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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Jan 02. 2022

무르익은 공감을 선물 받는다는 건

내가 만난 사람들 #04

 '그냥 될 대로 돼라. 내가 하기 싫은데 어떻게 해.'


 방구석에서만 가만히 있는 것은 위험하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문득 찾아올 때면 두려움을 느낀다. 어느새 두려움은 나를 둘러싸고 있다. 이불을 내 몸에 몇 겹이나 감은 것처럼 짓눌리는 느낌, 그러나 과한 편안함이 드는 것 같은 기분.


 오랜 친구, 게으름은 항상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




 스스로를 진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본능인 걸까. 아니, 재능이다. 나에게 이 재능은 학창 시절에 가장 빛났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폭삭 죽어버렸다.


 '내가 노는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전생엔 분명 한량이었을 거야.'


 그렇게 5년을 보냈다. 입대 전에는 대한민국 남자의 아킬레스건, 군대가 있으니까. 전역 후에는 이제 전역했는 걸, 머리카락 다 기를 때까지만. 막상 복학을 한 뒤로는 돌아온 대학 생활인데, 이번 연도까지만.


 4학년은 바삐 지내고자 하는 마음조차 들 수 없었다. 현재 진행형인 인류 최악의 전염병이 닥쳤기 때문. 글로 적는 지금조차 20살부터의 5년은 변명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평소처럼 죽어버린 나날을 붙잡고 있는 와중에, 한 친구에게서 뜻밖의 제안이 왔다.


 "선배, 혹시 글 쓰는 모임 하실래요?"


 이미 죽어버린 별에 5년 만에 노크가 닿았다. 그 당시 내가 버린 재능은 과제를 조금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마치 좌천당한 위치의 그것이었다.


 "그래, 확실하게 정해지면 연락 줘."




 우연적인 그 이후로 세 달, 내 별에는 다시 불이 켜졌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게으름 안의 방황이라는 이유로 찾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이었으니까. 켜진 그곳은 지금까지 타오르고 있다. 온 세상을 밝힐 정도는 아니지만, 내 앞으로의 길은 충분히 밝혀주고 있다.


 그때 나에게 여쭤봐 준 친구가 없었다면, 좀 더 불행한 현재를 살고 있지 않았을까. 당시를 회상하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심 고마움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 암울해진 사회적 분위기에 모임은 더 이상 진행하기 힘들어졌다. 모임원들이 자신의 진취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얻기 위해서 모였기에, 실제로 모이지 않으니 흐지부지되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전부 아쉬움을 가졌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활에서 조금의 시간을 덜어냈다.


 워낙 아쉬움이 컸던 나는 개인적으로 다들 한 번씩 보고자 했다. 그리고 우연은 또 한 번 생겨났다.

 



 일정 기간에 집중되는 인간관계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기간이 마감되어버린 모임에 더욱 미련을 갖는 건 혹시 부담을 줄까 하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어가고자 했다.


 그때 고마움을 가지고 있던 그 친구와 밥을 먹었다. 종강 시즌이 다가와 고향에 가기 전 한 번 시간을 맞춘 것이다. 같은 모임의 이유로 친분이 더욱 개선되었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속성을 띤 만남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친하다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평소에 가졌던 친구에 대한 가치관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따스하고 둥글둥글한 분위기를 가졌다. 내가 어릴 적부터 살구색의 분위기를 꿈꿔왔는데, 뭔가 그 이상을 넘은 사람 같았다. 대단함이 들 정도의 친절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종종 반전적인 시원함을 주기도 하는, 사실 주위에서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격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다 무척 생각이 많아 보였다. 겉으로는 항상 따스함이 보이지만, 이런 따스함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되뇌는 마음 또한 견고해 보였다. 그렇게 어떤 누군가와의 만남, 찰나 한 번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후 나는 졸업을 앞뒀고 아직 세차게 흔들리는 성장통 앞에서 고민이 많았다. 기회가 되면 내가 신뢰하는 이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내가 가졌던 확신은 결국 그 친구에게 물꼬를 틀었다. 내 감정 이전에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부담감 등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한결같이 대답해줬다. 밝으면서도 진지하게 말이다. 그림자 진 내 모습에 혐오감을 느낄 때도 항상 밝은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자존감을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물어봐주었다.

 

 고마웠다. 덕분에 어두웠던 내 속에 햇볕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밝아진 실내에는 더욱 짙은 그림자가 드는 법. 그렇지만 나 자신이 공감을 얻고 성장통이 완화될수록 친구에게 연락하는 횟수는 차츰 늘어갔다.




 한 차례의 성장통이 모두 지나간 후, 지금까지 없었던 나만의 기준을 꼿꼿이 세울 수 있었다. 이제 세차게 흔들려도, 폭삭 무너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믿음의 바탕에는 분명히 친구의 피드백이 존재한다.


 이제는 그 친구가 졸업을 했다. 최근의 연락으로 서울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이 불안하고 떨릴 것 같았다. 친구 또한 그런 기분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갈증이 일었다. 내가 휘청거릴 때 어깨를 내어준 친구에게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글로 다 표현 못할 감정을 받고 동기부여가 됐었는데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인간이 세상에 갈구하는 수많은 공감 중에서도, 자신이 바라는 그 공감을 가져다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비현실적인 순간을 친구는 당연한 듯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받은 만큼의 공감을 친구에게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기회가 되면 최선을 다해 어떤 것이든 당연하게 도움을 주자라는 마음이 뒤따랐다.




 받은 고마움은 아직 절반도 갚지 못한 채 나에게 남아있다. 혹여나 그 친구의 분위기가 휘청거리고 흔들릴 때 꼭 은혜를 갚자고 또 한 번 다짐한다.


 새로운 생활을 맞이할 친구의 무탈과 행운을 기원한다. 그리고 내게 준 따스함을 어루만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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