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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더 아늑했던, 그리고.

2025 서울여행 #3

by 훈자까 Feb 10. 2025

 꽤나 늦은 시간에 걸어서 숙소로 복귀했다.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까지 복귀하려고 했으나, 친구집에서 복숭아 사케도 얻어 마셨겠다. 무엇보다 평범해 보이는 서울의 밤거리를 만끽하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영등포에서 신도림까지는 걷는 데 최적의 거리였다. 서늘한 밤공기는 신난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웠다, 내 동경이자 한때의 환상이 머문 도시는.


 난방을 틀고, 뜨끈한 물에 샤워까지 마치고 누운 침대는 너무나도 포근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얇은 느낌의 침구류에 걱정이 앞섰다. 괜히 추운 겨울 고생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하얀 이불은 내 몸에 착 달라붙어서 기대 이상의 포근함을 주었다. 고독이 없는 그곳도, 다양한 숙박 시설의 침구류도 꽤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당장 호스트분께 궁금한 메시지를 드릴까 하는 의욕이 생겼다. 하여튼, 좋은 기분이었다. 첫 밤부터 아늑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잠이 들었다. 원래 여행 첫날은 아무것도 안 하는 법이랬나. 2만 보 가까이 되어가는 걸음에, 고독하려는 짐들도 함께였으니 말이다. 꽤나 깊숙한 휴식이었다.




 유산균과 단백질 음료로 간단한 아침을 채웠다. 걷힌 커튼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명한 햇빛은, 내 안에 쌓인 것들을 한순간에 승화시킨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방방 뛰듯이 가벼웠다. 오늘부터는 최소 하나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얼른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큰 일정은 서래마을에 있는 식당 방문이었다. '도우룸'이라는 곳이었는데, 생면 파스타가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나는 한껏 기대를 쓰다듬으며 방배동 근처에서 내렸다. 맑았다. 날씨는 나에게 한 번 제대로 고요를 즐겨보라는 듯, 하늘에는 정말 구름 한 점 없었고 춥지도 않았다. 자적하는 내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기쁘다.


 서래마을은 당시의 내 모습을 투영한 게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잔잔했다. 화려하고 이국적으로 세워진 건물들에, 좁고 한적하게 뻗어있는 다양한 길은 부러움까지 생기게 했다. 나도 여기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만끽했다. 걷는 것만으로도 완벽했다. 예약 시간까지 꽤 남았기에, 제대로 동네 한 바퀴 하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던 와중 알고리즘이 하나의 멜로디를 추천해 줬다. 'Lauv - Feelings'이었는데, 전주부터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지금과 알맞았다.


 결국 동네 한 바퀴를 하면서, 그 '느낌'을 무한반복했다. 찾아본 가사는 그렇게 와닿지 않아도, 곡 분위기만으로도 흡족함을 더해주었다.




 점심 식사는 꽤 만족스러웠다. 기대한 음식들의 모양새도, 맛도, 식당의 분위기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서울은, 참 좋은 곳이다. 환상이 한 겹 더 추가됐다. 지방과 비교해서 물가가 그렇게 벌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선택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울이 부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 '느낌'에 집중하면서 카페로 향했다. 아마 이번 서울에서는 계속해서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그 느낌에. 그때는 정말 황홀함에 근접한 무엇인가였다. 당연히 지금 들어도, 무척이나 좋다. 곡이 한순간에 질릴까 봐 아껴 들을 정도니 말이다.


 카페에 도착해서 평소 응원하던 대상에게 안부글을 썼다. 그리고 불발된 약속에 갑작스러운 속상함이 찾아왔다. 사람의 계획이 언제나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도 긍정과 승낙을 바란다는 건 자만이자 욕심이다. 그렇지만, 아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참, 나도 아직까지 한참 부족한 인간이다. 모든 계획이 다 완벽했으면 싶었는데. 그만큼 그 대상에게 좋은 감정과, 기대감을 많이 걸었다는 뜻이겠지. 애써 아름답게 적으려고, 평소 잘 먹지 않는 카페모카로 커피를 주문했다. 소용없었다. 카페모카는 무척이나 썼다. 지금껏 먹어본 어떤 커피들보다도 말이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뚫린 허무감이 내 소중한 일정을 물들일까 두려웠다. 천천히 눈을 감고, 억지로 포장틀에 집어넣었다. 이 불순물 같은 감정. 지금은 안된다고, 꼭 나중에 열겠다 다짐했다. 그토록 원했던 고요를 잃기가 진심으로 싫었다. 박힌 돌처럼 튕겨진, 바라지 않았던 쓸쓸함을 겨우 문 밖에 두고. 둘째 날의 숙소 문을 닫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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