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의 동기부여 #10
전날 저녁부터 몽글하게 찾아온 시원섭섭함이 오전에는 가슴 안팎을 가득 채운 듯했다. 선택적 ENFP인 나로서는 이 기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약 3개월 정도 되는 기간만을 지낼 터이니,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업무 생활을 하자는 것이 내 첫 발걸음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먼저 표현하는 것을 쑥스러워했고 그렇다고 필요에 대한 능력치가 충분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든지 과하면 독이라고 한들, 사회적 생물에겐 과함 측정선 코앞까지의 급류도 속으로는 반갑게 맞이할 테니까 말이다.
나 스스로에게는 동기부여, 그러나 외적으로는 3개월간의 손님이기에. 힐긋 돌아보면 어느 누구라도 꽤 반가웠던 '손님'이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목표였다. 그래서 더욱 친밀감의 손을 건네고 싶어도 항상 그들에겐 부담이지 않을까라는 벽에 부딪혔다. 멈칫하며 처음 긴장의 팽팽함을 부여잡은 적이 많았다.
야속하게도 마지막 날에 와서 더욱 적극적인 내 모습을 보여주고 거리감을 좁히지 않은 후회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시험을 다 치르고 난 아이가 투정 부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렇게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자욱한 마지막 동기부여의 게이트를 통과했다.
퇴직 처리에 필요한 과정들을 마무리했다. 일전에 어느 정도 진행해두었기에 X 모양의 봉제선만을 꼼꼼하게 새기고 있었다. 혹시나 세모가 그려지진 않았을까, 방금 완료한 문서를 대여섯 번 들락날락거렸다. 조금이라도 애매한 부분은 여쭈어 최종 확인을 마쳤다.
퇴직하는 기념으로 점심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평소에는 말씀을 드리기도 어려웠던 분들과 이야기도 꽤나 나누었다. 소박하게 머물러 있는 꿈과 취미에 대화 주제를 모아 주시는 것에 감사했다. 곧 만끽할 봄날이지만 반나절만에 더욱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당도의 씁쓸함을 품은 커피 한 잔 다 비웠을 때쯤,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 다가왔다. 불안과 기대를 반반으로 물들이며 시작한 89일의 나날이 무섭게도 지나갔다는 체감에 섭섭함이 커졌다. 그리고 동기부여의 원천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 울적한 마음도 찾아왔다.
나름대로 정들었던 자리를 말끔하게 치웠다. 그들에게는 한 분기마다 초기화되는 행사이며 나는 제대로 보여준 것을 회상하기 힘든 와중, 뜻밖의 관대한 작별 인사를 받았다. 조금은 울컥했고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을 만족스럽게 가꾸어보자는 나였는데, 그 기간을 무시하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치부한 것 또한 나였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만족스러워야 했다면 조금 더 모험심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느샌가 시원함은 온데간데없고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게이트를 멍하니 나서서 정문까지 감사한 배웅을 받았다. 재차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린 뒤 고개를 돌렸다. 꽃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거리는 화사했다. 무엇보다 하늘은 눈이 시려 쳐다보기 어려웠다.
89일간 온기가 머물렀던 내 자리는 이제 다른 이의 동기부여, 혹은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각오로 채워질 것이다.
그간의 일상은 평안했을까. 동기부여에 배려를 봐주신 분들에게 감사했고 축복이라 여겼다. 낯설고 들뜬 기분이 찾아와 몰두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무르고 얇은 내 마음을 잘 알았기에 오래가지 못했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지독했던 환멸감도 찾아왔다. 사실 지금 또한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매일 밤 뒤척이며 후유증을 매만졌다. 생각의 탄성이 닳고 달아 날카로워 위협적이게 될 때쯤 나는 잠에 들었다.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웃고 있다. 섭섭한 마음 가득하게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어느 저녁의 즐거운 술자리처럼 쉽게 동기부여의 다짐을 목구멍으로 넘겼고, 절망스러웠던 수능 당일의 마음으로 그간을 되짚었다. 웃음이라는 게 행복만을 내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해일 같은 괴로움과 정신적 산행도 이러한 날들이 곁에 없었다면 벌써 나는 뭉개졌을 텐데. 성난 화산, 쇄설류에 덮쳐진 것처럼 죽은 눈으로 회색 세상을 곱씹었을 것이다.
나날에 대한 아쉽고 감사한 눈짓이 계속해서 잇따랐다. 마주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었다. 참으로, 내 소양이 부족한 탓일까.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다. 행복도 불행도 아닌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다.
후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꼬옥 쥐고는 마음 한편에 간직하겠다는 확고함이 들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당혹스럽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콕 짚어낼 수 있다.
현재 나는 과분한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눈부신 거리에서 휘청거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