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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Jan 09. 2022

편안해질 시간에 대한 기대감

내가 만난 사람들 #05

 어떤 사람과 한때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사람의 원초적인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편안함은 곧 즐거움과 부드러움으로 바뀌고, 그 시간이 끝나고 돌아서는 내 그림자에는 어느새 묵은 스트레스를 던져 한결 가벼워진 내 모습과 함께 아쉬움이 담긴 끈끈한 발걸음이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유명해진 MBTI 검사. 새로운 만남을 가지면 한 번은 꼭 물어볼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익숙해진 개념이 되었다. 나는 처음이 E로 시작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스스로 판단하기에 정확하게는 선택적 'E'의 성격 같다.


 친밀감과 신뢰가 쌓인 '나의 인간관계' 안에서는 만남에 거리낌을 두지 않는다. 항상 먼저 연락하고 시간이 맞으면 내 사람이 있는 곳으로 언제든 달려가는, 그런 성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거리를 많이 두는 편이다. 한 발짝이면 적당할 것 같은 거리를 반 보 정도 더 뒷걸음친다. 내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과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결과인 것 같다.




 선택적 E로 바뀐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21년 중순, 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간간이 연락하던 대학교 지인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부산에 갈 일이 생겨서 한 번 뵙자는 연락을 하게 되었고 날짜가 잡혔다.


 입대 이후로 본 적이 없었으니 최소 3년은 더 되었다. 만나기 전에 긴장이 많이 됐었다. 귀한 휴일 시간을 내주신 건데 재미없는 시간으로, 그저 그렇게 흘러갈까 걱정이었다. 대학 생활에서 내가 감사하며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흐트러질까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걱정은 한순간에 진화됐다. 지인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리고 내 인식 그대로 따스했다. 이전부터 항상 친절한 사람이었다. 당시 선뜻 친밀감을 가지기 어려웠던 나였는데, 내가 먼저 연락한 몇 되지 않는 분이었다.




 유하면서도 친절한, 그렇다고 사람이 무르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에 대해서도 괜찮은 인식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달랐다. 오후에 지는 해를 바라보면 항상 반겨주는 연한 노을 같은 성격이었다.


 날마다 비춰주는 노을빛처럼, 볼 때마다 따스한 분위기를 비춰주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항상 녹아있는 사람 같았다. 인위적이거나 가면이 아닌 솔직한 모습이었고 그래서 나도 많이 웃을 수 있었다.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찾아왔었다. 처음의 태도와는 다르게 내 의욕이 넘쳤다. 당시 약속한 건 점심이었는데 저녁까지 놀았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로 반년, 두 번을 더 봤던 것 같다. 이제는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보는 게 아니었다. 부산을 방문하는 약속 중 하나가 내 지인과 만나는 것이었다.


 내 사람을 만나러 가는 데에는 코스트가 없다는 것을 지인덕에 톡톡히 알게 되었다. 어쩔 땐 조금 무리가 있는 성격일 수 있겠으나 그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에 즐거워하는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내 인식이 맞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세상에 좋은 사람은 참 많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지인이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색함에 대한 걱정과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은 필연적이다. 나는 께름칙한 이 벽을 오랫동안 깨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작은 우연이라는 실이 단단한 매듭을 맺어주었다. 그리고 흰개미의 발걸음에 검은 둑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제는 두려움을 넘어 좋은 사람과 편안해질 시간에 대해 기대감을 갖는 나이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가장 잘 알지만, 모든 것을 표출하는 건 불가능이다. 그러나 다른 이와의 만남으로 몰랐던 내 부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꺼내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다. 


 반년 간 나는 한 사람과의 두세 번 만의 만남으로 마음을 비롯해 좋은 문장을 머리에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좋아질 내가 현재의 나를 이끌어주는 이 기분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오늘의 연한 노을이 저물어 인사하는 지금, 베풀어준 지인에 대한 감사함 표하며 또 만나 편안한 행복을 나눌 장면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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