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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May 24. 2022

비슷한 감성을 지닌다는 것

내가 만난 사람들 #07

 한 집단에서 자신과 비슷한 감성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꽤 특별한 일임에 분명하다. 항상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치이는 집단에서라면 더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상대방의 성격을 이해하고 공감을 서로에게 건네는 행위는 감정을 맡기고 의지할 수 있다는 표상이 아닐까.




 바보 같은 친구가 있었다.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내가 바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미련이 많은 친구였다. 그가 좋아하는 것만큼,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친구였다. 나보다도 감정에 더욱 솔직했고, 그만큼 감정에 질질 끌려다녔었다. 마음이 휩쓸리고 쓰라려도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바보였다.


 인생에서 감정에 이겨본 적이 없는 둘은 처음부터 통하는 게 있었나 보다. 무리에 섞이고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를 직감했던 것 같다. 


 단박에 친해진 서로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이야기보따리를 허겁지겁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동그란 눈으로 맞춰보는 아이들처럼,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빗대기 시작했다.


 종종, 혹은 자주 감정 서신을 교환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뜬금없는 구설수를 듣게 되었다. 당사자는 어느 드라마의 대본처럼 그 친구에 관한 것들이었다. 내용을 듣고 지레짐작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남에게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나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물기가 있는 큰 편지가 한 통 나에게 오지 않을까는 생각과 함께.




 며칠 뒤에 본 친구는 평소보다 웃음이 적어 보였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시킨 우리는 평소처럼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잠시 조용해진 듯했다.


 "너는 왜 나랑 밥 먹어? 괜히 소문만 안 좋아질 텐데. 내가 미안해."


 조금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항상 웃던 사람이 빈도가 줄었다는 건, 몹시도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호하게 자괴감이 섞인 문장을 부정했다. 말투는 단호했지만 방금 전에 떠먹었던 김치찌개가 생소금을 씹는 것처럼 쓰라렸다. 마음 한가득 안쓰러움이었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서 오늘은 나에게 하루 전체가 여유 가득한 날이라고 못 박았다. 헝클어진 보따리를 밤이 지나도록 차곡차곡 조심스레 쌓아갔다.


 열린 문을 닫는 건 어린아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라면 무의식적으로 행할 정도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을 닫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지금껏 항상 열어두었고, 열린 곳을 통해 행복을 얻는 사람이 문을 닫고 싶다고 해서 과연 닫을 수 있을까. 조금만 닫혀도 창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오는 빛줄기가 줄어들 것이다. 그에게는 생소하고 두렵고, 무엇보다 자신의 성격을 거부해야 하는 끔찍한 체감이지 않을까.




 이후 만나는 사람이 다양해지고, 지역이 달라진 서로는 연락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처음부터 짐작했던 일이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집단의 목적이 시효를 잃어버리면 소속감 또한 와해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러던 와중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옛날 얘기를 추억 라디오처럼 틀었다.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매번 새롭게 각색되는 라디오는 항상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순간부턴가 내 이야기를 하면, 너까지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그런 느낌이 들고나서는 얘기를 잘 못하겠더라. 그리고 항상 우울한 면만 친한 사람들한테 비추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듣고는 내심 놀라웠었다. 당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보따리를 꽁꽁 싸매자는 다짐을 했었다. 쟤는 항상 우울해. 매일 저렇게 허우적대고 있다니까. 이런 평가를 받을 것 같아 두렵고 무서웠었다. 그런데 비슷한 말을 전해 들으니 역시 통했던 감성은 어디 안 가는구나 싶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듬직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또한 서로의 일상에 힘쓰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만났을 때에는 내심 친구에게 기대를 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일 거라고. 힘겨워도 행동과 감정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한 번쯤은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근황을 주고받으니 웃음이 나왔다. 겉만 그럴 뿐 속은 여린 알맹이로 가득 찬, 이전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친구 또한 나에게도 그런 것을 느끼고 말을 이었다.


 "하여간, 우리는 성격이 이래 가지고. 맘고생 안 하기는 글렀다."


 그 말에 다분히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서로 그간 쌓인 신뢰와 의지를 한 문장에 압축한 듯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일상이 크게 변하고 각자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자신만의 감정 해소제가 생겼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뭐, 가끔 가다가 서로 와르르 쏟아내기도 하지만 말이다.


 넘실대는 감정을 공감으로 살면서 처음 맞대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재질만 다를 뿐 길이가 비슷한 줄 자를 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의 인연이 나의 관계지향적인 부분에서 긍정적인 한 면을 만들어주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순수를 잃지 말자는 뜻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감정에 지는 것은 단순히 나약한 게 아니다. 자신이 상처받아도 반대되는 다른 이를 그만큼 공감하기에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꿋꿋하게 창을 활짝 열고 지내는 친구에게 응원과 항상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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