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Y - 조깅
지금껏 산뜻한 분위기를 가진 곡을 일부러 회피했었다. 몽환적이지 않고 반전이 없는, 그저 맑고 밝기만한 노래를 듣다 보면 그 분위기에 무력하게 매몰될 것 같아서. 최소한의 현실적인 긴장감은 가지고 싶어서, 아이러니하게 어떤 곡이든 심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오히려 반대로 작용했다. 최근 들어서야 회피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오히려 곡 안의 행복감 속에서 나 자신을 균형잡힌 철옹성으로 유지하고자 다짐했다. 고개 돌린다는 건 결국 겁쟁이라는 말이니까.
최근 밴드곡의 매력에 입문하게 되면서 알게된 곡이다. 가사가 단순한 조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 운동을 인생에 빗대서 듣는 이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것이 참 좋았다. 거기다가 흥겨움, 그리고 맑은 분위기까지. 정말 아침햇살을 받으며 조깅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대 멀리 떠난다면 홀로 어딜 가고 싶은가요. 그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또 내 세상은 빙글빙글 돌아가.'
조깅할 때만큼은 여행을 가는 것처럼 마음 편히 달리라는 뜻 같았다. 하지만 걱정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조깅은 인생에 별다른 틈도 주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결국 또 내 세상은, 어지럽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현실적인 비유가 몹시 재치있는 것 같다.
'반대로 내가 가고 싶은 대로만 간다면, 그저 틀린 길만 나올까? 오늘도 우린 쉬지 않고 달렸잖아. 마라톤 하듯이.'
사유하는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이지 않을까. 난 분명 내가 하고 싶은 길을 찾았고, 그 길을 따라서 달리고 있는데. 왜 틀린 길만이 나오는 걸까. 마라톤처럼 쉬지 않고 달렸는데, 오늘도 말이야. 공감 가득한, 애석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다 머리 핑 돌아, 가끔 한 번은 동네 한 번 빙 돌아 마음 편하게. 너는 빛보다 밝게 빛나 급하게 가지마, 그렇게 머물러줘. 푸른 바람처럼 그런 너이기를.'
억울하고 실패에 깎인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열도 나고, 머리가 정말 핑 돈다. 실패만이 연결되어 모든 의욕이 사라진 암울한 기분이 보인다. 그래, 그럴 때는 원망스러운 그 친구와 동네 한 번 조깅이나 하자. 누가 볼 때 나는 빛나고, 스스로도 결국 빛날 테니. 푸른 빛깔을 가진 바람처럼.
'몸은 괜히 뻐근하고 오늘따라 괜히 나른하죠. 같은 일상 속에서 하루에 날 위한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
일에 지친 누군가이든, 혹은 일이 없어도 진정 나를 위한 시간을 쓰지 못하는 어떤 이에게. 선뜻 이런 물음이 건네진다면 꽤 뭉클하지 않을까.
'내일을 그리던 날 잃어버리고 있다면, 그런 그댄 행복하다 할 수 있나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들 바라왔던 것들 전부 잊고 있던 너잖아. 이제 너를 힘들게 하지마.'
확실하게, 격려를 표현한 문장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찍이 깨달았어도 그저 주위는 바라볼 생각을 못하고 질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정 현재를 살면서 하고 싶은 것, 바라왔던 것을 잊는다는 건. 결국 본인의 진정한 모습을 스스로가 지우는 처절한 자학이지 않을까.
난 하고 싶은 것, 바라왔던 것을 꽤나 행해왔다. 지금의 모습도 무척 소중하고, 나태함을 극도로 지울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해도,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스스로 세운 최소한의 규율 속에서 나 또한 담담히 달렸기에.
이 노래처럼, 매 때 숨 막히는 질주가 아니라 밝은 배경 속을 달리는 조깅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아침 햇살을 만끽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