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그랑 소리와 함께 내려온 자리에는 신발굽이 움푹 파여있다. 떨리는 다리는 좀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얼마나 서있던 걸까. 뇌리에 축적된 도파민이 모두 빠져나간 듯했다. 그만큼 몰두했다는 뜻이겠지. 후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삭히고 내려온 곳을 다시 쳐다보았다. 높고, 날카롭고, 아득하다. 내가 서있던 긴장감의 표상은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 그 자체였다. 내 밤하늘도, 별도 숨죽인 듯했다.
깊은 숨을 드디어 내뱉는다. 저 우뚝하게 솟은 칼날은 당당한 내 하나의 사건이자, 도전이자, 확실한 결과이다. 날 끝이 부서져 나에게 환희가 내릴지, 절망이 내릴지는 아직 모른다. 반복되는 이 과정을 오르내리면서 얻은 여운은 인지하되, 미련은 남기지 않기로 했다. 결국에는 또 올라야 할 계단이기 때문에, 뒤돈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온전한 숨이 돌아오니 주위가 보였다. 수없이 들어선 칼날 위에는 많은 이들이 서있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소중한 이들이다. 높이와 너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걷고자 하는 칼길이니 오로지 무조건적인 존중과 응원을 실어주고자 하는, 굴뚝같은 마음이다.
진정한 자신의 꿈을 뒤늦게 찾아 다시 득도하는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원래의 길에서 아파하고 좌절했던 장면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겁다. 순진한 꿈에 생채기를 낸 현실이 괜스레 원망스럽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이지만, 미운 건 미운 거다.
일찍이 자신의 길을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가려고 했던 친구는 과거도, 지금도 무척이나 괴롭나 보다. 머리를 질끈 싸매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익숙하고도 애처롭다. 내가 선택한 고행길이니 담담히 걷겠다던 그 포부가 존경스럽다. 어떻게든 해소의 창구를 찾기에. 발전적인 미래를 향한 열망은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오래전에 떼었던 한두 발짝을 잊고 있었다. 단지 포기한 꿈, 반쯤 접어둔 꿈 등의 힘 빠지는 수식어로 내팽개쳤었다. 분명 날에 올라선 기억이 드문드문 있음에도. 진심으로 던져보는 건 처음이라며, 도전에 의의를 둔다며 풀 죽은 모습만을 보였다. 그만큼이나 자신감이 없었을까.
고개를 휘저으며 피식 웃음이 난다. 막상 떨면서 내려와 놓고는, 꽤나 번듯하게 완성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은 게 참 웃겼다. 그간에 기피한 장애물들은 다 허상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까마득하게 보이고, 막막한 것은 사실이다. 쉽게 올라갈 길이었으면, 이미 저 밤하늘에 닿았겠지.
내색은 이쯤 하기로 한다. 불살라 지금 반짝이는 것들을 다시 한번 관찰하고, 인정하고, 모셔두기로 한다. 이것은 계획의, 오늘의, 대망의 준비물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일의 것을 위한 발구르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