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는 내게도 존재한다.
시부야가 좋다. 시끄럽고 복잡하며 때로는 더럽기도 한 시부야가 좋다. 2000년대 초 관광지로서의 도쿄는 싫다며 몰려들었던 다이칸야마, 에비스, 나카 메구로, 키치죠지보다 내게 도쿄의 서쪽은 시부야다. 다이칸야마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고, 에비스나 나카메구로는 너무나 완전해 소외감을 느끼며, 키치죠지는 도시라기 보다 시골에 가까운 풍경이다. 시부야가 다시 뜨고있다고 한다. 구글이 본사를 롯뽄기 힐즈 모리타워에서 2018년 가을 완공 예정인 '시부야 스트림(渋谷ストリーム)으로 옮길 예정이고, 야후 역시 비슷한 계획을 발표했다. '시부야 스트림'은 오피스와 호텔, 그리고 홀 등으로 꾸며진다. 이에 앞서 올해 4월엔 캣스트리트 초입에 '시부야 캐스트(渋谷キャスト)가 들어섰고, 그보다 훨씬 이전인 2012년에는 시부야 역 바로 옆에 '시부야 히카리에'가 오픈했다. 물론 시부야의 기세가 예전같지 못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 시부야는 GMO 인터넷이나 사이버 에이전트, DeNA, 라인 등의 회사가 몰리며 시부야의 시부(渋)를 뜻하는 bitter와 야(계곡, 谷)를 의미하는 valley를 따 비트 밸리라 불렸다. 하지만 이후 아마존과 라인이 규모 확장 후 사무실이 좁다는 이유로 시부야를 등 뒤로 하는 모습을 시부야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시부야 스타일을 상징하는 '시부카지(渋カジ), 치마(チーマ), 코갸루, 갸루 오토코 등 갸루 문화 이후 등장한 스타일도 아직은 없다. 시부야는 지금 허전하다.
시부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건 시부야의 시대가 저무는 게 아니라고 느낀다. 오히려 유행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2009년 285억의 매상을 기록하며 절정기를 누렸던 109는 이후 하양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이건 시부야의 탓이 아니다. 흑인 피부 못지 않게 얼굴을 그을리고, 코스프레에 가까운 옷으로 거리를 활보했던 이들은 이제 시부야에 없지만 이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대신 등장한 건 2008년 상륙한 H&M과 FOREVER 21, 그리고 ZARA다. 원하는 걸 모두 찾을 수 있고 스타일과 유행의 첨단을 알기 위해선 가야만 했던 시부야는 이제 특별하지 않다. 게다가 SNS가 주도하는 시대의 흐름은 지역성을 휘석시킨다. 심지어 시부야가 점점 이케부쿠로(池袋)화 되어간다는 말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프리마켓을 통해 소비하는 시대에서 시부야는 시부야가 아니다. 예전의 시부야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시부야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편파일률적으로 변하고 있는 가운데 시부야는 여전히 시부야로 존재한다. 모두가 모여들고 모두가 흩어지며 모든 게 흘러왔다 스쳐 지나가는 곳. 시부야는 그런 곳이다. 유행과 트렌드, 최신의 무언가보다 우선하는 지역성. 그것이 시부야다. 물론 문화의 발신지로서 시부야의 저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건 사실이다. 1912년 창업한 서점 타이세이도(大盛堂)는 본점 재건축으로 폐점했고, 2010년에는 아트 극장 시네세종(シネセゾン)과 시네마 라이즈(シネマライズ)가 폐관했다. 타이세이도 자리에는 ZARA가 장사를 하고있다. 게다가 2016년엔 쇼핑몰이지만 그 이상이었던 파르코 전관이 폐관해 코엔도리(公園通り)가 쓸쓸하다. 걱정은 될만하다.
그럼에도 나는 시부야가 좋다. 기억은 10년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두 번째 출장을 시부야로 갔다. 선배가 가려던 출장이 알 수 없지만 반가운 이유로 나에게 떨어졌다. 메가박스와 일본의 이미지포럼(イメージフォーラム)이 주최하는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의 준비 차였다. 이미지 포럼은 시부야와 오모테산도 사이, 국도 246길변에 있다. 시부야 포럼은 내게 어린이의 성(こどもの城)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주었다. 마치 호텔 정원에 오카모토 타로의 조각이 놓여있는 느낌이었다. 이미지 포럼과 숙소 사이를, 국도 246 길을 걸어 출퇴근을 했다. 아오야마 대학(青山学院) 을 지나면 스타벅스가 있었고, 그 길목에 내가 영화를 하루에 수편이나 봐야하는 이미지 포럼이 있었다. 음악과 패션이 시끌벅적한 스크램블 교차로 뒤편은 언제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했냐고 말하고 있는 듯 차분하고 자못 어른같은 예술의 동네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이 좋았다. 아오야마(青山)가 주는 다소 부티나고 위화감 풍기는 느낌은 학원을 만나 사그라들었고, 그렇게 시부야는 내게 친숙한 동네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 어떨까 싶은 상상도 몇 번이나 했었다. 물론 나는 시부야에서 노상 라이브를 본 적이 없다. 엉덩이 춤에 바지를 걸치고 호객을 하는 남자들은 수도 없이 봤지만 언젠가는 팔릴 거라는 기대로 노상에서 노래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시부야에 '언젠가'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꿈도, 희망도 스쳐 지나가는 곳이 시부야다. 나는 그런 시부야가 좋다.
모든 게 있는 곳,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는 곳, 하지만 자신은 텅빈 껍데기에 불과한 곳. 영화 '시부야(渋谷)가 그리는 시부야다. 니시타니 신이치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 나는 철저히 공감한다. 주인공으로 아야노 고가 나온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을 모르고 산다. 확언할 순 없지만 100% 자신을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시부야에서라면 더욱더 그렇다. 주인공 여자 유리에는 시부야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이 그저 자리할 수 있는 곳은 시부야가 유일하다. 시부야엔 모든 게 다 있다. 게이도, 레즈비언도, 장애인도, 혼혈아도, 사생아도. 차이가 혼재하기에 외국인 역시 별 탈 없이 공존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도시가 다양성을 품을 때 그건 마을이 되고, 나아가 동네가 된다. 시부야는 얼마 전 동성 커플을 인정하는 조례안을 일본 최초로 가결했다. 2016년엔 시부야 구가 '차이를 힘으로 바꾸는 마을, 시부야구'를 골자로 다양성(Diversity) 선언을 했고, 2017년 11월에 열린 '다이브 다이버시티 서밋 시부야'에선 다양성을 담보로 실현되는 가능성을 창조의 문제로서 논의했다. 시부야엔 모든 것이 교차한다. 하치코 입구(ハチ公口) 앞 스크램블 교차로가 그걸 증명한다.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아픔과 상처도 교차하는 곳이 시부야다. 사람이 하도 많다보니 자신의 상처와 닮은 상처를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고 자신보다 더한 아픔과 마주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그 상처와 아픔은 깨닫는 순간 사라진다. 주인공 여자는 포토그래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포토그래퍼는 눈물을 흘리며 공감한다. 하지만 이 공감 역시 스쳐지나간다. 그것이시부야다. 그럼에도 그 공감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유리에는 이제야 자신을 느낀다. 시부야는 이런 순간들로 산다.
유행이 싫다. 이곳이 힙하다, 저곳이 힙하다며 찾아다니는 일은 체력과 별개로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조용하고 차분한 게 좋다면 시골로 떠날 일이다. 그래서 귀농 붐이 일기도 했다지만 그 붐 역시 마뜩지 않다. 나는 그저 도시로 존재하는 도시를 사랑한다. 시부야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감정, 스쳐 지나가는 공감과 스쳐 지나가는 눈물이지만 그 스쳐 지나감의 순간을 사랑한다. 어느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그 순간의 도시를 사랑한다. 나는 이를 도시의 상냥함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것, 다른 것, 그러니까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 시골의 온정과 달리 간섭하지 않지만 조심스레 타인과 함께하는 마음이 시부야엔 있다. 일본은 개인주의의 나라다. 간섭하지 않고, 폐 끼치지도 않는 게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개인주의는 배척의 다른 말에 다름없다. 특히나 시골에 가면 그 배척은 더해진다. 시부야는 지금 2027년 완성을 목표로 시부야 확장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있다. '시부야 캐스트'는 재개발 지역의 북단에서 캣스트리트를 경유해 아오야마, 하라주쿠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근처에는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 지하를 빠져 재개발 지역 남쪽을 거치면 '시부야 스트림'까지 갈 수 있다. '시부야 스트림'의 건설은 애초 보행자 네트워크를 준비해 마련된 것이다. 자동차 위주가 아닌 사람 위주의 도시 디자인. 한국과 다르다.
더불어 시부야는 계곡이라는 지형의 난점 해결을 목표로 하는 '어번 코어' 사업도 진행중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2018년 가을부터 '시부야 스트림' 2층에서 국도 246을 도보로 횡단할 수 있다. 건설 중인 '시부야 스트림' 아래를 흐르는 시부야 강변엔 녹음이 풍부한 수변 공간이 만들어 지고, 다이칸야마를 향해 이어진, 지금은 없어진 도요코선(東横線) 터는 산책로로 정비될 계획이다. 2019년 완성되는 47층짜리 초고층 빌딩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渋谷スクランブルスクエア)도 기세를 더한다. 시부야는 도시로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한 말이 지금 시부야엔 필요하다. 시부야 구를 비롯 '다이브 다이버시티 서밋 시부야'에 관여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부야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초점을 맞추겠지만 나는 여기서 도시의 본 모습을 본다. 이들은 '이노베이션은 다양성이 뒤섞여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엔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도 참여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이고 싶다. 도겐자카(道玄坂)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주 노동자로 살았던 때다. 하루에 십 수명은 오는 외국인들과 마주했고, 대체로 일어로, 때로는 영어로, 가끔은 한국어로도 주문을 받았었다. 물론 나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건 좋아하지 않는다. 스크램블 교차로 앞에 서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그래서 시부야 중에서도 도겐자카, 사쿠라가오카쵸(桜が丘町) 근처를 걷긴 하지만 시부야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다. 혼자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마음껏 외로울 수 있다. 시부야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내게 시부야는 저물지 않았다. 오히려, 아니 여전히 시부야는 유행의 중심에 있다. 유행이란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지금 가장 뜨거운 것,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 그것 뿐이라면 그렇다. 내가 느끼는 일본의 지금은 시부이(渋い)한 것들로 가득하다. 시부야의 시부, 시부이(渋い)의 뜻을 한국어로 옮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이 시부이 한 것들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잡지 '브루타스'와 뽀빠이, 그리고 '펜'과 '스위치''가 그렇고, 좋아하는 배우, 에이타, 아야노 고, 오다기리 죠, 카세, 료, 스다 마사키, 이케마츠 소스케, 그리고 마츠시마 히카리와 아오이 유 등이 그렇다. 국내의 한 웹진은 19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시부야를 지칭했던 '비터 밸리'의 비터를 '쓴 맛'이라 해석했지만, 渋い는 bitter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IT, 5G 시대의 시부야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기능할 수는 있지만 도시로서의 시부야, 지금을 살고있는 시부야를 설명하는 말로는 적절치 않다. 시부야는 '시부이, 渋い'로 설명된다. 나는 그러한 시부야를 사랑한다. 오히려 나는 지금의 시부야가 좋다. 휘황찬란한, 현란한 장식들이 시대와 함께 물러간 지금이 더 좋다. 아니, 어쩌면 시부이한 건 휘황찬란하고 화려했던 시부야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스크램블 교차로 반대쪽엔 전혀 다른 컬러의 혼잡이 있고, 조금만 거리를 걸으면 차분한 느낌의 도겐자카나 사쿠라가오카쵸가 이어진다. '씨네21'에 다니던 무렵 나리미야 히로키와 가졌던 인터뷰를 기억한다. 시간에 늦어 땀을 흘리며 인터콘티넨털 호텔에 도착하니 두 무릎을 손으로 안고 쓸쓸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가 있었다. 영화 '나나', 드라마 '오렌지 데이즈'의 활발함만으로 그를 보았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는 시부야의 유행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가벼운, 금새 휘날리는 언어를 말하지 않았다. 그 자리, 그 시간, 그는 내게 자체로 시부야였고, 시부야는 곧 그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런 시간을 생각한다. 좋아하는 서점 SPBS(Shibuya Publishing Book Store)에서 책 구경을 하고 스크램블 교차로를 벗어나 사쿠라가오카쵸를 걷는 나와 그런 시간을. 시부야는 내게도 존재한다.