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한 환기는 찾아온다
89일의 동기부여 #09
공휴일이 겹쳐있는 3월이 찾아왔다. 정신적 안정을 위한 몸의 마디가 내는 삐걱대는 소리는 이제 자연스러운 소음으로 바뀐 듯했다. 하지만 진동이 미약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해서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보름째 언덕을 넘어가는 내면의 메마름은 이제 쩍쩍 갈라져 눈 뜨고 쳐다보기 흉한 정도였다.
다들 업무가 바쁘다고 해도 쉼터는 필요한 법. 공휴일에 맞춰서 연차를 쓴 친구가 본가에 들를 겸 내려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휴일이나 주말에도 최근까지 혼자서 피로를 풀었던 나는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시간 맞는 친구들과 점심까지의 각자 일을 마친 뒤 그 이후 만나기로 했다. 10년이 넘는 우정에 매일 자신만의 소식과 시답잖은 얘기들로 이어온 친분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장난기 가득한, 학창 시절의 그때처럼 유쾌한 분위기를 가져다주었다.
나 또한 운전을 잘 못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친구도 베테랑은 아니었다. 운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세 명이서 쇼핑을 떠나는 일상적인 제스처 이 모든 것들이 갈라진 곳에 연고를 발라주는 기분이었다. 꽤나 깊게 파인 탓에 아물고 있다는 느낌을 당시에는 받지 못했었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산뜻한 바람이 터널을 통과한 듯했다.
쇼핑을 마치고 카페에서 근황도 교환할 겸 휴식을 취했다. 술이 가져다주는 열기를 사랑했지만 커피와 티가 가져다주는 진솔함 또한 마찬가지였다. 왠지 비약적인 분위기의 상승은 스콜에 밀려온 물결처럼 내 마음을 적시는 데 모자라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사다리 타기는 운전을 맡은 친구에게 행운을 씌워주었다. 셋 다 웃음을 터뜨리며 진동벨을 받았다. 잔잔한 카페의 분위기와 어떤 사람이든 오늘의 음료를 점칠 수 있는 여유, 이에 따른 진심 가득한 웃음까지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카페가 이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웠다. 나무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차분한 물소리와 따스한 햇빛은 마치 봄의 휴양림에 몸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처투성이의 껍데기들을 뚜둑하는 소리와 함께 떼어낼 수 있었다.
항상 장난기로 가득한 친구들에게서 큰 피드백은 없었다. 사실 많은 답변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단지 출구가 없는 터널이자 내가 요즘 그냥 이렇다는 투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조용한 공감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방법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인간관계에 섞인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글로는 자유롭게 풀 수 있어도 누군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약한 내 모습에 대한 안쓰러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그들도 이런 점을 익히 알았고 그래서 말을 아낀 듯했다.
하지만 괴로운 감정을 혼자만 간직하고 살아가기에는 본능과 인생은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렇다면 세상에 소중한 이들이 아무리 많이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 모두가 고독하지 않겠는가.
끝까지 달아오른 뼈마디가 냉수에 담가진 듯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며 속에서는 쌓인 것을 쏟아내는 거친 기침을 내뱉었다. 잠깐 따끔한 통증에 쾌적한 분위기가 잇따랐다. 드디어 기대하지도 못했던 환기가 찾아왔다.
동기부여라는 것은 자연스레 속에서부터 차올라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되뇌고 세뇌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잡아당기고 노력한다고 한들, 결국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고꾸라지는 건 당연했다. 이제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순풍을 만끽하며 날 찾아준 환기에 대한 감사함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