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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30. 2017

지나간 날들을 보내며

입생 로랑의 나날, 입생 로랑 아무르

지나간 날들을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수박을 사들고 걸었던 합정동 거리를, 시골밥상을 거쳐 르 알라스카에서 방을 사갔던 신사동 시절을, 새벽같이 일어나 지하철 로케 촬영을 하고, 개미 사진을 코팅지에 프린트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촬영을 진행했던 날들을. 2년 전 비오는 여름 성북동 한옥에선 틸다 스윈튼 인터뷰를 했고, 한 해 전 이른 여름엔 포틀랜드에서 20여명의 포틀랜드 사람들과 교류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이런 시절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불어 다시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물음표가 서성인다. 많이 아쉽고 미련이 남지만 이제 이별을 해야 하는 건가 싶다. 어쩌면 이런 좋은 시절을 이제는 보내줘야 하나 싶다. 마음이 쓰라리다.


<입생 로랑 아무르>를 보았다. 영화는 입생 로랑의 은퇴 선언 화면을 시작으로 그가 디오르의 조수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브랜드를 런칭하고 성공하기까지의 여정, 뒤이어 마약과 술에 빠져 살았던 시간까지를 다룬다. 이야기는 이브의 애인이자 친구인 피에르 베르제의 음성으로 전달되고 영화는 이 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영화가 담아내는 이브는 사랑과 열정, 행복과 미적 환영에 취해 사는 사람이다. 때로는 현실을 도피하고 그러한 삶 위에서 의상이 만들어진다. 더불어 옷에 큰 변화가 있는 중반기를 지나서는 불안과 지옥, 그리고 혼란이 이브가 옷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성공과 화려한 삶, 그리고 신경안정제와 마약에 찌든 지독한 삶을 모두 관통하며 이브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영화가 인용한 마르셰 프루스트의 "신경과민증 환자는 이 땅의 소금과도 같다"는 구절처럼 영화는 이브를 아트로서의 패션으로 정의한다.  


영화의 초반부 이브의 은퇴 연설에서 한 문장이 가슴에 닿았다. "예술적 창조의 낙원에서 성장하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와 마주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와 마주하는 것. 지난 10년을 발끝만 바라보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 큰 돌 뿌리에 걸려 크게 다쳐 드러누웠다. 10이란 숫자는 무언가 하나를 끝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마침은 한 챕터를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향하는 여는 문과 같다. 10년 동안의 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를 좋은 기자였다고 생각해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를 나쁜 기자라 생각하는 사람든 또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도 든다. 3월부터 빵을 배워보려고 한다. 얼마 전 관련 책을 두 권 샀고, 국비 지원 프로그램들을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미련이 크고 무서움도 든다.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았을 때, 그러니까 나와 마주했을 때 떠오른 대답이다. 일단은 해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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