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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May 09. 2022

미워하되 사랑하자

생각 노트 #12

 이번 생각은 무척이나 길었다. 끝이 보이지도 않았고, 볼 수 없을 것 같아 눈을 감고 걷기만 했다. 내 기준선에서 하루를 사람답게 살았다는 최소한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일정을 제외하고는 생각에만 몰두했다. 그러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힌 듯했다. 쿵하고 소리가 났다. 얼얼한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또 하나의 여정의 마지막에 도달한 듯했다.




  나를 미워했다. 나라는 사람을 지금의 상태로 설계하게 만든 환경을 증오했다. 속에 틀어박힌 외로움과 고독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대부분의 의욕을 잃었다.


 개인주의자가 부러웠다.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오로지 자신만의 생활을 붙잡는 그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나는 왜 저러지 못할까, 그토록 동경했던 성격은 결국 내 것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왜 사람을 만나야만 일상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는 것일까. 물론 좋은 현상이 내 곁에 지속적으로 머물 때의 폭발적인 시너지는 눈부셨다. 그러나 인생의 어둑한 수많은 페이지 중에서 소수의 장들만이 환한 빛을 내뿜는다면, 필요 없었다. 나는 차라리 빛나고 싶지 않았다. 그 찬란한 것들을 모든 페이지에게 나눠주어 무료하나 온전한 페이지들로만 책을 써내리고 싶었다.




 개인주의자가 부러웠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마찰이 발생했다. 성격은 양극단을 달리고 있었고 서로가 탐색한 정보들을 화난 감정 안에 실어서 내던졌다.


 서로의 관계가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나의 일상적인 제의와 연락은 친구에게 강요로 다가갔다. 그리고 점점 무관심하며 냉대적으로 느껴졌던 친구의 모습은 나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다 주었다. 친함이라는 자부심 깊숙이는 내 가치를 무시당하는 것 같은 화가 들끓었다.


 너무나도 상대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던 둘이었지만, 이번의 격한 대화로 서로는 다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친한 친구이자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성격을 거두고 서로를 더욱 존중해주자는 꽤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내 성격을 다시 규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욱 싫증이 났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생각하며 정리했다.


 얼얼한 이마와 함께 확신하게 된 것은 내가 부러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온전한 자유와 시간이 행복의 원천이자 1순위의 가치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벽 밖에서 만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베푸는 거대한 친절의 원인 또한 같았다.


 '내 시간이 이토록 귀중하니까, 그들의 시간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해.'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 스스로도 그럴 것이라는 본능적인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반대의 결과를 보는 것 또한 당연한,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이 뒷받침했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가치에 형편없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것이 아닌 관리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자신에게 주었어야 할 사랑의 일정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남들에게 줄 사랑은 다른 이들보다 넘쳐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부담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어도 멈출 수는 없었다. 이것이 내가 본능적으로 하고 싶었고, 그간 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물론 아직까지도 나를 몹시 미워하고 있다. 나를 사랑해서가 아닌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 일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내가 개인주의자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또 배운 것이 있으니 나에게 대입하는 것이 옳다.


 내가 가진 사랑의 양이 절대 남들보다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양이 나에게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남들에게 전부를 줄 수도 없는 현실에, 덩그러니 보관만 하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윽 내 안을 들여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허했다. 스스로에게 사랑받지 못해 안쓰러운 지경으로 보였다. 그동안 너무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나를 조금씩 사랑해보려고 한다. 다가가기에 몹시 어렵더라도, 진솔한 감정을 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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