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여행 #3
꽤나 늦은 시간에 걸어서 숙소로 복귀했다.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까지 복귀하려고 했으나, 친구집에서 복숭아 사케도 얻어 마셨겠다. 무엇보다 평범해 보이는 서울의 밤거리를 만끽하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영등포에서 신도림까지는 걷는 데 최적의 거리였다. 서늘한 밤공기는 신난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웠다, 내 동경이자 한때의 환상이 머문 도시는.
난방을 틀고, 뜨끈한 물에 샤워까지 마치고 누운 침대는 너무나도 포근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얇은 느낌의 침구류에 걱정이 앞섰다. 괜히 추운 겨울 고생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하얀 이불은 내 몸에 착 달라붙어서 기대 이상의 포근함을 주었다. 고독이 없는 그곳도, 다양한 숙박 시설의 침구류도 꽤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당장 호스트분께 궁금한 메시지를 드릴까 하는 의욕이 생겼다. 하여튼, 좋은 기분이었다. 첫 밤부터 아늑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잠이 들었다. 원래 여행 첫날은 아무것도 안 하는 법이랬나. 2만 보 가까이 되어가는 걸음에, 고독하려는 짐들도 함께였으니 말이다. 꽤나 깊숙한 휴식이었다.
유산균과 단백질 음료로 간단한 아침을 채웠다. 걷힌 커튼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명한 햇빛은, 내 안에 쌓인 것들을 한순간에 승화시킨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방방 뛰듯이 가벼웠다. 오늘부터는 최소 하나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얼른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큰 일정은 서래마을에 있는 식당 방문이었다. '도우룸'이라는 곳이었는데, 생면 파스타가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나는 한껏 기대를 쓰다듬으며 방배동 근처에서 내렸다. 맑았다. 날씨는 나에게 한 번 제대로 고요를 즐겨보라는 듯, 하늘에는 정말 구름 한 점 없었고 춥지도 않았다. 자적하는 내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기쁘다.
서래마을은 당시의 내 모습을 투영한 게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잔잔했다. 화려하고 이국적으로 세워진 건물들에, 좁고 한적하게 뻗어있는 다양한 길은 부러움까지 생기게 했다. 나도 여기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만끽했다. 걷는 것만으로도 완벽했다. 예약 시간까지 꽤 남았기에, 제대로 동네 한 바퀴 하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던 와중 알고리즘이 하나의 멜로디를 추천해 줬다. 'Lauv - Feelings'이었는데, 전주부터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지금과 알맞았다.
결국 동네 한 바퀴를 하면서, 그 '느낌'을 무한반복했다. 찾아본 가사는 그렇게 와닿지 않아도, 곡 분위기만으로도 흡족함을 더해주었다.
점심 식사는 꽤 만족스러웠다. 기대한 음식들의 모양새도, 맛도, 식당의 분위기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서울은, 참 좋은 곳이다. 환상이 한 겹 더 추가됐다. 지방과 비교해서 물가가 그렇게 벌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선택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울이 부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 '느낌'에 집중하면서 카페로 향했다. 아마 이번 서울에서는 계속해서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그 느낌에. 그때는 정말 황홀함에 근접한 무엇인가였다. 당연히 지금 들어도, 무척이나 좋다. 곡이 한순간에 질릴까 봐 아껴 들을 정도니 말이다.
카페에 도착해서 평소 응원하던 대상에게 안부글을 썼다. 그리고 불발된 약속에 갑작스러운 속상함이 찾아왔다. 사람의 계획이 언제나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도 긍정과 승낙을 바란다는 건 자만이자 욕심이다. 그렇지만, 아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참, 나도 아직까지 한참 부족한 인간이다. 모든 계획이 다 완벽했으면 싶었는데. 그만큼 그 대상에게 좋은 감정과, 기대감을 많이 걸었다는 뜻이겠지. 애써 아름답게 적으려고, 평소 잘 먹지 않는 카페모카로 커피를 주문했다. 소용없었다. 카페모카는 무척이나 썼다. 지금껏 먹어본 어떤 커피들보다도 말이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뚫린 허무감이 내 소중한 일정을 물들일까 두려웠다. 천천히 눈을 감고, 억지로 포장틀에 집어넣었다. 이 불순물 같은 감정. 지금은 안된다고, 꼭 나중에 열겠다 다짐했다. 그토록 원했던 고요를 잃기가 진심으로 싫었다. 박힌 돌처럼 튕겨진, 바라지 않았던 쓸쓸함을 겨우 문 밖에 두고. 둘째 날의 숙소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