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의 영국 주택구입기
우선 이 글이 영국에서의 재테크를 논하거나 영국에서 집을 산 나의 능력을 자랑하는 글이 아님을 밝힌다. 사실 재테크/투자에 무지하리만큼 관심이 없고, 능력도 변변치 않아 그러한 글은 원해도 쓸 수 없는 글이다. 그저 어쩌다 영국에 온 두 부부가 아이를 낳고 어쩌다 보니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을 산, 아주 평범한 시제가 이 글의 본질이다.
책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영국 국민들은 정원 가꾸기와 산책을 즐기고, 구운 소고기를 먹으며, 일요일에는 요크셔푸딩을 먹는다.
영국에서 산책한 이야기를 많이 썼던 작가 빌 브라이슨은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Life in the UK라는 책을 공부해야 했다. 이 책은 영국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상식을 역사, 법, 행정, 문화 등 광범위하게 다룬다. 빌 브라이슨이 부담스럽게 느꼈듯이 위와 같은 일반화는 현실적이지 않다. 당연히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모든 영국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우리 옆집 영국인 이웃은 정원을 버려둬서 낙엽에 잔디가 압사했는데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기를 즐긴다 (난 가끔 그가 그 생명이 소멸하는 공간에서 '자연의 큰 기운이 몰려온다'라고 외치는 상상을 한다). 어쨌든 영국에서는 정원이 있는 집을 사서 가꾸는 것이 큰 마일스톤임에는 틀림없다.
집에 대해 회고를 시작하니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지인들이라면 아마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의 장황했던 가양동 시절 이야기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사실 그 가양동 아파트는 무려 자가였다. 돈이 있어 산 것은 아니었다. 시골 전도사님 아들인 내게 결혼을 위해 모아둔 돈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편을 생각하면 전세가 적당했지만, 계속 오르기만 하는 서울의 집값이 무서웠다 (나의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대출을 껴서라도 사는 방향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예산의 부족은 적당 이상의 열심을 필요로 한다. 건축가였던 아내가 늘 야근으로 바빴기에 예비 장인어른과 함께 퇴근하고 집을 보러 다니다 늦은 저녁을 먹는 일을 몇 달 했었다. 돌아보면 장인어른은 참 내가 얼마나 곱게 보이지 않으셨을까. 사랑하는 딸을 보내는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가난하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역에서 만난 장인어른의 얼굴은 참 평온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워낙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분이셔서 그랬던 거지 내가 드린 평안 때문은 아니었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의 결혼 준비기간은 그 흔한 양가의 갈등도 없이 한 길 물처럼 잔잔했다.
처음부터 가양동을 봤던 것은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직장과 생활권을 고려해서 6호선 라인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우선 내가 살던 합정과 아내의 오랜 동네인 망원을 봤지만 예산에 맞는 집이 없었다. 현실을 따라 불광, 연신내, 응암의 빌라들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마뜩지 않아 망설였다. 몇 달을 기대와 현실 사이에 표류하던 중, 어떻게 가양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2013년 봄. 여자 친구와 함께 집을 보러 갔던 어느 주말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90년대에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 7층 끝에 있던 문을 여니 낡은 1.5룸 같은 집이 나왔다. 현관문과 베란다 창문 사이에는 게으른 해 질 녘 햇살이 늘어지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초침까지 담고 있던 쭈글쭈글한 벽지와 이상한 시트지가 끼여져 삐걱대던 베란다 창문은 20년이 넘게 수리된 적 없는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안동 고모집에서 봤던 것 같은 낡은 황토색 바닥지가 실크로드 마냥 공간과 공간을 잇고 그 위를 거닐면 무역상이 된 것 같던 집. 아마 그동안 봤던 집들 중에 가장 낡은 집이었던 것 같다. 그전에 새 집들도 많이 봤었는데, 나는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낡은 집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희한하게 돌아오는 길 여자 친구 역시 그 집이 '우리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집이라는 느낌, 아마 그 늘어지는 햇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햇살이 스며들던 공간에서의 행복한 기억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영국에서 다시 해 질 녘에 어느 집을 만났다. 공원 어귀에 있던 이 집은 우리가 첫 viewer였고, 아내와 내가 서로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영국에서 집을 사야겠다 결심을 했을까. 우선은 경제적인 이유가 컸던 것 같다. 영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매년 평균 1.5% 정도 상승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Caversham은 집값이 지난 5년 평균 10%, 12개월간 2.5%가량 상승했다. 쉽게 말하면 월급, 렌트가 오르는 것보다 2배 정도 빠르게 매년 집값이 오르는 것이다. Reading에 Crossrail이 들어오고 런던 Paddington까지 50분이 걸리니 집값이 오를 이유가 더 많아졌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럽더라도 여기에 살 거라면 집을 사는 것이 나은 셈. 다음은 공간의 문제. 아이 하나와 두 부부가 살기엔 지내던 3 베드룸이 나쁘지는 않다. 허나 비교적 많은 수납공간에도 이미 아이 짐으로 집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것이 함정. 여기에 '만약 우리가 아이를 하나 더 가진다면'이라는 가정은 새 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주거환경. 우리가 살던 street은 주차공간이 협소하고 가든도 자갈이어서 아이랑 놀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Victorian house (빅토리아 여왕 당시 1837-1901년 팽창하는 도시 인구를 위해 지어진 집들) 답게 낮은 열효율, 이상하게 우리 집 앞에서 쌩쌩 달리던 차들에 경험하면서 이사를 최소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국에서 집을 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면 보통 아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은 한국보다 복잡하고, 길고, 변수가 많다. 그래서 종종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내가 종종 재밌게 읽고 있는 권석하님의 글을 보면, 중산층 영국 사람들은 그래서 주택 구매를 삶의 시작으로 여긴다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영국 사람들의 집 사기는 절차로 보아도 신중하기 그지없다.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좋은 콘텐츠가 많은 moneysavingexpert.com에서는 아래와 같이 절차를 설명해 놓았다.
1. 매물 탐색 후 뷰잉
2. 오퍼 넣기
3.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품 결정
4. Conveyancing firm 컨택 및 법적 자문 진행
5. Surveyor 컨택 및 건축 자문 진행
6. 모기지 공식 오퍼 받기
7. 집 보험 가입
8. 이사날짜(Completion date) 협의 및 결정
9. 변호사에게 계약금 납입
10. 집 판매/구매계약서 교환
11. 법적 절차 마무리
12. 변호사에게 잔금 입금
13. 이사
위 과정을 마치기까지 우리는 약 7개월 정도가 걸렸다. 코로나 때문에 chain이 약간 물린 것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4-6개월을 예상하니 심한 편은 아닌 것 같다. 영국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offer를 넣고 1년 넘게 기다려서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판매자가 새로운 집으로 가기 위해 탐색하고 계약하고 또 그곳에서도 판매자가 다른 집으로 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등 chain이 물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chain-free가 붙은 매물은 그래서 인기가 있고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선호된다.
아마 이 글에서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우선 우리 부부가 어떤 기준으로 집을 탐색했는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예산. 세계 어디에서나 집을 산다는 것은 예산이 가장 중요하다. 영국은 연봉의 4.5-5배 정도까지 모기지를 대출할 수 있다. 여기에 새 집일 경우 Help to buy가 가능해 정부에서 20% (런던의 경우 40%)를 1.75% 정도에 대출해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값의 5% 정도로도 집을 살 수 있는 것.
아파트가 보편적인 한국과 다르게 영국은 terraced house - semi-detached house - detached house 등 정원이 있는 집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골목 하나 건너서 분위기가 다르기에 한 동네에서도 집값은 정말 차이가 크다. 같은 골목 안에서도 집의 크기나 수리를 했는지 등에 따라 가격이 매우 다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런던의 New Malden의 경우 3 bedroom semi-detached house가 80만 파운드 (약 13억) 정도다. "어라, 생각보다 싸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같은 런던에서도 지성팍이 사는 Wimbledon이나 전통적인 중산층 이상이 산다는 North-west로 가면 1.5배에서 2배로 뛰기 시작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아내가 런던에 처음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 우리의 예산은 모기지, 한국에서 집을 팔고 남은 돈 등등을 합친 40-60만 파운드 정도였다.
지역. 앞서 쓴 글처럼 우리는 우리 동네를 사랑했다. 강가에서 여름에 헤엄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아이와 사계절 다른 풍경이 보이는 Court Garden과 해 질 녘 Balmore park에서 네온빛에 잠긴 도시를 보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 집에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새 집은 시 외곽에 지어지고 있었기에 우리는 동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안에서 접근성과 안전은 중요한 키워드였다. 런던과 윈저로 출근하는 나와 아내의 회사 위치를 고려해 접근성이 좋은 Caversham centre가 우선으로 고려되었으나, 이 인근 집들이 비싸기도 하고 매물이 많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 위쪽 Emmer green과 Caversham Park 쪽 집들도 같이 봤었다. 아까 말했듯 골목 하나 건너면 분위기가 바뀌는 곳이라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안 좋은 Lower Caversham 쪽은 보지 않았다.
남향. 건축가였던 아내가 집을 고르는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이 남향인가라는 점이다. 영국은 섬나라답게 습도가 만만치 않다. 여차하면 집에 곰팡이가 껴서 고생한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실외와 온도차가 커지면서 고통도 함께 증가한다. 이 가운데 집이 남향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주요 주거공간이 남향이면 해를 오랫동안 받게 되어 훨씬 따뜻하고 곰팡이의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다만 영국이 흐린 날이 많아서인지, 무지해서인지, 집들이 생긴 방향이 다 제각각이다. 부지도 멀쩡하게 확보해놓고 왜 북향의 집들을 짓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집이 남향인 영국 집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70%의 집은 포기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살아보니 남서향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다 보니, 여름이면 해가 저녁 9시쯤 늦게 진다. 지금의 남서향 집도 오후 1시 정도부터 해가 들기 시작해서 밤이 오기까지 낮고 길게 담쟁이 덩굴처럼 햇살이 벽에 아른거린다. 영국 사람들 중에 동서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구조. (구) 건축가 아내의 다른 특징은 구조를 집중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내는 두 집 정도 예산과 다른 조건들이 맞았던 집을 구조가 별로라는 이유로 거절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물었다, 집에 있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쁜 구조의 집은 쓸 수 없는 공간이 많다는 것
좋은 구조는 건물적인 의미도 있고 layout의 의미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한 것이라 했다. 심각하게 건물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는 집을 탐색하는 과정에서는 잘 발견되기 어렵고, 나중에 surveyor가 이런 문제들을 집을 사기 전 조사하고 리포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집을 탐색할 때는 layout에 초점이 맞춰진다. 건물의 layout은 floor plan을 중심으로 본다. 창문들이 햇살과 바람이 통하기 잘 되게 배치가 되어 있고, 주요 공간 사이 동선도 단순하게 보인다면 viewing을 갈 기본 요건이 되는 것이다. 반면 나쁜 구조는 간이 칸막이처럼 이동을 제한하는 요소가 공간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다. 심지어 이런 벽들이 구조 벽이어서 철거도 어려울 경우는 심각하다. 거실 구조도 우리에게는 중요했다. 영국 집들은 흔히 응접실, 거실과 식사 공간, 부엌을 따로 둔다. 당연히 환기도 어렵고 벽들 때문에 공간이 낭비된다. 따라서 아내는 거실과 식사 공간이 같이 있는 구조를 선호했다. 또 다른 예로 우리가 봤던 집 중의 하나는 방이 무려 5개였지만 방 하나가 복도로 나오는 문이 없었다. 이 경우 동선이 복잡해져 벽을 철거하는 비용이 추가로 생각해야 했다.
인테리어. 아내는 인테리어를 가장 나중으로 뒀다. 필요하면 직접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양동의 집도 장인어른의 도움으로 700만 원 정도에 화장실, 부엌, 바닥, 벽지를 직접 했다. 영국에서는 조금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이 곳에서도 아내는 자신감이 충만한 신여성이었다 (이런 신여성에게도 2.5살 아이를 달고 공사를 직접 감독/관리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아마 글을 읽는 이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비용일 텐데 지역/견적 범위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한국보다 2배 이상 비싸다는 것이 아내의 결론이다. 따라서 영국 사람들도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면 천천히 살면서 고쳐 쓴다. 그리고 주변 이웃/친구들을 보니 우리보다 더 공사업자들에게 당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살고 있더라. 우리의 우여곡절 끝에 한 달만에 영국에서 인테리어를 끝낸 이야기는 다음에 시간이 될 때 풀까 싶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온 지 6개월이 되었다. 영국은 세 번째 락다운을 맞이했고,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모든 모임을 금지하는 바람에 집에만 거의 있은 지도 3개월 째다. 감사한 것은 락다운과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마무리해서 지겨운 시간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보냈다는 점이다. 이사 온 첫날, 여기저기 뜯겨진 벽과 먼지들 사이에서 집에 가고 싶다며 울던 아이는 이제 주말이면 어디 나가길 거부한다. 게으른 아빠와 바쁜 엄마보다도 더 공간을 잘 활용하기 때문인 듯 하다. 3층에 있는 내 서재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깔깔대고, 갑자기 거실을 뛰쳐나가 아빠 엄마가 보이지 않는 2층 복도 어귀에서 강아지처럼 응가를 눈다. 50년 넘게 할머니가 정성 들여서 가꿔온 영국식 정원에 개나리 꽃이 피고 히아신스가 피고 잔디밭에 뒹구는 아이를 보면 집을 사고 수리했던 수고가 잊혀진다. 덕분에 나는 군대에서도 깎지 않던 잔디를 깎고 아내는 꽃을 심고 나무를 손질하느라 주말에도 큰 쉼이 없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웃에 계신 한 아주머니가 페이스북 그룹으로 초대를 하면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죽어서 나가요
살짝 섬뜩한 말이지만 그만큼 동네가 좋아서 죽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는다는 얘기. 학군, 집값과 크게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게 아직 생경한 우리지만, 해 질 녘 공원을 바라보면 그 말을 조금씩 곱씹어보고 있다. 아마 조금 오래 여기 있게 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