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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May 18. 2022

계획의 완벽성

생각 노트 #13

 '계획의 완벽성'이라고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나는 늦은 저녁 약속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간단하게 식단을 챙기고, 언제 씻을 것이며 이때쯤 교통을 이용하면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겠다는 순서를 말이다. 아, 중간에 ATM을 찾는 것까지 해서 말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언제, 어떤 이든 간에 누구나 사고하고 시간을 각자의 환경과 성격에 따라 분배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계획이 된다. 초등학생 시절 겨울 방학의 계획표를 반신반의하며 짰던 기억처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계획했으며 계획하는 법에 대한 교육 또한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계획한 것들을 보라. 잘 지킨 적이 있었는가. 계획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것을 칼같이 지키기는 사람은 무척 희귀한 실정이다. 왜 계획은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 분명 우리는 자연스럽게 당찬 의욕과 함께 일정 시간에 대한 계획을 마련했으나, 이행하는 순간에는 의욕이 떨어지고 게으름이 발생하며 계획을 망치게 되는 것일까. 아니, 처음 세웠던 계획을 스스로 타협하고 할당량을 줄이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이 정도의 계획이라도 완수했다며 자기 위로로 일상을 지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생각'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한 번 수립된 계획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어야만 한다. 절대로 쓸모없는 자의적인 생각이 개입되어 내용을 허술하게 바꾸어선 안된다. 가령 정시 퇴근 후 20시에 어떤 것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면, 당장 20시에는 처음 그렸던 시작점이 눈앞에 펼쳐져야 한다.


 '저녁을 먹고 쉬고 싶어서. 조금만 더 있다가 씻자. 더 빨리 밟으면 도착할 수 있겠지. 30분만 늦추자.'


 이러한 생각들이 발생하여서는 안된다. 이미 발생한 순간부터 우리의 계획에는 제동이 걸린다. 생각할 시간은 활동성을 좀먹는 세균이다. 생각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계획한 그대로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우리 몸에 장착된 소프트웨어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만이 본연이 가진 임무이다. 그 이상을 행하는 것은 월권이자 하드웨어에 대한 침범 행위이다. 하드웨어는 순수 소프트웨어의 결과물만을 가지고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다른 명령은 절대로 입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몹시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더 첨가되어야 할까.


 바로 생각 이전에 발생하는 감정이다. 감정은 계획의 수립과 이행, 두 단계 모두에 개입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계획의 내용과 순서 등에 깊은 관련을 가지고 이행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갖는다. 긍정적인 감정은 계획의 질과 만족도를 높게 설정하게 하고 이행 또한 예상보다 초과된 결과물을 낳게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긍정적인 감정을 일상에 주입시켜야 한다. 하지만 수립과 이행에 항상 긍정적인 감정이 충족한 사람은 계획에 있어서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바뀌지 않아야 할 계획이 변경되는 상황은 대부분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다. 바뀌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또한 완벽한 계획을 이행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얻으려는 목적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자주 바뀌는 계획에 습관처럼 행하는 자기 위로적인 생각은 원초적인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이미 시간을 버린 결과에서 자괴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계획을 수립하면서 싫어하는 감정을 심어두어야 한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의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현재 상태에 놓인 자신을 싫어하는 감정이다. 지금의 상황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공부, 운동, 취미, 자기 계발, 업무 능력까지.




 당장 거울에 투영되는 나의 능력을 바라보라. 실망스럽지 않은가. 세상에 빛나는 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부러워만 할 것인가. 왜 저 수많은 별들처럼 내가 저 별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눈에 비치는 미약한 빛을 가진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자. 그리고 지금껏 걸어왔고 버려온 시간들을 후회하고 더욱 두려워해라.


 나는 왜 이럴까. 정말로 그릇이 작다. 게으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한심하다. 지나간 건 바꿀 수 없다. 이러한 감정을 계획 여기저기에 박아두어라.


 완성되었다면 어느 정도의 독기는 품어도 좋다. 아니, 품는 것이 맞고 당연하다. 지금까지 털털거렸던 엔진을 바꾸려면 독이 침투하여 고장 내어야만 한다. 생각하려는 끈을 절대적으로 붙잡고 사수해라. 나는 지금부터 마지막으로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의 모습만을 그린다. 생각 없는 이행으로 앞길을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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