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너의 세 번째 겨울
어영부영하다 이럴 줄 알았지. 오역이긴 해도 이만큼 인생을 잘 표현한 문구가 있던가. 버나드 쇼도 한국에서 대충 번역된 자신의 묘비명이 흡족할 테다.
어영부영하다 영국에서 다섯 해가 흘렀다.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연휴를 온전히 영국에서 보낸 것도 처음. 팬데믹은 어느 이방인 가족에게도 차별 없이 기묘한 겨울을 선물했다. 만나는 사람 없이 열흘 정도 시간을 집에서 아이와 보내다 보니 느는 것은 요리 실력과 와인.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때 1병에 5파운드가 안 되는 가격으로 좋은 와인 17병을 산 것은 혜안이었다. 오후 4시면 져서 아침 8시가 넘어야 뉘엿뉘엿 뜨는 해마냥 나의 연말은 와인들과 늘어지고 질척댔다.
언제까지 영국에 있을 예정이냐. 내게 가끔 던져졌던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한 질문은 어영부영 답했듯 영주권을 따는 시점에 이르러 성취된 예언이 되었다. 다섯 해를 과연 별 일 없이 이 곳에 있을 수 있을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더 단순히 주어진 날들에 충성할 수 있었다. 요즘 링크드인에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은 이 곳의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지원서를 냈고, 얼마나 많은 인터뷰를 실패했는지 공유한 글들이 자주 보다 보니, 끝없던 이 곳에서의 나의 실패들이 기억났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이 곳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낸 것,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의 나는 신의 은총이고 작은 기적이다.
사실 나는 성공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 절대다수의 실패한 기억들이 더 친밀하다. 런던에 클라이언트랑 미팅이 있어서 나갔다가 거리가 익숙해서 돌아보면, 인터뷰를 보러 왔던 곳 근처였다. 특히 3번의 인터뷰를 보러 왔던 Tate Britain 근처 회사를 지날 때면 그때의 날씨와 기분들이 생생하다. 거듭됐던 실패에도 나는 그 여름날 템즈강의 햇살이 비치던 회사 창문들과 Tate Britain의 터너 그림들에 즐거웠다. 내게 익숙한 경험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한 도시의 답사를 다니듯 익숙지 않은 거리들을 거닐며 인터뷰 예상 답변들을 되뇌었고, 굳이 그 경험들을 승패로 묘사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사이 아내는 늘 기다려줬고, 용기를 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해주었다. 얼마 전 monthly catchup에서 K가 올해 나를 힘나게 했던 말들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는데, 특별히 올해는 아니지만 나는 늘 아내가 내게 해주었던 말을 생각했다. 나는 서방이 늘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아이슬란드에서 요쿨살론을 가던 날. 요정이 더 심술을 부려서 눈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눈을 내리고 바람에 차가 흔들리던 날, 레이캬비크에서 6시간 거리의 마을로 향했다. 다행히 셀야란드포스 즈음 가서야 눈이 잠잠해졌다. 폭포를 가까이 가서 보겠다고 철없는 소년처럼 흩날리는 차디 찬 폭포에 흠뻑 젖고, 스코가포스 근처에 이르니 해가 이미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2시간 더 달려가 해안에 흩어진 빙하를 보며 컵라면을 먹을 생각에 차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길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헤드라이트에도 눈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암실이 되었다. 다행히 앞서 달리던 차들을 만나 그들 뒤만 졸졸 따라가다가 급정거해버린 그 차들에 쿵.
사고 자체는 크지 않았는데 희한하게 앞 범퍼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인근 호텔로 이동해서 렌터카 회사에 전화하니 폭설로 인해 견인에도 수일이 걸리고 비용도 차를 빌린 비용보다 3배를 부른다. 한참을 실랑이 끝에 결국 우리가 5시간 떨어진 레이캬비크까지 차를 몰고 가기로 하고, 보험비용과 사고비용 등을 협의하고 나니 새벽 1시가 되었다. 나는 범퍼만큼 무너졌다. 왼쪽으로 핸들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 차를 타고 굽이굽이 Ring Road를 달릴 생각에 벌써 심장이 벌렁댔다. 세상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으니 아내가 말한다. 괜찮아, 천천히 가면 되지.
다음 날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하고 기타 처리를 하고 나니 오후가 되어 1박 2일 일정으로 레이캬비크로 돌아가게 되었다. 단단히 기도를 하고 중간 기점에 호텔을 잠고 출발을 했다. 잔뜩 긴장을 한 나와 달리 아내는 뭐가 신이 났는지 지나치는 풍경들을 막 사진에 담는다. 덕분에 나도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 채, 겨우 목적했던 호텔에 해가 떨어진 즈음 도착했다. 어제 못 먹었던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호텔 앞에 나와 보니, 요쿨살론으로 가기 전 그렇게 보려고 여기저기를 다녀도 보지 못했던 오로라가 거짓말처럼 하늘에 펼쳐졌다. 아내의 녹색 치마 결 같은 오로라가 밤바람에 일렁이고, 우리는 그 역설적이고 반전 같은 밤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게 됐다.
지난 다섯 해를 생각하니, 그냥 그날 밤이 생각이 났다.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해 그다지 자신이 없고 언제 이 차가 멈춰 설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옆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사람이 있어서 계속 어영부영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 겨울을 인생에서 맞이한 네가 우리에게 왔다.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겨울을 맞이한 너에게 이 곳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락다운이라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 Ewan 집을 그냥 지나쳐야 했을 때 서럽게 울던 너를 달래준 티라노는 어떤 의미였을까. 안티소셜인 아빠와 달리 너를 지나치는 모든 누나와 형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너를 억지로 붙잡아야 했던 아빠의 손은 너무 거칠지 않았을까. 그때마다 '너가 가까이 가면 (특히 뛸 때마다 네가 기침을 하는 바람에) 저 아줌마 아저씨가 싫어해'라는 아빠의 말이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집에서 떼를 쓰는 다 큰 너를 힘으로 제압하려면 이제 아빠도 최선의 힘을 써야 해서 가끔 그것이 과했던 것 같았을 때 너무 놀래진 않았을까. 먼저 아침에 일어나 아직 뒤척이는 아빠와 엄마를 향해 '그때! 호랑이가 깜짝 놀랐어'라고 구연동화를 하는 너는 지루해서 그러는 걸까 아님 아빠와 엄마를 향한 모닝 송인 걸까. 공룡들 가지고 놀 때 내가 입장 바꿔서 너도 한번 느껴보라고 아기공룡을 가지고 '아빠 나 이거 맛없어. 맛있는 쿠키 줘. 고기 내놔!'라고 할 때마다 계속 '그래도 먹어야지' 하며 자상하게 고기 장난감을 가져오는 너는 아빠 반성하라고 그러는 걸까.
아빠가 더 잘할게. 미안하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