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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Nov 08. 2016

크고 흰, 빈 집

공간의 보통날


프랑스에서, 아니 유럽에선 오래된 집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소음과 단열에 자연스레 취약해지는 집 들이다. 낭시에서 살고 있는 집은 그나마 단열은 잘 되는 편이지만, 난방을 아무리 해도 혼자 사는 집에서 사람의 온기가 없다는 사실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2년을 어찌 잘 보내다 올해는 마음이 너무 추운 탓 인지 몸 까지 추운 것 같아 거실에 있는 책상을 이미 좁은 침실로 옮겼다. 좁은 공간에 침대와 책상이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적어도 마음이 덜 추울 거 같아서. 난 이렇게 낭시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맞이 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여름에 떨어져 버린 겨울 커튼과 긴 창문에 완충제를 붙여야지만 가장 큰 걸 했으니 한 결 마음은 가벼워졌다.


가구 정리를 하고 침대에 잠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니 문득 마음의 추위는 어찌 막을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추억을 저장하고 그 기나긴 겨울을 보내려 준비한 탓에 마음속, 큰 집을 들여 뒀는데 그 큰 집을 다 채워보지도 못 한 채 싹 비워버렸으니 더 썰렁하고 추운 건 당연한 거겠다. 겁은 나는데 방법은 없는 탓에 몸을 조금 더 움직여 생각을 지워보고자 책상이 빠진 자리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 옆은 높고 넓은 흰 나무 책장이 하나 있는데 책상이 크지 않은 탓에 필요한 소품들의 일부를 책장에 배치해뒀었다. 그중 필요한 것 만 골라 책상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자그마한 무지 색의 포스트잇 하나가 거실 나무 바닥 위에 떨어진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게 있어 망설였지만 혹시나 싶어 쪽지를 주워 읽어보니 역시나. 여름이 오기 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한국으로 가기 전 적어 뒀던 작은 쪽지였다. 방금 그 큰 집을 어떻게 할지 몰라 겁이 난 탓에 움직였는데 이렇게 방심하는 순간 내 앞으로 와 버린 너 때문에 또 힘든 밤을 지새울 거라 한숨만 쉬며 나머지 짐을 정리한다. 


참, 긴 겨울이 될 것 같다. 

몇일일지, 몇 달일지. 아니면

몇 년일지.





"우리, 바람 선선히 불며 벚꽃 잎 날릴 때 손 꼭 잡고 걸어 다니자. 그리고 시원한 여름밤 축제에 가 마치 꿈꾼 것처럼 불꽃을 보며 서로를 되새기자. 또, 단풍나무 예쁘게 폈을 때 우리 사진도 찍자. 마지막으로 눈 오는 날, 하얀 눈 밟으며 눈싸움도, 눈사람도 만들자. 우리,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자. 꼭 돈이 많지 않아도 추억이 많다면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그런 우리가 되자. 그렇게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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