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고프면 짜증 날까

<1인용 감성>

by 재홍



“Now I’m getting hangry.”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스노보드 금메달리스트인 클로이 김이 SNS에 남긴 글이다. 여기서 ‘hangry’는 오타가 아니다. 배고프다는 뜻의 hungry와 화났다는 뜻의 angry를 합성한 신조어다.


배고파서 짜증 났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치졸하다. 하지만 ‘영화가 졸리다’라는 말을 듣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듯 우리는 배고프다는 말 이면에 담긴 감정까지 읽어내는 데 익숙하다. ‘출출할 때 넌, 네가 아니야’라는 초코바 광고에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배고프다’라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허기는 감정을 만든다


기쁨이나 슬픔 등을 감정이라 부르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배고픔도 감정일까? 심리학에서 배고픔은 ‘추동’이라고 한다.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라는 뜻이다. 추동과 감정은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보통은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고파진다. 이런 배고픔이 재빨리 해결되지 못하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감정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배고픈 정도와 그림이 주는 느낌을 물었다. 배고픈 참가자일수록 그림에서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굳이 실험하지 않아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예컨대, 회의 때문에 점심시간이 늦어지면 사람들이 슬슬 예민해지는 경우가 그렇다.



감정도 허기를 만든다


뇌는 성인 남성의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다. 그런데도 우리가 먹은 음식에서 나오는 열량 중 4분의 1을 뇌에서 쓴다고 한다. 그만큼 음식에 휘둘리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끼니를 거르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게 민망하고 성가시지만, 그보다 심각한 점은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뇌의 기능 중 하나가 정서를 조절하는 것인데, 불규칙한 식사는 불안정한 감정을 만든다.


문제는 생각만으로 가짜 허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밥 배, 후식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을 농담 삼아 한다. 그런데 엑스레이 실험 결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위가 꽉 찬 상태에서도 케이크 등의 후식을 보면 위가 움직여서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위가 허기를 느끼도록 뇌가 위를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 내려온 허기


어렸을 때는 당 떨어졌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다. 군것질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이제는 긴 회의를 마치거나 몰두해서 일하고 나면 어김없이 단 게 당긴다. 이는 위가 느끼는 허기가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 허기, 즉 뇌가 만든 허기다.


짜증 나거나 우울할 때 또는 일 때문에 진이 빠졌을 때 뭔가가 먹고 싶어지는 이유는 스트레스받은 뇌가 가짜 허기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달콤한 단당류는 몸에 빠르게 흡수되어 당 수치를 급속도로 높이는데, 혈당 상승을 통해 힘을 얻은 뇌는 쾌락 호르몬을 분비한다. 배고파서 짜증 나는 것이 아니라 짜증 나서 배가 고픈 것이다.



퇴화한 욕구


배고픔이라는 추동은 짜증이라는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대로 짜증이 났기에 음식으로 감정을 달래기도 한다. 감정과 추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hangry라는 말처럼 한 몸으로 온다.


배고픔이 생존 문제가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못 먹어서 절박하다기보다 당연히 먹어야 하는 것을 다이어트나 일 때문에 안 먹어서 짜증이 난다. 심지어 너무 많이 먹어서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말 그대로 ‘배부른 짜증’이다. 우리 세대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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