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제혁 Oct 30. 2020

배가 심하게 아플때 살아남는 한가지 방법

나는 소화기내과 의사이다. 소화기내과는 위,대장,췌장 등의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을 때 진단 및 치료를 위해 내원하는 과이다.  속쓰림,구토,설사,혈변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내원하는 데, 의사로서 가장 신경쓰는 경우는 복통이다. 복통은 항생제 치료 등으로 치료되는 병 (장염 등) 과 내시경 치료가 필요한 병(담도염 등) 도 있지만, 꼭 수술을 해야 하는 담낭염,천공 등이 있기 때문에 경험 있는 의사의 진찰이 꼭 필요하며, 필요할때는 바로 CT나 초음파 등의 영상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초음파는 CT 에 비해 주관적인 검사이며, 경우에 따라 놓치는 경우도 있어 객관적인 검사인 CT 를 찍는 경우가 많다.

많은 환자분들이 의사에게 진찰받을 때, 위가 아프고, 장이 아프다고 하지만, 그건 의사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몸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지 않고 위라고 생각되는 명치부위가 아픈 경우는 위,십이지장,담낭,담도,췌장 등등 다양한 장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들이 '위가 아파서 왔어요' 라고 하면, 나는 '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부위에는 위도 있지만 근처에 다양한 장기가 있어서요. 어느 부위가 아픈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월요일 오전은 주말간 병원에 오지 못한 분들이 한꺼번에 방문하여, 매우 바쁘게 외래를 보는 시간이다. 오전 10시에 3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분이 외래를 방문하였다.  

"안녕하세요. ** 님. 자리에 앉으세요."

"저 배가 너무 아파서 앉지를 못하겠어요"

"네? 배가 아파서 의자에 못 앉겠다구요?"

배가 너무 아파서 눕는 환자는 봤지만, 서 있는 건 괜찮은 데 아파서 못 앉겠다는 환자는 처음이었다.

배를 눌러보았고, 눌렀을 때 심한 통증을 호소하였다. 배를 눌렀다가 뗐을 때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surgical abdomen(수술이 필요한 상황을 의사들이 지칭하는 말이다.) 일 가능성은 낮으나, 증상 자세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경우와는 매우 달랐다. 우선 피검사를 시행하였는 데 염증 수치는 정상이었으나 백혈수 수치가 22100 uL 로 상승되어 있어 추가 검사가 필요하였다. 복부 CT 검사를 처방하였고, 12시경에 결과가 나오려니... 라고 생각하면서 그날 오신 다른 분들을 진료 보고 있었다.

"과장님, ** 님 CT 를 찍어야 하는 데 환자가 통증이 너무 심해서 못 눕겠다고 하십니다."

"네? 아파서 눕지 못하겠다구요?"

아파서 앉거나 서지 못하겠다는 분은 봤어도 눕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은 보기 드물어서 놀랐지만, 진통제 처방을 하였고, 빨리 CT 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전에 오신 분들의 진료가 끝나니 12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어느 직업이든 힘들지 않겠냐마는, 미국 등과 다르게 충분한 설명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한국에서 의사의 진료는 어려움이 많다. 한 환자를 보는 데 20-30분씩 시간이 주어지는 미국과 달리, 5분내에 빨리,정확하게,친절하게 진료를 봐야 하는 한국의 의사들은, 정말.....쉽지 않다. 

오후시간에는 내시경이 여러 개 잡혀 있었고, 입원환자와 외래 환자의 내시경을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4시가 넘어 있었다. 그 와중에 ** 환자는 배가 아파서 눕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고, 진통제는 수차례 투여한 상태였다.

"아직도 CT 를 못 찍고 있나요?"

"네.. 환자분은 너무 아파서 못 눕겠다고 하시네요..그냥 입원하면 안되겠냐고 물어보세요"


의사가 환자를 볼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진단" 이다. 진단이 된다면,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지, 어떤 치료가 필요한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진단을 하지 못한다면, 그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질 때 잘못된 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 또한 잘못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The Blind Men and the Elephant/nature.com 편)의 어느 [이미지].  처: http://cafe425.daum.net/_c21_/bbs >


건장한 남자 환자분이 자꾸 그러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CT 실로 직접 올라가서 환자에게 말하였다.

"빨리 누우세요! 벌써 5시간 째에요! 이러다가 장이 터졌으면 정말 큰일납니다.! 빨리 찍어야 해요!"

방사선사님이 환자를 조심스럽게 앉혔으나, 환자는 앉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어 환자에게 '미안한데 제가 좀 힘을 쓰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강제로 환자를 눕혔다. 

'악! 너무 아파요!' 환자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였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CT 를 찍지 않고 입원시킬 수도 없을 뿐더러, 정말 장이 터졌다고 해서 배를 그냥 열면 어느 부위인지 알수가 없어 그 또한 위험하다. 다행히  CT 를 무사히 찍을 수 있었다.



뭔가 장벽에 이상한 음영이 있어 영상의학과 과장님께 문의를 드렸고, 'hemoperitoneum인데 복벽하방 intradomen에 bleeding  같습니다.' 라고 판독을 해주셨다. hemoperitoneum 은 복강 내 장기의 파열로 인해 복강내에서 출혈이 생긴 상태라는 의미이다. 즉 외과와 상의해서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놀랐지만, 수술을 고려해야 하는 환자분이 더 놀랄 것을 생각해서 환자분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고, 응급의학과 선생님께 연락해서 응급실 진료를 받도록 안내를 드렸다.

다음날, 30대 중반의 , 아직도 살 날이 죽을 날보다 더 많은 환자분이 수술이 잘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심하게 아플때 살아남는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빨리 병원에 방문해서 의사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다. 이 환자분이 CT 를 못 찍고 그냥 입원했다면,  그래서 장출혈이 지속되어 밤에 사망했으면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환자를 강제로 눕히고 CT 를 찍었지만, 의료에 종사하다보면 강제로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강제로 CT 를 찍었기에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가 오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 환자분들도 그런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이전 07화 등이 계속 아프면 췌장에 대해 검사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