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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09. 2017

도쿄는 나를 생각하게 한다

도시의 상냥함에 관하여, 그리고 내일의 나에 관하여

도쿄에 도착한지 사흘 째, 새벽 잠을 잃어버렸다. 조금 더 자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떠져 의도치 않게 하루를 일찍 시작하곤 했다. 그 중 어느 날에는 밖으로 나가 편의점 산책길에 나섰는데 익숙한 듯 익숙치 않은 광경에 마음이 기지개를 켰다. 호텔이 있는 히비야 근처에선 국도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좁아진 길에는 통로를 확보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유도하기 위해 남자가 여럿 서있었고, 비 온 뒤 젖은 아스팔트는 유도등에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흔하디 흔한 새벽 도시의 풍경. 무심코 지나가던 차 인사를 받았다. 짧게, 아주 작은 목례의 인사였다. 깊숙이 들어오지 않고 살짝 스치기만 하는 인삿말. 나도 따라 작은 목례를 했고 그렇게 편의점에 갔다 오는 사이 수 차례나 작은 인사를 나눴다. 도시의 상냥한 얼굴이다.


도쿄는 나를 생각하게 한다. 대학교 2학년 무렵 모 장학 재단의 스피치 대회에서 수상한 덕에 도쿄를 공짜 여행한 이후 나는 아마도 40여 차례 도쿄를 오고갔다. 그만큼 많이 걷고도 걸었는데 요츠야에서 신주쿠 3쵸메까지의 거리, 시부야에서 아오야마를 거쳐 오모테산도에 이르는 국도 246길, 그리고 미타카다이 역에서 무레 6쵸메로 향하는 지난한 골목길과 키치죠지 역에서 이노카시라 공원을 지나는 산책길이 기억난다. 사회생활 3년차, 무언가 다른 게 있을 거란 생각에 매일을 방황했던 시절의 나는 요츠야에서 신주쿠 사이의 길을 걸으며 나카시마 미카의 'Will'을 들었었고, 워킹 홀리데이로 1년간 외국인 노동자로 생활하던 나는 미타카 다이의 골목길을 걸으며 람프의 '8월의 시정' 앨범을 들었었다. 그리고 얼마 전, 10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한 나는 국도 246길을 다시, 꽤 오랜만에 걸으며 앞으로의 나를 궁리했다. 도쿄라는 동일한 장소, 조금씩 달라진 상황, 그리고 매번 맺음과 맺음 사이에 서있던 나란 사람. 도쿄는 나를 생각하게 한다.



9월에 도쿄를 두 차례 다녀왔다. 한 번은 퍼블리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작은 여행을 더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일본 문화원에서 단체로 떠나는 취재 여행이었다. 첫번째 여행의 둘째 날, 카나이 후유키란 남자를 만났다. 20대의 나가노 출신 디자이너인 그는 진(Zine)을 만들고 있었는데 평소에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절반이 진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며 자신이 게이임을 자연스레 말하는 모습을 보며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이 무어냐는 질문에 '타인과 나의 공통점 찾기'라고 말했고, 동시에 진은 처음엔 혼자서 만드는 거지만 만들다 보면 타인과 연결된다고도 말했다. 예상치 못한 진솔한 대화, 생각보다 깊었던 마음에 기분이 늦여름 밤바람처럼 편안해졌다. 그와의 대화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인터뷰 장소인 '온 더 코너'를 찾느라 매우 지쳐있었고,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그에게 이제 가자는 말을 마지못해 둘러서 얘기하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또 연락 하는 거죠?'라고 내게 말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는 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도쿄 시부야 1-17-1에서의 기억이 일러줬다. 카나이 후유키, 그는 진을 만드는 남자다.


아사쿠사는 올드하다. 센소지가 있고 나카미세도오리에서 기념품을 살 수 있으며 가장 일본스러운 기념 사진을 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첫 일본 여행 때 한 번, 누나들, 친구가 놀러 왔을 때 두 번, 이렇게 총 세 번만 가봤을 뿐 개인적으로 찾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아사쿠사는 내게 그리 끌리는 장소는 아니다. 도쿄를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본다면 내게는 신주쿠, 시부야, 아오야마, 오모테산도, 다이칸야마, 키치죠지가 있는 서쪽이 아사쿠사, 우에노, 긴자, 아카사카 등이 있는 다소 올드한 동쪽보다 몇 배는 더 나은 여행지다. 그런데 최근 동쪽이 심상찮다. 스카이트리의 오픈 이후 동쪽에 이것저것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최근엔 긴자 식스가 오픈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아사쿠사! 아사쿠사도 변모중이다. 근래 일본엔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가 뜨거운데 일본 정부가 일본을 덩어리 채로 옮겨다 놓은 건물 '마루고또니뽄'을 아사쿠사에 세운 것이다. 이곳은 마루노우치 지역에 밀집돼 있는 일본 지역의 안테나 숍을 모아놓은 형세로 일본 전국의 핵심을 임팩트있게 맛볼 수 있게 되어있다. 후쿠오카의 라멘, 교토의 차 같은 걸 한 장소에서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한 열의가, 문화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 일궈낸 건물이다.



유카타 차림에 게다를 끌고 아사쿠사 일대를 헤매었다. 옷을 갈아 입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스카이트리만 보고 걸으면 된다던 스카이트리는 온데간데 없었고 나는 자꾸만 나카미세도리 언저리를 맴돌았다. 묻고,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경찰 아저씨도, 의자에 앉아 당고를 먹고 있던 아저씨도, 아이스크림을 팔던 여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두 다 친절했는데 모두 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말해준 대로 가다보면 분명 올 때와 다른 길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유턴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30분여를 헤매다 센소지의 경비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저 분은 확실하다!는 생각에 아파오는 발꼬락에 힘을 줘가며 아저씨에게 걸어갔다. 아저씨는 오른쪽, 오른쪽, 맞닿은 길 오른쪽이라 말했고, 나는 이번엔 그 말만 믿고 딸각 소리를 내며 다시 걸어갔다. 다행히 목적지엔 도착했다. 다만, 나는 무언가 하지 않고 돌아온 것 같은 생각에 마음 한켠이 찜찜했다. 친절함에 제대로 감사하지 않았다는 뜨끔함,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는 뜨끔함이 마음을 아프게 짓눌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사쿠사는 여전히 뜨겁다. 올드하지만 건재하고, 전통이기에 사랑받는다. 수없이 많은 길을 헤매던 와중에 마주쳤던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아사쿠사를 말하고 있었다.


도시의 상냥함에 대해 생각한다. 도쿄의 상냥함에 대해, 서울의 상냥함에 대해 생각한다. 시골의 푸근함과는 다른, 간섭과는 다른 온도를 갖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한다. 서울에 살던 시절 이 도시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는 곧 한국이란 나라와 연결되는 문제였는데 '함께'라는 것에 너무나 관대한 나라의 기질이 나의 성격과 맞지 않게 느껴졌다. 거리를 걷다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도 아무 말 없이 끝나는 것이 한국이었고 서울이었으며,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먼저 올라 타 자리를 잡는 것이 서울이자 한국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신세를 끼치고, 때로는 폐를 끼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당연한 사실을 서울은, 한국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느껴진다. 백팩을 맸을 때의 에티켓, 토트 백을 들었을 때의 에티켓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거리를 걷다 딱딱한 가죽의 백으로 사람 손을 쳐놓고도 '치셨는데요'라고 말하면 '일부러 한 거 아니잖아요'라며 성을 내는 것이 서울이고 한국이다. 이런 경우 나는 '일부러 한 거였으면 싸우자는 거지요'라고 맞받아치지만. 나에게 서울은, 한국은 꽤나 피곤하다.



도쿄를 만났다. 2002년 내게 다가온 도쿄는 S사이즈 남자 의류가 있는 도시였고, 160 언저리의 남자들이 소수가 아닌 도시였으며, 눈치 보지 않고 혼자 식사를 할 수 있는 도시였다. 그러니까 도쿄는 내게 상냥한 도시였다. M과 L뿐이었던(최근엔 그렇지 않지만) 한국의 의류 브랜드 세계에서 나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나의 존재는 삭제되었었다. 그런데 도쿄는, 도쿄에는 나의 자리가 제대로, 온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도쿄 미타카시의 작은 방에서 생활하던 무렵 무인양품의 한 광고를 보았던 날을 기억한다. 창가에 붙은 포스터에는 'Re-Size'라 쓰여있었는데 이는 사이즈를 다시 재자, 기존의 사이즈는 모든 사람의 몸을 다 커버하지 못하니 사이즈를 처음부터, 현실 생활에 맞게 다시 측정하자는 취지의 캠페인 광고였다. 나는 이것이 도시의 상냥함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해 두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한 자리를 배려하는 것이 말이다. 한국은 이런 것에 둔감하다. '함께'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홀로를 배려하지 못하는 '함께'가 행복할 리 만무하다. 새벽 다섯 시의 짧은 목례를 기억한다. 무언의 짧은 인사를 기억한다. 이는 타인에 대한 긍정의 징표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도쿄에서는 마주했고, 한국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던 것. 도시의 상냥함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국도 246길의 기억. 이 길을 처음 걸은 건 '씨네21'에서 출장으로 이미지포럼에 출퇴근하던 때다. 이미지포럼은 시부야와 오모테산도 중간, 그러니까 아오야마 언저리에 있었는데 나는 무거운 수트케이스를 끌고 처음으로 이 길, 국도 246길을 걸었었다. 모든 게 새로웠고, 모든 게 신선했으며, 모든 게 재미있었던 시절.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새로운 것도, 신선한 것도, 재미있는 것도 예전만하지 못한 삼십대 중반이 되어 이 길을 왕복으로 두 차례나 걸었다. 엄마는 이제 회사에 취직하지 말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면 어떠냐고 종종 물으신다. 하지만 그런 프리한 생활이 쉬운 게 아니라고 나는 말하곤 하지만 종종 정말로 이제는 회사 없이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지금 나는 퍼블리에서 리포트 작업을 하나 하고 있고(판매가 순조롭진 않지만), 10월에, 그러니까 곧 부산에서 일을 하나 하게 된다. 많이 긴장되고, 많이 욕심도 나는 일이라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삶에서 어떤 순간이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일단은 여기까지만 생각하려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자꾸 내일, 더 내일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단순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 내가 신나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일단 부산이다. 부산에서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아니, 준비, 준비, 또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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