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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Jun 22. 2020

핑크퐁보다 못한

꿈나라로부터

Terrible two라 한다. 한국의 미운 세 살처럼 영국에서도 아이 보는 일이 어려워질 때를 상정한다. 두 살이 된 아이는 이제는 한 음절만 말하던 것에서 벗어나 두 음절 또는 그 이상의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가 안기며 '아빠 사랑(해)'라고 말해줄 때이다. 내가 다 표현해 주지 못했던 것 같은데, 더 자주 말해주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아이는 책에서 본 것인지 슬그머니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럴 때 나는 너털웃음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말이 아빠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자주 많이 표현한다.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 더 아름답다.


한 편 아이의 솔직한 표현은 반대 방향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시러'를 어느 순간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무셔'가 있는데, 처음엔 '호(랑이) 호(랑이) 무셔' 정도로 이빨이 뾰족한 동물들이나 공룡을 무서워하시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바나(나) 무셔'라든지 '멍멍(이) 무셔'로 순간 자신의 싫은 감정 또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하튼 '시러'와 '무셔'의 교차 반복 횟수는 아이가 그 대상 또는 행동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짐작하게 하는 지표이다. 문제는 그 지표가 매우 불규칙하다는 데 있다.


좀 지루해 하긴 했지만 큰 문제없이 이를 닦던 아들은 최근 '시러'와 함께 격렬한 반항을 보인다. 아무리 엄마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선홍빛 귀여운 잇몸과 이를 내주는 것이 부끄러운 걸까. 그 짧은 몸을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일자로 쭉 펴고서는 액체 괴물처럼 빠져나간다. 억지로 담아서 다시 우리의 그릇에 가져다 놓으면 '무셔'를 받게 된다. 이는 격렬한 육체적 저항과 비명 등을 동반하여 이웃에게 아동학대의 의심을 사게 하는 단초가 된다. 출산과 육아로 데미지를 깊게 입은 엄마의 손목은 그런 아이를 붙잡을 힘이 없다. 아빠는 저항하는 아이의 옆구리를 붙잡고 서서 태종과 세종의 길 사이에서 고민한다. 칫솔질이 세상에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이야.


그런 아이를 붙잡는 유일한 말이 '이러면 핑크퐁이 싫어해'이다.


오늘 핑크퐁이 꿈나라에 이빨 잘 닦은 아이들 데려가서 소방차도 타고 (위용위용) 굴착기도 타고 (철컥철컥) 할 텐데 너 이러면 오늘 꿈나라 못 가요. 얼른 이빨 닦자.


그 꿈나라 같은 거짓말에 엄마의 손에 들린 칫솔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아이를 보노라면, 이 핑크퐁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정말 1살 이후부터는 기저귀 가는 일도 너무 격렬히 반항했는데 (나라도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로 누여진다면 좀 수치스러울 것 같다만), 핑크퐁 볼까 한 마디면 아이는 평안을 찾았다. 아직 예수님도 주지 못하는 아이의 평안을 주는 이 핑크퐁은 누구인가. 나의 노래와 율동, 현란한 동물 묘사에는 눈과 귀를 기울이지 않던 아이가 핑크퐁 아기 상어를 틀어주면 혼을 내어준다. 심지어 백 번은 본 듯한 아기 상어의 사냥 장면인데. 핑크퐁보다 못한 나 자신을 바라본다.


한 편으로 어느 순간 우리는 잊고 있던 꿈나라라는 환상과 마법의 세계와 그곳에서 놀아주는 핑크퐁을 그리는 아이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평안으로 다가온다. 정말 아빠가 그렇게 말하고 나면 아이는 꿈속에서 핑크퐁을 만나 굴착기도 타고 딸기, 귤, 포도가 떨어지는 기차를 타는 걸까. 아빠의 꿈속에서는 핑크퐁을 못 만난 걸 보면 같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빠 엄마 없이도 괜찮았던 걸까. 락다운으로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을 그곳에서는 실컷 껴안고 장난치며 함께 놀고 있을까. 핑크퐁보다 못한 아빠는 괜한 상상에 빠진다.


그래서 오늘 두 살이 된 너의 Terrible Two는 상상이라는 새로운 여정으로의 Magical Two임을 축하해. 아빠와 엄마가 그 여정의 골룸과 샘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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