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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Mar 19. 2022

지금 저는 회복 중입니다

생각 노트 #11

 최근 휴일의 아침은 더없이 맑았고, 상쾌했다. 이런 적이 언제였는가 생각을 자연스럽게 굴리며 아침을 챙겼다. 비록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닥쳐올 예정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부딪치게 될 것인데, 오늘의 행운 가득한 날을 부담 없이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성공적으로 식단을 챙기고, 사촌과 함께 운동도 만족스럽게 끝내고 싶었다. 내 기분과는 반대로 흐린 날씨와 구슬비가 내렸다. 높은 습도에 드디어 봄이 오려나 하는, 흐릿함 정반대의 시선을 가지고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다. 얼음이 가져다주는 차가움이 아직까지 덜 깬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곧이어 사촌을 반갑게 만나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잠 깨는 속도가 왜 이렇게 느린 걸까. 숨이 조금 찼다.




 평소보다 더욱 숨이 많이 찼다. 무게도 낮추고, 세트 수도 줄였으며, 휴식 시간도 두 배는 길었다. 그래도 내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젠 생활이 된 운동과 흡연도 하지 않는 나인데, 갑작스러운 호흡에 대한 위기는 스스로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무리한 운동은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킁. 점심밥을 공기에 푸는데 혹시 하는 생각이 지나쳐갔다. 일전에 구비해둔 자가진단키트를 꺼냈고, 흰 도화지는 아픈 먹물에 급속도로 잠식되어갔다. 15분, 30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어떤 친구는 수십 번 해도 한 줄만 나왔다던데, 나는 운수가 참으로 좋나 보다. 선명한 두 줄이었다.




 표정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찰나에 수많은 생각이 덜컥 겁을 먹게 했다.


 "당장 보건소 다녀올게요."


 하필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지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부모님의 표정은 나에 대한 염려의 크기가 얼마가 됐던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이해와 공감을 넘어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죄송스러웠다. 너무나도.


 왜 이번 주였을까. 작년 12월 이후로 사람을 만나지도 않은 나에게,  잡은 약속들이 넘쳐나는 이례적인 주였다. 거의 반년만에 연락한 친구의 얼굴을 반갑게 친히 보러 갔었고, 오랜만에 연락 온 동생과 커피를 마셨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들이 대한 미안감을 두 발에 칭칭 감고서 무거운 발걸음을 선별 진료소로 옮겼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격리를 시작했다. 증거와 증상이 확실했기에 혹시라는 기대감은 가지지 않았다. 회사부터 시작해서 최근 일주일 간 보았던 지인들에게 모두 암울한 소식을 전했다. 다들 고맙게도 별 거 아닌 듯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요즘 수십만 명씩 나오는데 안 걸리는 게 이상한 거지. 다들 자기 차례만 기다리면서 생활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거겠어? 나 걱정 말고 몸조리 잘해."


 "부서는 괜찮으니까 쾌유하시고 건강하게 다시 뵐게요, 훈 씨."


 머리와 목이, 그리고 전신이 아픈 듯했다. 죄책감에 뒤따른 자괴감이 내 온몸을 짓눌렀다.




 근 4일 정도 병마와 약기운에 취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덥고 찝찝하고, 한 순간의 흐름도 굉장히 느리게 흘러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감각이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게 하고, 모든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듣고 연락해주는 친구들의 안부에 상당한 창피함을 느꼈다. 사람은 아프면 극도로 외로워진다. 그러나 지금은 '나 많이 아프다.'라고 공감을 베풀어달라고 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았다. 접촉했던 이들에게 필요한 연락만을 취했음을 알고 있어도, 내 소식이 번져간다는 게 안타깝고 죄송스러웠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나도 저런 모습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비치어졌을까. 나도 그랬고, 모두가 그랬지만 선의만 가득한 말 한마디가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욱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은 꽈악 잠긴 채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편도가 팅팅 부어 입을 벌리는 것도 힘들어지지 않을까. 과거 수술 직전까지 간 이력이 있어 이러한 생각에 미치자 소름과 함께 공포감이 엄습했다.




 수백 번의 뒤척임과 수십 번의 헐떡거림, 그리고 몇 번의 신경 예민이 지나가고 몸 상태는 꽤나 호전되었다. 다행히 부모님도 증상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아직 잠복기가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급속도로 전파되지 않은 것에 먼저 감사를 전했다.


 아픈 와중에도 '글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수십 번이나 지나쳐갔다. 소재가 없는 걸까. 단순하게 귀찮아서? 아니면 모든 이유를 유행성 감기몸살에 떠넘기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현재를 흐르고 있는 순간을 글로써 담지 말자는 나만의 작은 철칙이 있다. 잠깐 뒤돌아보면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있는 계곡에는 당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해줄 것이다. 결국 흐르는 순간은 마이동풍이 될 것이 뻔하기에, 당장을 기록하는 건 무의미하며 가장 오류가 가득한 글을 쓰는 것이라는 나만의 기준이다.


 하지만 몸 상태가 서서히 돌아오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주기로 정해뒀던 시간에 쓰지 못한 죄책감일까. 아니면 주기적인 열의인 걸까. 상관없었다, 단지 현실에 물리적으로 이렇게 고통스러워한 것이 오랜만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좋다. 나는 지금 회복하고 있고, 생각을 남기고 싶다. 단지 아픈 경과를 일기식으로 무덤덤하게, 그리고 감흥 없게 풀어내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쓰고 싶은 것에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부터 글은 억지로 

계획하고 흔들리는 손가락을 붙잡아야 했는지.


 한 번 앓고 나니 많이 소탈해진 듯하다. 어떻게든 더욱 가지고 욕심부리던 나날들이 웃기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양손에도 빛나는 것들이 가득인데, 이카루스가 되는 건 불쌍한 말로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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