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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19. 2017

사랑, 아니 시간

그저 조그만 상냥함에 도시가 아직은 빛을 잃지 않고있다.



사랑을 생각해 본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래볼 수 밖에 없다. 이유없이 설레고 살 의욕이 샘 솟으며 무언갈 자꾸 사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 맞다면 해본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랑의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모르겠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우정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섹스의 유무로 사랑을 말한다면 나는 꽤나 많은 사랑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 사회가 팍팍해졌다고 해도 사랑의 정의가 그거일 리는 없다. 연민도, 동정도, 존경도 사랑이 될 수 있고, 연민도, 동정도, 존경도 사랑이 될 수 없다. 감정에 이름표를 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진다. 사랑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だち'을 15년 만에 다시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에게 사랑을 한 것인지, 둘의 헤어짐은 이별을 말하는지, 둘이 가진 두 번의 섹스는 사랑의 증거로 유효한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저 바보같이 주위를 멤도는 기분이다. 그리고 든 생각은 어쩌면 둘 사이엔 사랑도, 동정도, 연민도 아닌 그저 시간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는 거다. 조제는 사강의 '멋진 구름 ずばらしい雲'의 한 구절을 읊는다. '언젠가 당신은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고 베르나르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다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우리들은 다시 고독해지고, 거기엔 다시 흘러 지나가는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다'라고.  



추웠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몸은 움츠러들었고 내장까지 떨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츠네오가 조제를 처음 만나는 날도 꽤나 추워 보이는 아침이었다. 인사동에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주말 낮시간임에도 사람이 꽤 많았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잠시 멈춰 선 사람. 나같은 인간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잠시 멈춰 선 사람, 지나간 사람. 분명 거기엔 기쁨도 있었을 거고, 아픔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당연히 마지막, 헤어짐, 이별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본다. 이 많은, 나처럼 사교성이 제로인 사람에게도 꽤 많은 만남에 제각각 이름을 다 붙일 수 있을까라고. 어쩌면 나는 수 백번의 사랑을 해왔는지 모른다. 동시에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에겐 친구가 수 천명일 수도 있고,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며칠 전 의도치 않게 본 영화 '리빙 보이 인 뉴욕 'The Only Boy Living In New York'은 뉴욕을 영혼을 잃은 도시라 설명했다. 서울이라고 다를 게 없을 거 같다.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시대다.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의 만남과 그만큼의 헤어짐이 하루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는 곧 휘발성이 진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혼을 잃은 도시, 휘발되는 나날,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만남.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사강의 글을 빌려 조제가 얘기했던 시간, 그리고 조금의 상냥함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겨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을 넘어 삶의 애수를 담은 엘레지다. 타인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고찰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이 피상적인 장치로 장애 설정이 되어 나타났을 뿐 영화는 삶, 그 자체기도 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츠네오가 처음 조제에게 다가갔던 건 어쩌면 조금의 동정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본래 선한 마음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 관계가, 결국엔 실패하고 마는 그 관계가 나는 현대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상냥함이라 생각한다. 요즘 Yogee New Wave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Paellas에서 시작해 D.A.N, cero, 그리고 페트로즈 ペトロールズ까지 이어진 유튜브 큐레이션의 결과다. Yogee New Wave는 최근 영화 '할아버지 죽었대 おじいちゃん、死んじゃったって。'의 주제곡을 담당했는데 비루한 나날을 맑음으로 씻어내는 기운이 나를 힘나게 한다. 제목이 'SAYONARAMATTA', 안녕 Sayonara과 다시 Mata를 의미하는 두 단어를 만나게 해놓았다. 그만큼 현실적이고 그만큼 긍정적이다. 페트로즈의 보컬이 한 웹진에서 가진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떠나가는 이의 등을 밀어주며 '힘내고 와'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워요.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친말한 관계성이란 반듯이 존재해요'라고 말했다. 살짝 등을 밀어주는 것, 힘내고 오라고 말해주는 것. 사랑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그저 조그만 상냥함에 도시가 아직은 빛을 잃지 않고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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