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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 노트

변치 않는 거울

by 훈자까

아침마다 매일 서는 거울에 먼지가 꽤나 내렸다. 취미로 하던 것에 제대로 뛰어들자고 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이 희미하지만, 날씨가 꽤나 추워진 것 같았다. 골방에서 지낸 지 수개월이 지났다. 오늘도 무의식적으로 거울 앞에 섰고, 휙 돌아섰다. 유심히 지켜본들 뭐 하겠는가, 만족스러운 면이 단 하나도 없을 텐데.


연이은 실패가 있었다. 브런치 작가이건, 공모전이건, 연재였든. 뭐든 다 소식이 없어서 자존감은 희미해졌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이었다. 아, 오늘은 오랜만에 바깥빛을 봐야만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옷들도, 조금 케케묵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내 몸뚱이가 그랬다. 아끼던 옷을 입으려고 했는데, 비친 모습이 참 볼품없었다. 처진 눈, 살이 흘러내리는 몸매에, 기운이 없는 어깨까지. 그래, 마치 방구석 폐인을 입은 듯했다. 과거에 새겼던 동경심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입은 셔츠의 이름은 패배주의였다.


오랜 술친구를 만났다. 가볍게 손짓을 하고선 오뎅탕을 시켰다. 참, 지금 생각하면 서로 빈곤하기 짝이 없었던 시절이다. 첫 잔을 하고선 몇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아픈 말을 던지더라. '너, 자기혐오가 부쩍 늘었네.' 말을 듣고선 멈칫했다. 얘가 나한테 직접적인 언사를 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친구의 표정은 오묘했다. 비아냥인지, 동정인지, 안쓰러움인지, 혹은 한심함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 전부일지도.


얼근하게 취하고선 별다른 느낌 없이 비좁은 생쥐굴로 돌아갔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그 감정이 더디게 온다고 했던가. 다음 날 습관처럼 올려다본 내 모습은 흉측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전처럼 회피할 수는 없었다, 서러움과 한심함에 눈물이 맺혔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현실이든, 꿈이든, 자기 관리든. 이 모든 것에 철저한 규율을 세웠을 때가. 어떤 하루를 살던, 내 기준선의 최소한의 인간만큼은 살자고.


처음 몇 달은 살이 빠지니 꽤 불이 붙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와중 운 좋게 업무 경험도 친구와 같이 쌓을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존감이 조금 올라가서, 더욱 제대로 관리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내 방 선반에는 영양제가 한두 가지 쌓여가고, 하루마다 미디어와 지인들에게 운동에 대한 정보 습득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크게 다쳐도 보고. 그간 쌓았던 지식과 실천에 괴리가 있음을 최초로 깨닫고,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즐겁더라.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쾌락에 무감각해져 살다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조절하는 삶이 무척이나. 배움이든, 운동이든 간에.


또 생각지도 못한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도 정말 많이 만나고, 1인분을 하기 위한 그 높은 허들을 내가 결국에는 또 넘게 되었으니까. 맞다, 그때 알게 된 건데. 아침마다 보는 전신 거울에 먼지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매일 보는 모습이 더욱 만족스러워지니, 거울에도 손이 많이 갔던 이유였다.


이제는 매 해 여름과 겨울이 올 때마다 약간의 기대감이 든다. S/S F/W 시즌이라고 유심히 장바구니를 담는 만큼, 계절옷을 입을 때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니까. 스스로가 매일 보는 모습에서 변화를 느끼는 건, 실로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는 엄청난 변화일 수도 있는 거니까.


더욱 쉬워진 도전과 실패에 대한 여유로운 감내.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과 조금 더 큰 자기혐오가 공존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서는 흘러가는 삶이 더더욱 재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문장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러니 상심하지 않아도 돼.' 물론 지금도 과거의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내 모습이 좋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도록 노력할 수는 있는 거니까.' 그건 본인만의 욕심이고 지향점이니 말이다.


아직까지 하늘에 걸려있는 별들도 많고, 구경하기도 바쁘다. 물론 내가 닿기에는 한참이 멀었고. 모든 마음을 다해서 행복한 웃음을 지은 적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변치 않는 거울 앞에 서는 내 모습을 마주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찬란함에 웃음 짓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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