했던 존 화이트가 그린 인근 원주민 모습 - 인디안 댄서

가이드는 투어에 참석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고,사람들의 생각은 제 각각이다. 과연 ‘나’라면 어디를 택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답을 한다. ‘남쪽’.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북쪽과 서쪽은 너무 낯선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CROATOAN이라고 새겨진 글씨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는 ‘북쪽’이라고 대답한다…..


이곳에서만 16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가이드 마이클은 이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베테랑인 듯하다. 이제 이 세가지 가설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들을 전해준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1127232627_2_crop.jpeg 로아노크 인근 세코탄이라는 원주민 마을과 경작지 모습 - 존 화이트 그림

먼저 북쪽으로 갔을 것이라는 가설에 대해서. 로아노크 식민지가 사라지고 약 20년 후 바로 그 체사피크 베이에 영국이 제임스타운 식민지를 건설한다. 당시 영국인이 인근 원주민 추장에게 혹시 이전에 자신들과 같은 모습의 사람들을 본 적 있었는지 물으니, ‘아 있었지. 그 사람들 우리가 다 죽였지.’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음으로 서쪽으로 갔을 것이라는 가설에 대해서. 당시 서쪽 지역에는 여러 원주민 부족이 있었고 이들 간에 큰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에 한 부족이 다른 부족민들을 포로로 잡았었는데, 이들 중 몇 명의 백인이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왔다. 역시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쪽으로 갔을 거라는 가설에 대해서. 로아노크 식민지가 사라지고 120년 정도 후, 미국 이주민들은 노스캐롤라이나 남동부 지역에서 회색 눈동자, 갈색 머리털, 옅은 색의 피부를 가진 원주민 부족을 알게 된다. 이들은 ‘월터 랄리라는 사람이 흰 돛이 달린 배를 타고 바다에서 찾아올 것’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고, 선조 중에는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이들이 바로 Manteo가 속했던 크로아토안 부족인데, 후에 이들은 럼비(Lumbee)로 부족이름을 바꾼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럼비부족의 DNA 테스트를 하여 The Lost Colony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들 부족이 거부했다고 한다.


어제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미국 최초로 원주민 교육을 위한 대학(현재 UNC 펨브룩 캠퍼스의 전신)을 설립했다고 얘기했는데, 그 대학이 원래 럼비부족의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이들을 다른 원주민들과 구분하여 좀 더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 모든 가설이 답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이클은 ‘어쩌면 이들 정착민들이 각각 자신의 선택을 따라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 모두가 정답일 수 있다. 어쨌거나 나였다면 안전한 선택지인 남쪽으로 갔을 거다.


이곳 Fort Raleigh 유적지는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는데, 남북전쟁 당시의 흑인 노예 해방지로써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북부는 남부연합의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남부지역 해안을 봉쇄하는 작전을 수립하는데, 그 첫 작전지역이 바로 이곳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이었다. 로아노크섬에 북군이 상륙하자, 노스캐롤라이나 남부연합 지역의 흑인노예들 사이에서 로아노크섬으로 가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들이 백인농장주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하나 둘씩 숨어들어 한 때는 그 숫자가 3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숙소가 있는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로 가기 위해 북서쪽으로 향한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북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인데, 햇살이 매우 강해서 운전이 피곤하다. 앞으로 미대륙을 서쪽으로 다시 횡단해 가야 하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오늘 숙소가 있는 윌리엄스버그는 마을 분위기가 아주 고급지다. 모든 건물의 외관이 식민지 시대 버지니아풍(흰색나무와 빨간 벽돌)으로 관리되고 있다. 심지어 타이어 가게조차. 이곳에는 많은 식민지시대 건물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우리로 따지면 경주 같은 분위기랄까. 내일은 로아노크의 실패를 딛고 성공한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고, 워싱턴 DC로 가는 길에 파뭉키(Pamunkey)부족의 박물관을 들러 볼 생각이다. 파뭉키는 제임스타운 정착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원주민 부족이다. 그리고 드디어 워싱턴 DC 입성이다!


블로그 글은 분량이 길면 안 된다고 아내가 다시 한 번 주의를 준다. 하고 싶은 얘기와 하지 않아도 될 얘기 사이에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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